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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지침'은 갱신기대권의 근거 될까…뒤집힌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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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61.♡.185.171)
댓글 0건 조회 1,872회 작성일 21-02-1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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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공공부문 기관들을 상대로 내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지침'은 계약직 근로자가 계약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으리라는 갱신기대권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취지의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제6행정부(재판장 이창형)는 지난 1월 20일, 김천시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하고 1심 서울행정법원 판결을 뒤집었다.
 
김천시는 2016년, 관내 CCTV를 통합관리 하기 위한 통합관제센터를 설치하고 이 곳에서 일할 관제요원을 채용했다. 2017년, 계약기간 1년 단위로 김 모씨를 채용했고, 이후 김씨와 계약을 1년 더 연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김천시가 두 번째 계약 종료를 앞두고 김 씨에게 계약 종료를 통보하자, 김씨는 이를 부당해고라며 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다. 이에 초심 경북지노위와 중앙노동위원회가 김씨의 손을 들어주자, 김천시는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
 
부당해고가 성립하려면 근로자들이 계속 김천시의 직원인지가 문제된다. 이는 결국 김 씨 등 관제요원들에게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냐 여부의 문제로 이어진다. 기간제 근로자의 경우 기간이 만료되면 계약이 종료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우리 법원은 당사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있는 경우에는 근로자에게 '갱신기대권'을 인정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것으로 본다.
 
김천시 측은 "관제요원 채용공고를 보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취지의 규정도 없고, 그간 관제요원들과도 근무기간 2년을 넘지 않는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해 왔다"며 "관제요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사례도 없어 정규직 전환 기대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2019년부터 스마트 관제 시스템 도입을 추진해 관제 업무량이 감소해, 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거절한 데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앞서 1심 법원인 서울행정법원은 "김천시 인사관리 규정이나 채용공고를 보면 관제요원 계약기간이 연장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근로자들에게 정규직 전환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하지만 2심인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채용공고에서 근로계약 연장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있지만, 구체적인 기준에 대한 언급은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법원은 "채용공고에는 계약연장 가능이라고만 기재했을 뿐 2년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고 기재하지 않아 최대 2년을 염두에 두고 채용공고를 한 것"이라며 "근로계약서에도 계약연장이나 재계약 언급이 없어, 근로계약이 갱신될 것이라는 신뢰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해 1심을 뒤집었다.
 
실제로 기간제 근로자가 2년을 넘겨 일하거나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례도 없었다 점도 강조했다. 재판부는 "김천시는 관제요원 외의 다른 기간제근로자와도 총 계약기간 2년이 되면 근로계약을 종료했다"고 지적했다.

 
​■ 기간제 근로자 정규직 전환하라는 정부 지침, 갱신기대권 근거 안돼
 
갱신기대권을 인정할 수 있는지를 두고 또 하나의 중요한 쟁점이 있다. 고용노동부의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지침이 갱신기대권의 근거가 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고용노동부는 2017년 8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규직 근로자로 전환한다는 방침 아래, 공공부문 855개 기관에 "공공부문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내용의 지침(가이드라인)을 내린 바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관 단위로 설치한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의 심사에 따라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사유와 방법, 범위 등을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지침이 갱신기대권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도 쟁점이 됐다.
 
1심 법원도 "정부 지침에서는 상시지속적 업무를 수행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원칙적으로 정규직 전환 대상자로 분류하고 있고, 생명이나 안전업무 종사 근로자는 해당 공공기관이 직접 고용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명시하고 있다"며 "근로자로서는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를 거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기대했을 것"이라고 판단해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하지만 고등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정부 지침은 기간제 근로자가 '원칙적'으로 정규직 전환 대상이라는 내용일 뿐, '당연히' 정규직 전환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원칙적 전환을 권장할 뿐 기관별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가 전환 여부를 심사하도록 정하고 있으며, 정규직 전환 평가절차도 기관별로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며 "지침은 사무처리 지침일 뿐이라서, 전환범위나 방식, 채용방법에 기관별로 재량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근거로 "정부 지침은 김천시에 정규직 전환의무를 지우고 있지 않고 재량을 부여하고 있다"며 "지침이 기간제 근로자의 공무직 근로자 전환 기대권을 부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그 외에 지방자치단체가 기간제근로자를 일시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조치는 재정상황을 볼 때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정부의 추가 지침도 이런 순차 전환을 허용하고 있는 점, 경상북도 내 시군의 정규직 전환 비율이 재정상황에 따라 기간제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일시에 하지는 못한 점도 근거로 들었다.
 
이 밖에 관제요원을 줄일 필요가 있어서, 재계약을 거부한 것에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김천시가 2018년부터 도입한 스마트 관제 시스템 구축 이후 관제요원 1인당 관제할 수 있는 CCTV 수가 크게 늘었고, 따라서 인력 수요가 줄어들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
 
이 사건에서 김천시를 대리한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갱신기대권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갱신 요건이나 절차가 필요하다는 기존 판례 법리를 재확인 했다"며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갱신기대권을 인정할 수 있는지 일응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부 가이드라인의 효력 놓고 엇갈리는 판결
 
실제로 정부의 지침 발표 이후 이를 근거로 갱신기대권을 인정해 달라는 취지의 소송이 증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갱신기대권의 근거로 인정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해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공공부문 근로자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제주지방법원의 경우, 지난해 2월 13일, 한라산국립공원에서 자연환경 해설사로 근무하던 A씨 등 3명이 제주특별자치도를 상대로 청구한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근로자들의 청구를 기각하고 제주도 측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측은 2017년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A 등은 정작 정규직 공무원이 되지 못했다. 이에 A가 "정부 방침에 따라 정규직 전환대상자에 포함됐으므로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정당한 기대권이 있다"며 "부당해고라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한 것.
 
하지만 법원은 갱신기대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특히 "정규직 근로자로 채용할 의무가 발생하거나 전환될 것이라는 신뢰를 준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해 제주도 측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반면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른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에서 전환 대상자로 선정됐다면 '전환기대권'이 인정된다는 취지의 판결도 나온 바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6월 18일, 근로자 오 모 씨가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오씨는 2017년 4월부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아동청소년인권과 모니터링 코디네이터로 근무해 왔는데, 인권위원회도 정부 지침에 따라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을 마련했고, 이에 따라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를 개최해 오 씨를 전환대상자로 결정됐다. 그런데 정부가 "지침을 충족시키지 못해 임금이 예산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오씨에게 근로계약 만료를 통보하자 오씨가 소송을 제기한 것.
 
이 사건에서 법원은 "심의위원회가 정규직 전환을 결정한 이상, 근로자에게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판단해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갱신기대권이 아닌 전환기대권을 인정한 사례다.
 
이처럼 현재 정부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두고 여러 사건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정상태 변호사는 "김천시가 지방자치단체 중에서는 정부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과 관련된 소송이 처음 시작된 곳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천시에서만 같은 내용으로 1심 판결 세 건이 진행 중이었는데 두건은 김천시가 패소했고 나머지 한 건은 1심에서 진행 중"이라며 "패소한 두건이 이번에 고등법원에서 뒤집어 진 만큼, 진행 중인 다른 한건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제주도 관광해설사 사건을 맡았던 정부법무공단 김재학 변호사도 "가이드라인이 신뢰를 부여했다기 보다는 기회를 부여한 것으로 본 것 같다"며 "대법원으로 향할 경우 어떤 결론이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설명했다. 


출처 : 월간노동법률, 2021년 2월 1일 월요일, 저자 : 곽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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