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처법 ‘무죄’ 나왔다…“예측불가 사고일 뿐, 법 위반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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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 중 두 번째 무죄 판결이 나왔다. 첫 무죄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가 쟁점이 된 사건으로, 근로자 사망과 중대재해처벌법 의무 위반 간의 인과관계를 이유로 무죄가 선고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 형사5단독 김희영 판사는 지난 19일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평화오일씰공업 대표 A 씨와 법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청업체인 의창산업 대표 B 씨와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외국인 근로자 C 씨에 대해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 "사망 사고와 인과관계 없어 무죄"
근로자 D 씨는 외국인 근로자 C 씨와 의창산업 소속으로 평화오일씰공업 제4공장에서 압축성형기를 이용해 베어링 씰 성형 작업을 담당했다. C 씨는 작업 편의를 위해 본래 목적과 달리 금속링과 고무링을 안착시키는 용도로 수공구를 사용했다. 그러던 중 2022년 2월 수공구가 압축 성형기 압력으로 찌그러지다가 튕겨 나와 D 씨의 머리에 부딪혔고 D 씨는 외상형 뇌출혈로 사망했다.
검찰은 원청업체 대표 A 씨를 중대재해처벙법상 ▲안전 전담 조직 설치 의무 ▲사업장 유해ㆍ위험 요인 확인과 개선 업무 절차 마련 의무 ▲안전관리자 배치 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A 씨가 사업장 유해ㆍ위험 요인을 확인하고 개선을 위한 업무 절차를 마련했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이 아니라고 봤다. 김 판사는 "원청회사가 정기ㆍ수시로 위험성 평가를 실시했고 하청업체에 대한 위험성 평가도 실시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비록 D 씨 사망 사고와 직접 연관된 상황에 대한 점검을 없었으나 사고처럼 수공구가 끼어들어 가 사고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은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이에 대한 점검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A 씨의 안전관리자 배치 의무 이행도 인정했다. 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은 다른 법령에 따라 안전관리자를 배치한 경우도 안전관리자 배치로 인정한다"며 "A 씨가 공장 내에 소방 안전관리자를 배치해 법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안전 전담 조직을 설치했다는 A 씨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판사는 "원청회사가 안전 전담 조직 설치를 위한 내부 회의를 한 사실이 인정되지만 실제 전담 조직 설치에는 이르지 못했다"며 "전담 조직에 대한 논의만 되었을 뿐 인사 발표도 없었다"고 했다.
법원은 A 씨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봤지만, 의무 미이행과 D 씨 사망사고 사이에 인과관계는 없다고 봤다. 김 판사는 "A 씨가 안전 전담 조직을 두지 않은 것은 인정되지만 법상 의무 미이행과 중대재해 발생 간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A 씨가 해당 공정에서 수공구가 금속링과 고무링 안착을 위해 사용되는 점을 알았다고 볼 수 없고 설사 알았더라도 이것이 튕겨나가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A 씨가 전담 조직은 설치하지 않았지만 배치 인원을 결정하고 중대재해 대응 매뉴얼도 마련했다"며 "A 씨가 공장을 순회하며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사고와 의무 미이행 간의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하청업체 대표 B 씨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김 판사는 "B 씨는 C 씨가 수공구를 금속링과 고무링 안착 용도로 사용하는지 알지 못해 수공구와 관련한 작업 방법을 지정할 의무나 튕겨나갈 것에 대비해 방호 장치를 설치하는 등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설사 B 씨가 수공구 사용을 알고도 방치했다고 하더라도 예상 가능한 산업재해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사고의 원인이 된 외국인 근로자 C 씨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C 씨가 수공구를 사용하면서 산업재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예견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C 씨의 업무상 과실치사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무죄 핵심 이유는? "안전관리 체계 구축ㆍ위험성 평가"
이번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 사건에서 나온 두 번째 무죄 판결이지만, 근로자 사망과 중대재해처벌법 의무 위반 간의 인과관계를 이유로 무죄가 선고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지난 10월에 나온 첫 무죄 판결은 법 적용을 피해 무죄가 나온 사건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무죄 판결의 이유로 기업이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위험성 평가를 실제로 실시한 점을 꼽았다.
A 씨 측을 대리한 정대원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사고를 사용자가 예측하기 어려웠다"며 "이런 방식으로 사고가 난 것이 처음이어서 고용노동부도 예측이 어려운 사고였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실제로 위험성 평가를 실시한 점이 무죄 판결의 주요한 이유가 됐다"며 "이번 사고의 특수성이 있기는 하지만 만약 기업이 안전관리체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않았다면 무죄 판결이 나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이 위험성 평가 결과를 실질적으로 판단한 점도 무죄 선고의 주요 원인이다. 정 변호사는 "지금까지 수사기관은 사고가 발생하면 위험성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판단해 기소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이번 판결은 사고와 관련한 위험성 평가를 제대로 실시했는지 여부를 실질적으로 판단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 의무 위반과 사고 간 인과관계를 엄격하게 판단한 점도 영향을 끼쳤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그간의 중대재해 판결과 달리 법원이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논증했다"며 "지금까지 대부분의 중대재해 찬결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의무 위반과 사망사고 간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을 억지로 끼워 넣어 문제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에서는 인과관계 인정을 위해 무리한 시도를 하지 않고 원칙적으로 평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했다.
출처 : 이재헌 기자,중처법 ‘무죄’ 나왔다…“예측불가 사고일 뿐, 법 위반 아냐”,월간노동법률,2024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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