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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만의 통상임금 쇼크…대법 전원합의체 판결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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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61.♡.185.172)
댓글 0건 조회 34회 작성일 24-12-26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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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통상임금의 개념과 판단기준을 재정립하는 판결이 나왔다.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11년 만에 등장한 새로운 법리에 노동계와 경영계, 법조계가 들썩이고 있다.
 
이번 판결로 지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제시했던 통상임금 판단기준이 변경됐다. 기존 판례는 근로자가 받는 어떤 임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는 그 임금이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갖췄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번 판결로 통상임금 판단기준에서 '고정성' 요건이 폐기됐다.
 
즉, 근로자가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한 경우 그 대가로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진 임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핵심이다. 이에 따라 재직자 조건부 정기상여금이나 근무일수 조건부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우리 사회에서 통상임금 문제가 새삼스러운 문제는 아니다. 과거 낮은 기본급에 각종 수당과 상여금을 붙여 지급하던 복잡한 임금체계가 통상임금 소송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고, 이로 인한 노사 간 분쟁은 끊이지 않았다. 이를 한 차례 정리했던 것이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었지만, 이후에도 재직자 요건과 최소재직일 요건이 붙은 임금의 통상임금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됐다. 결국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1년 만에 새로운 법리를 제시했고 새 법리의 등장으로 통상임금 분쟁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다.
 
고정성,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
 
가장 주목할 점은 고정성 요건의 폐기다. 새 법리를 제시한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등 법령 어디에도 고정성 요건에 대한 근거를 찾아볼 수 없고, 법령상 근거가 없는 고정성을 통상임금 판단기준에 포함할 경우 통상임금의 범위가 지나치게 축소돼 연장근로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고정성 요건을 폐기했다.
 
대법원의 설명처럼 법령 어디에도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 삼을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통상임금과 관련해 축적된 대법원 판례에서 고정성은 계속 등장해 왔고 대법원도 이를 인정해 왔다. 그러던 중 고정성이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는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2013년 전원합의체는 고정성에 대해 "근로자가 임의의 날에 소정근로를 제공하면 추가적인 조건의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당연히 지급될 것이 예정된 임금이므로, 그 지급 여부나 지급액이 사전에 확정된 것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판결로 명확한 실체가 없던 고정성이 통상임금을 판단하는 구체적인 기준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됐다.
 
박은정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1970년대부터 나온 통상임금 판결을 쭉 살펴보면 2013년 전합 판결이 나오기 전에도 고정성 요건이 판결문에 등장하는데, 처음부터 2013년 전합 판결처럼 해석했던 것은 아니고 통상임금 정의규정에 있는 '지급하기로 정해진' 이 부분에 고정성 의미를 담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3년 전합 판결 이전 통상임금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고정성을 계속 인정해 왔는데, 2013년 전합 판결은 모호한 개념이었던 이 고정성이 '사전 확정성'을 담고 있다고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해준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로 고정성 요건은 11년 만에 통상임금 개념과 판단기준에서 사라지게 됐다.
 
박 교수는 "이전엔 실체가 없는 조건이었던 고정성이 2013년 전합 판결 이후 통상임금 판단기준이 되면서 통상임금을 제한적으로 지급하는 수단과 역할을 했다"며 "고정성을 폐기한 이번 판결은 이 고정성 요건이 2013년 전합 판결 이후 잘못 해석돼 왔다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판결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통상임금이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적, 일률적으로 받는 임금이라면 이미 임금 자체에 고정성이 내재돼 있는 것인데, 고정성을 별도의 요건으로 정하고 적용했더니 재직자 조건부 정기상여금 등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하급심 법원에서 재직자 조건 규정이 무효라는 판결이 나와 여러 부작용이 발생했던 것"이라며 "고정성을 별도 요건으로 두지 않아도 통상임금을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는 게 이번 대법원 판결의 취지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준희 광운대 법학부 교수는 "대법원이 법적 안전성 침해를 최소화하는 측면을 고려했다면 고정성을 폐기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재직자 한정 조항의 효력을 제한하거나 재직자 요건 적용을 엄격히 하는 등 완충적인 해석론을 통한 해결이 가능했을 텐데 손바닥 뒤집듯 11년 만에 판결을 뒤집은 건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이번 대법원 판결 자체는 통상임금의 원래 개념에 맞게 법리를 되돌려놨기 때문에 2013년 대법원이 범한 법리적 오류를 뒤늦게 바로잡은 매우 중요한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에 맞춰 임금체계를 마련하고 10년 이상 유지해 온 기업들의 혼란이 가중될 거라는 우려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들이 2013년 전합 판결에 맞게 임금체계를 설정해 놨는데, 대법원이 불가피한 변경 사유 없이 고정성을 폐기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석인지 의구심이 든다"며 "이번 판결로 기업들은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수 있고 이것이 구조조정 이슈로 이어진다면 이번 대법원 판결로 피해를 보는 건 오히려 근로자들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 '부담ㆍ혼란' 가중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많은 기업들이 상여금 등 각종 수당에 재직자 조건이나 근무일수 조건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통상임금 문제를 방어해 왔다. 그러나 이제 재직자 조건이나 근무일수 조건(소정근로일수 이내 근무일수)이 부가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임금의 통상임금성을 부정할 수 없게 됐다. 고정성 요건이 사라지면서 통상임금 인정 범위도 대폭 확대됐다.
 
결과적으로 이번 판결로 통상임금 문제를 다루는 기업의 풍경은 이전과 달라질 전망이다.
 
먼저, 일차적으로 기업의 비용 부담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통상임금에 산입되는 수당의 범위가 대폭 확대돼 기업들의 부담이 한층 높아지게 됐다"고 말했다. 최진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기존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임금체계를 만들었던 기업들은 통상임금 범위 확대로 부담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통상임금 소송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통상임금 개념이 비교적 명확해져 향후에 분쟁이 줄 가능성이 높고, 기존에 진행 중인 통상임금 분쟁도 정리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대법원도 이번 판결이 기업 현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거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이에 대법원은 "새로운 법리는 이 판결 선고일(2024년 12월 19일) 이후의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된다"고 밝혔다. 새 법리 적용에 있어 법률 효과가 장래에만 발생하는 '장래효'를 선언한 것이다. 다만, 같은 쟁점으로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병행사건)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새 법리가 소급 적용될 전망이다.
 
장래효로 인해 통상임금 줄소송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아졌다. 홍성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통상임금 문제는 근로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고정성 자체를 통상임금 요건에서 제외하면 줄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었다"며 "그러나 대법원이 법적 불안을 막고자 현재 계류 중인 사건을 제외하고는 판결의 장래효를 선언해 분쟁이 늘어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기다리면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던 노동자들에겐 이번 판결에서 장래효를 선언한 것이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며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이 장래효를 선언한 부분은 부적절하다"라고 지적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법률원은 "대법원이 판례 법리의 소급효를 일방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신뢰보호의 원칙이나 신의성실의 원칙과 같은 요소를 고려하면 과거의 임금 지급분에 대해서 새롭게 소송을 제기하는 건 법원에서 인정받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소송이 줄어도 갈등과 분쟁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기업들은 이번 대법원 판례를 반영해 임금체계를 변경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며 "이를 위한 단체협약 체결, 취업규칙 변경 과정에서 노사 갈등이 많아 혼란이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대형 로펌의 노동 전문 A 변호사도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 법리를 토대로 노사가 합의한 사항들이 의미가 없어지는 상황이 돼 이를 새로 협의하는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금체계 개편도 불가피하다. 기업은 새 법리를 적용했을 때 각 임금 항목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를 점검한 후 임금체계 개편에 나서야 한다.
 
홍 변호사는 "기업들은 이번 판례 변경 취지에 따라 임금체계와 임금 지급 구조를 점검하고 개선해야 한다"며 "당장 재직자 조건부 상여금이나 근무일수 조건부 상여금 등은 통상임금에 산입해 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A 변호사도 "기업들은 수당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바뀐 법리에 따라 각 임금 항목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기업의 임금협상 전략에도 수정이 필요하다. 정 변호사는 "기업들 중 인건비 수준을 정할 때 기존 대법원 판결에 따른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법정 수당을 예측해 임금인상률을 정해온 곳들이 있다"며 "이런 기업들의 경우 이번 판결로 법정 수당이 기존과 달라질 것이기에 임금인상률 계획을 포함해 임금체계 전반을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A 변호사도 "이번 판례 변경으로 통상임금 범위가 넓어져 기업들이 법정 수당을 추가적으로 지급하게 될 확률이 높다"며 "이에 따라 기업들이 임금인상률과 단체협약 안건을 기존과 다르게 변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임금체계 대수술이제 피할 수 없다"
 
11년 전 기업들이 상여금에 재직자 조건을 추가하는 식의 방법으로 통상임금 문제를 회피했듯이 이번에도 그러한 대응책을 찾을 수 있을까. 노동법학자들은 통상임금 문제에서 더 이상 임시방편책은 통하지 않는다고, 그동안 기업이 미루고 외면해 왔던 대대적인 임금체계 개편에 나설 때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학계에서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노력과 실행을 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기업들은 재직자 한정 조항을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부기하는 임기응변에 의지하려 했다"며 "이제는 쉬운 길을 가려고 하지 말고, 근로의 양과 질에 부합하면서도 근로자들이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요소들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고 도입하는 본격적인 임금체계 개편에 돌입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번 판결은 임금 항목을 복잡하게 만들어 통상임금 인상을 피하려는 편법적 임금지급방식이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판결"이라며 "이제 임금체계를 지나치게 복잡하게 만들어 임금 계산상의 편의를 도모하려고 하는 그런 식의 방법은 지양하고 통상임금에 대한 본격적 검토를 통해 임금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번 판결에서 등장한 새 법리는 법 개정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통상임금의 개념을 입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권 교수는 "판결이 가진 미완결성과 모호성을 해소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통상임금에 대한 개념을 입법적으로 재정비하는 것"이라며 "이번 판결은 이러한 입법적 재정비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걸 보여준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이제 통상임금 논쟁의 핵심은 노사 둘 중 어느 쪽에 유리하냐의 문제가 아니고 명확성을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의 문제"라며 "이제 노동 현장에서 이해하기 쉽고, 개량적ㆍ기술적인 관점에서의 통상임금 산식을 만드는 게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덧붙였다.


출처 : 이동희ㆍ이재헌 기자,11년 만의 통상임금 쇼크…대법 전원합의체 판결이 남긴 것, 월간노동법률, 2024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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