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건설노조가 부여하는 일감 ‘대기 순번’, 재산적 가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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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이 건설현장에 조합원을 투입시키기 위해 부여하는 대기 순번이 재산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건설노조로부터 대기 순번을 받아야 일감을 받을 수 있는 건설현장의 채용 구조를 꼬집어 건설노조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다.
3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15민사부(재판장 윤강열)는 지난달 22일 타워크레인 기사 A 씨가 건설노조를 상대로 낸 징계 무효 확인 등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앞서 1심도 A 씨 측 손을 들어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월례비가 '조합원 자격 박탈', '손배 소송'까지
타워크레인 기사가 건설현장에서 일하려면 건설노조로부터 대기 순번을 받고, 순번에 따라 현장에 투입된다. 현장에 투입된 타워크레인 기사는 타워크레인 임대사와 근로계약을 맺고 공사기간 동안 계약직 형태로 일한다. 대기 순번에서 누락되거나 배제되면 타워크레인 임대사와 계약할 수 없다.
건설노조 조합원인 타워크레인 기사 A 씨 역시 이 같은 방법으로 한 건설현장에 투입됐다. 그런데 건설노조는 A 씨가 월례비를 요구하고 조직 내 질서를 해쳤다며 A 씨에게 정권 12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월례비는 타워크레인 기사가 자신이 소속된 타워크레인 임대사가 아닌 건설현장 하청업체에게서 별도로 받는 급행료, 연장근로수당 명목 등의 돈을 말한다.
A 씨는 한 건설현장에서 하청업체와 월례비를 포함한 잔업계약에 대한 협상을 했고, 이를 알게 된 건설노조가 A 씨를 징계한 것이었다. 건설노조는 2016년부터 불법 또는 장시간 작업지시에 대한 대가로서 받는 월례비를 지급받는 걸 금지해 왔다.
A 씨는 정권 12개월의 징계가 위법해 무효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또, 조합원 자격을 잃은 동안 대기 순번을 받지 못해 일하지 못했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대기 순번, 재산적 가치 있어"…손해배상 책임 인정
1심은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건설노조가 A 씨에게 징계사유를 사전에 통지하지 않는 등 절차적 하자가 존재하고, A 씨로 인해 조직 질서가 문란해졌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1심은 건설노조의 손해배상 책임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A 씨는 정권처분 등으로 인해 건설노조의 대기 순번에 등재되지 못했고, 그로 인해 건설현장에도 배치되지 못함에 따라 수입을 얻지 못했으므로, 건설노조는 위법한 각 처분에 따라 A 씨가 대기 순번에 등재되지 못한 기간의 일실수입 상당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손해배상액은 A 씨의 월 실수령액, 대기 순번에 등재되지 못한 기간 등을 종합해 9972만20원으로 책정됐다.
2심도 징계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봤다. 건설노조는 A 씨에게 징계 재심청구를 할 이메일 주소를 잘못 알려줬고 이로 인해 A 씨의 재심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심은 "A 씨에게 징계사유를 사전 통지하지 않고 재심청구의 기회도 보장하지 않은 절차적 하자가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건설노조의 손해배상 책임은 2심에서도 인정됐다. 건설노조는 대기 순번을 주지 않아서 A 씨에게 발생한 손해가 '단결권'과 '근로계약서 제출 기회의 상실'일 뿐, '일실수입의 상실'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대기 순번이 재산적 성질이 강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대기 순번을 받아야 공사현장을 차례로 배정받을 수 있고, 임대사로부터 고용돼 근로소득을 얻을 수 있다"며 "건설노조의 A 씨에 대한 대기 순번 미부여로 인해 A 씨가 입은 손해를 일실수입의 상실이 아니라 단결권이라 보는 것은 대기 순번의 재산적 가치와 성질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근로계약서 제출 기회의 상실이라고 보는 건 이미 건설노조와 임대사 사이에 건설노조 조합원을 타워크레인 기사로 고용하기로 한 협상이 있고, 건설현장에는 대기 순번대로 배정받은 조합원만이 이력서를 제출할 기회가 있음을 간과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건설노조는 A 씨가 다른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비조합원 신분으로 일을 구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대기 순번 때문에 발생한 손해가 아니라 A 씨가 건설현장에 지원하지 않아 발생한 손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2심은 "임대사가 타워크레인 기사를 채용하는 방법은 노동조합이 지정한 사람을 채용하거나 지인의 소개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채용공고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며 "A 씨가 비조합원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채 채용공고를 통해 건설현장에서 일할 기회를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실제 건설현장에서 타워크레인 기사를 고용할 때 노동조합 조합원을 고용하는 비중은 75%, 노동조합 소속이 아닌 사람을 고용하거나 임대사에 직접 정규직으로 고용되는 비중은 25%였다. 다른 노동조합과 비교하더라도 건설노조의 조합원을 고용하는 비중은 절반에 달했다.
2심은 "A 씨에겐 대기 순번을 부여받아 건설현장에 배치됐더라면 얻을 수 있었을 근로소득을 얻지 못하는 일실수입 손해가 있었다"며 "건설노조는 A 씨에게 손해액 1억209만5698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최종 판단했다.
A 씨 측을 대리한 김한나 법무법인 율사서재(구 법률사무소 소연)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타워크레인 노동조합의 조합원에 대한 대기 순번 부여에 대해 재산적 가치를 명시적으로 인정한 판결로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같은 법무법인의 안순사 변호사는 "법원은 노동조합의 일련의 행위에 대한 불법행위책임뿐만 아니라 임금상당액의 손해배상책임까지 인정했다"며 "이번 판결이 선례가 돼 조합원 권익을 위해 존재하는 노동조합이 오히려 조합원 길들이기 수단으로 징계처분을 악용하는 부당한 상황이 재발되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출처 : 이동희 기자, 법원 “건설노조가 부여하는 일감 ‘대기 순번’, 재산적 가치 있어”, 월간노동법률, 2024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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