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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급인 안전보건 의무 확대한 대법, “실질적인 지배ㆍ관리 권한 살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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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61.♡.185.172)
댓글 0건 조회 32회 작성일 24-11-2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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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법상 형사책임을 부담하는 도급인을 판단할 때 '산업재해 유해ㆍ위험요소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ㆍ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지' 살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로 대법원이 도급인의 의무를 확대ㆍ강화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동시에 건설공사발주자에 대한 판단은 더욱 엄격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인천항만공사와 최준욱 인천항만공사 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원심은 인천항만공사가 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인천항만공사는 단순한 건설공사발주자를 넘어 수급 사업주와 동일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담하는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8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지난 14일 대법원 제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 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도급인'인가, '건설공사발주자'인가…1심은 '실형' 선고

2020년 인천항만공사가 관리하는 갑문에서 정기보수공사를 하던 하청업체 근로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검찰은 당시 인천항만공사 사장이었던 최 씨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했다며 재판에 넘겼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도급인에게 하청업체 근로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이때 도급인은 물건의 제조ㆍ건설ㆍ수리 또는 서비스 제공 등 업무를 도급하는 사업주를 말하는데, 건설공사발주자의 경우 도급인 범위에서 제외된다.

건설공사발주자는 건설공사를 도급하는 자로,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ㆍ관리하지 않는 사람이다. 즉, 건설공사발주자에게도 산업안전보건법상 일정 의무가 부과되긴 하지만, 건설공사발주자는 도급인과 달리 하청업체 근로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원칙적으로 부담하지 않는다.

쟁점은 최 씨가 도급인인지, 건설공사발주자인지 여부가 됐다. 검찰은 최 씨를 도급인이라고 봤지만, 인천항만공사 측은 자신들이 시공을 주도하거나 공사를 총괄ㆍ관리하지 않았다며 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1심은 최 씨가 도급인이라고 판단하면서 최 씨에게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법인엔 1억 원의 벌금이 선고됐다.

법원은 갑문 보수공사가 인천항만공사의 핵심적ㆍ본질적 사업이고, 인천항만공사는 갑문 유지ㆍ관리를 위한 예산과 인원을 두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사장인 최 씨는 갑문 보수공사와 관련된 사항을 직접 결재하고 보고받았다. 최 씨는 사장으로 취임하기 전 항만청 등 관련 부서에서 근무했고 안전보건관리책임자 교육을 이수했다. 취임 시에는 갑문운영팀에서 항만 내에 상존하는 안전사고의 유형과 위험 등에 대해 업무 보고를 받았다.

1심은 "최 씨가 사업장에서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향후 그러한 작업이 계속될 것이라는 사정을 미필적으로라도 인식했다고 할 것"이라며 "그런데도 이를 그대로 방치하고 이로 인해 사업장에서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채로 작업이 이루어져 근로자의 사망이라는 중차대한 결과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건설공사발주자로 무죄" 뒤집힌 판단

그러나 2심은 최 씨가 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한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인천항만공사가 '건설공사 시공을 직접 수행할 법률상 자격을 가지고 인력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따졌다.

2심은 도급인이 건설공사 시공을 직접 수행할 자격과 인력,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해당 공사를 도급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이러한 상황을 위험의 외주화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이 경우 도급인에게 하청업체 근로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를 할 것을 요구하고 이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과도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공사를 직접 수행할 수 없는 자는 공사의 공정이나 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재해의 위험, 그리고 그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조치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다"며 "이러한 자에게 하청 근로자에 대해 안전 및 보건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하고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그 지위나 역할과 비교해 과도한 책임을 부과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 목적과 맞는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판단을 인천항만공사에 적용한 결과, 인천항만공사는 건설공사발주자라는 결론이 나왔다.

2심은 "이 사건 공사는 인천항만공사 설립 목적인 '항만시설의 유지ㆍ보수'의 일환으로 시행됐지만 인천항만공사는 공사를 다른 건설업자에게 도급할 수밖에 없었다"며 "인천항만공사는 갑문 보수공사를 직접 시공할 수 있을 정도 인력이나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 못한 반면 공사를 수급한 업체는 공사보다 규모는 작지만 시공할 수 있는 인력과 전문성을 갖춘 회사였다"고 했다.

'파기환송' 대법, "실질적 지배ㆍ관리 권한 살펴야"

판단은 대법원에서 또 한 번 뒤집혔다. 대법원은 형사책임을 부담하는 도급인을 판단할 때 '산업재해 유해ㆍ위험요소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ㆍ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지' 살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건설공사를 도급하는 사업주가 자신의 사업장에서 사망한 하청업체 근로자와 관련해 형사책임을 부담하는 도급인에 해당하는지는 도급 사업주가 자신의 사업장에서 시행하는 건설공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재해 예방과 관련된 유해ㆍ위험요소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ㆍ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도급 사업주가 해당 건설공사에 대해 행사한 실질적 영향력의 정도, 도급 사업주의 해당 공사에 대한 전문성, 시공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규범적인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판단 배경엔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 취지가 존재한다. 대법원은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관계수급인 근로자 사망에 관한 형사처벌 규정을 신설한 것은 의무 인정범위를 확대하고 사망사고에 대한 도급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해 도급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예방함으로써 근로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적 결단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판단을 종합한 대법원은 인천항만공사가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인천항만공사는 자신의 사업장에서 진행된 갑문 정기보수공사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산업재해의 예방과 관련된 유해ㆍ위험 요소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ㆍ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갑문 정기보수공사에 관한 높은 전문성을 지닌 도급 사업주로서 수급인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도급인 의무 확대…건설공사발주자 판단 여지 줄어들 것"

대법원 판결은 건설공사를 시공할 자격이나 전문성이 없다면 도급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심의 판단기준과는 전혀 다른 기준을 제시했다.

홍성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원심은 건설공사에 대한 전문적인 능력을 기준으로 봤다면, 대법원은 건설공사와 관련한 전문성이 없더라도 건설공사의 시행ㆍ관리 주체라면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율촌은 지난 15일 판결 분석 리포트를 통해 "기업이 사업의 핵심시설에 대한 건설공사를 발주하는 경우 해당 건설공사를 직접 실행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실질적으로 유해ㆍ위험요소에 대해 지배ㆍ관리할 권한이 있다면 규범적 관점에서는 도급인으로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로 대법원이 도급인의 의무를 확대한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온다. 도급인인지, 건설공사발주자인지 다투는 사안에서 건설공사발주자로 판단될 여지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홍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대법원이 도급인의 의무사항을 원심보다 더 많이 넓혀 놓은 것으로 생각된다"며 "향후 법원에서 건설공사발주자로 판단하는 영역이 굉장히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우용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이 설시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취지의 관점에서 본다면 법원은 앞으로 도급인의 책임을 강하게 묻고, 건설공사발주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때 상당히 엄격하게 판단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제 기업에선 건설 면허가 없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건설공사발주자라고 안심할 게 아니라 도급인으로 평가될 여지가 있는지 면밀한 검토를 거친 후 공사 방식을 결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법무법인 율촌은 "사업 특성상 다양한 건설공사를 발주하는 경우 기업은 건설공사를 유형화해 법적 지위에 부합하는 안전보건조치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판결은 비슷한 분쟁을 겪고 있는 하급심에도 큰 영향을 미칠 예정이다. 대표적으로 한국중부발전 주식회사 사건과 한국농어촌공사 사건이 있다.

화력발전소 건설공사 현장에서 하청업체 근로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1심은 한국중부발전을 건설공사발주자로 봤으나, 항소심은 이를 뒤집고 한국중부발전을 도급인으로 판단했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의 취수탑 수문교체작업 중 하청업체 근로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1심은 한국농어촌공사의 도급인으로서의 책임을 인정했다. 이 사건 항소심은 이달 29일 선고가 예정돼 있다.


출처 : 이동희 기자, 도급인 안전보건 의무 확대한 대법, “실질적인 지배ㆍ관리 권한 살펴야”, 월간노동법률, 2024년 1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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