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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셀 ‘2천800개 전지’ 발열에도 내부 경고 무시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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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61.♡.185.172)
댓글 0건 조회 32회 작성일 24-10-10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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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이 참사 20일 전 무려 2천800여개의 전지에서 발열이 계속돼 위험성을 경고한 내부 의견도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아리셀측은 발열이 계속된다는 보고에도 군납 기일을 맞추기 위해 전지 생산을 강행해 대형 화재참사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기존에 알려진 화재 원인에 더해 내부 경고까지 외면했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재판에서 ‘범죄 중대성’에 쟁점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맨손’ 발열 확인, 작업량 압박에 이마저 ‘생략’

9일 <매일노동뉴스>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35쪽에 달하는 아리셀 공소장에는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 화재의 주된 원인인 ‘발열전지’를 사측이 이미 사고 한 달 전 감지했다는 점은 공소사실을 통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아리셀이 올해 5월13일께 전지에 발열이 발생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박순관 아리셀 대표이사의 아들인 박중언 경영총괄본부장이 이를 무시한 채 전지 운반을 지시했다고 봤다.

‘전지 발열’을 확인한 이후 조치는 사실상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발열 확인은 작업자들이 ‘맨손’으로 전지를 만지는 방식으로만 이뤄졌다. 안전보건관리 책임자인 박 총괄본부장은 발열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사내 기술연구소 이사 A씨는 6월4일 사내 이메일을 통해 “전해액 안의 불순물이 발열 원인일 가능성이 높고 불순물 제거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선 6개월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의견을 냈다. 박 총괄본부장은 구매팀으로부터 전해액 제조사를 변경했는데도 전지 발열이 계속된다는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내부 경고’는 무시됐다. 검찰은 “박 총괄본부장은 전지 발열현상에 대한 명확한 원인을 파악하거나 별다른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방위사업청과의 계약에서 정한 납품기일과 납품수량을 맞추기 위해 전지가 식으면 정상제품으로 분류해 후속공정이 진행되는 3동 2층으로 운반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생산관리팀은 6월4일 발열전지를 선별해 별도로 보관한 트레이를 정상전지와 함께 운반했다. 발열이 생긴 전지만 약 2천496개에 달했다.

참사 약 보름 전인 6월8일부터는 그나마 작업자들의 ‘맨손’으로 확인했던 발열 여부 검사와 별도 트레이 보관도 진행되지 않았다. 박중언 총괄본부장의 압박이 있었다. 검찰은 “생산관리팀 책임은 박중언 총괄본부장의 작업량 증가 지시 압박으로 작업자들에게 전지 발열검사를 생략하고, 발열전지를 정상제품으로 분류할 것을 지시했다”며 “작업자들은 별도 트레이 6개(전지 약 400개)에 보관한 발열전지를 정상전지와 구분하지 않고 함께 보관했다”고 설명했다.

네 차례 폭발 사고에도 방치, 노동자 살릴 기회 놓쳐

위험은 결국 현실화했다. 참사 이틀 전인 6월22일 전지가 뜨거워진 것을 확인한 작업자가 해당 전지를 옮기고 약 5분 뒤 전지가 폭발해 화재가 발생했다. 검찰은 아리셀이 올해 5월21일부터 6월8일까지 무리한 생산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약 2천800개의 전지가 발열했는데도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해 화재로 이어졌다고 판단했다. 발열 원인을 찾아 해결할 의지만 보였다면 대규모 화재로 번지지 않았을 개연성이 큰 셈이다.

‘발열전지 방치’ 외에도 노동자들을 살릴 기회가 최소 4번 있었다. 공소장을 보면 △반복된 화재 △대한산업안전협회의 화재 위험성 지적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 시정조치 요구 △작업량 증가와 비숙련 이주노동자 투입 등이 드러났다. 2021년에만 11~12월 연속으로 폭발과 화재가 일어났고, 이듬해 3월에는 폐전지 화재가 발생했다. 올해 6월22일 전지 폭발 사고로 이어졌고, 이틀 뒤에는 23명이 죽고 9명이 다치는 대참사를 불렀다.

리튬전지의 화재 취약성 역시 아리셀측이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순관 대표와 박중언 총괄본부장은 동종업체의 두 차례 화재사고를 언론으로 접해 배터리 제조공정의 화재 취약성을 인지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또 2019년 발생했던 군납 전지의 두 차례 화재사고에 따른 후속조치를 강조하는 육군본부 공문을 2022년 8월 받기도 했다. 아리셀과 안전관리자 위탁업무 계약을 맺은 대한산업안전협회 또한 이러한 위험성을 인식해 △소화기 위치 확인 △비상구 관리 △배터리 전해액 분리막 파손 위험성을 요청했다.

군납 과정에서의 ‘시료 바꿔치기’ 혐의도 공소장에 적시됐다. 아리셀은 올해 1월 방위사업청과 총 네 차례 리튬전지를 납품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기품원의 품질검사를 통과하기 위해 올해 4월 두 번째 납품 과정에서 시료를 바꿨다. 기품원 직원이 이를 적발해 1차 시정조치를 요구했다. 그런데도 전지용량 부족으로 국방규격 불일치 판정이 나오며 시정조치 요구를 재차 받았고, 아리셀이 결과보고서를 제출했으나 보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재차 시정조치를 요구받았다.

중대재해처벌법 의무 위반 5개 적용, 산재은폐 혐의도

아리셀은 결국 기품원의 시정조치 요구로 인한 경제 손실을 막기 위해 올해 5월 전지 생산을 재개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게다가 박 총괄본부장은 6월 품질경영팀 이사에게 일평균 생산량 2배에 달하는 전지 5천개를 매일 생산하도록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인력파견업체 ‘메이셀’에서 비숙련 이주노동자를 대거 불법파견받았다. 올해 5월에는 일용직 파견노동자가 하루 30여명 수준이었는데, 생산량을 늘린 6월 중순께는 하루 60명이 넘었다. 대부분 비숙련 이주노동자였다.

검찰은 박 대표에게 다수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조항을 적용했다. 박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의 △안전보건 목표와 경영 방침 마련(4조1호)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4조3호) △재해예방 예산 편성 및 집행(4조4호)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 기준 마련(4조5호) △중대재해 발생시 위험요인 제거 등 매뉴얼 마련(4조8호) 등 5개를 위반한 혐의를 받는다.

박 총괄본부장의 범죄행위는 더 많다. 비상구 설치 등 산재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고, 전지를 비상통로에 적재하는 등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산재은폐’ 행위는 재판의 스모킹건이 될 확률이 높다. 2022년 2월 메이셀 소속 파견노동자의 손가락 절단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피해자에게 회삿돈으로 3천만원의 합의금을 지급해 ‘공상처리’했다. 메이셀 대표는 피해자에게 돈을 주면서 민·형사상 이의 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경영책임자 잘못 명백” 21일 첫 재판

법조계는 ‘총체적 안전관리 부실’이 사고를 키웠다고 본다.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전지 폭발로 인한 화재와 인명피해를 막기 위한 경영상의 목표가 애초 없었다”며 “위험요인을 파악하려는 조치와 중대재해 발생시 작업중지나 대피 매뉴얼이 전혀 없다는 점도 드러났다. 경영책임자 잘못으로 인명사고가 발생한 인재”라고 지적했다.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는 “검찰이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4조의 안전보건 의무를 5가지나 위반한 것으로 공소사실을 기재했다”며 “사실상 안전보건체계 확보를 위한 의무이행을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법 위반 정도가 중하다고 본 셈”이라고 설명했다.

‘위험성평가 부실’이 공소사실에 포함된 점이 유의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아리셀은 수차례 폭발 사고에도 2022년 위험성평가에서 유해·위험요인으로 보지 않고 대책을 수립하지 않은 것으로 검찰은 판단했다. 박다혜 변호사(법률사무소 고른 대표변호사)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성평가가 사업주 의무인데도 벌칙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까지는 유명무실한 제도로 취급받았다”며 “다른 중대재해 사건도 아리셀 사건처럼 위험성평가를 업무상 주의의무로 충분히 볼 수 있다. 위험성평가가 제대로 실시되도록 지도·감독해 재해 발생을 예방할 필요성이 강조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 등에 대한 첫 재판은 21일 오후 3시 수원지법 형사14부(재판장 고권홍 부장판사)에서 열린다. 경기도가 구성한 ‘전지공장 화재사고의 조사와 회복을 위한 자문위원회’는 지난 8일 박 대표를 국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처 : 2024년 10월 9일, 매일노동뉴스, 홍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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