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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포기한 현대제철 하청노동자 “업무상 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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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61.♡.185.172)
댓글 0건 조회 43회 작성일 24-10-07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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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당진공장 하청노동자가 강제 전적 관련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지난해 복직을 일주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고인은 2021년 현대제철 자회사 현대ITC 설립 이후 소속 협력업체가 폐업하면서 10년 넘게 일한 업무와는 전혀 다른 업무에 투입된 채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일하다 안전사고를 내고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고인의 사망은 최근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됐다.

6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현대제철 당진공장 하청노동자 A(사망 당시 44)씨는 복직을 일주일 앞둔 시점인 지난해 8월29일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후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9월6일 결국 숨졌다. A씨 유족은 고인이 강제 전적된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가 누적된 상태에서 안전사고를 일으켜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례비를 청구했다.

대전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지난 7월 “재해자는 안전사고 발생 이후 정신적 부담과 스트레스로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없어 휴직했고, 이후 전직 및 업무변경을 요청했으나 거절된 사실이 확인되며 그로 인해 우울증이 악화된 것으로 판단된다”며 “재해자 사망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 참석한 위원들 다수 의견”이라고 밝혔다.

10년 넘게 같은 일 했는데, 하루아침에 다른 업무로 배치
익숙지 않은 업무 투입돼 사고 … 배상 책임 ‘부담’


A씨는 2010년 8월 현대제철 당진공장 협력업체에 입사한 뒤 줄곧 연주(연속주조) 조업지원 업무를 맡았다. 3~4년마다 소속 회사명은 바뀌어도 하는 일은 같았다. 그런데 2021년 7월 현대제철 원청이 자회사 ‘현대ITC’ 추진안을 발표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A씨가 일하던 협력업체는 2021년 8월31일부로 현대제철과 도급계약을 종료하면서 전 직원과의 고용관계도 종료했다.

자회사로 떠난 동료들도 있었지만 A씨는 자회사 채용에 응하지 않았다. 원청을 상대로 2016년 1월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취하하고 임금청구 소송을 비롯한 민사·형사·행정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부제소 확약서에 서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A씨는 기존 협력업체 폐업 이후 3개월간 ‘전적 대기’ 상태로 있다가 2021년 12월 냉연공장 롤샵업무로 배치됐다. 공정부터 취급하는 재료와 중량물, 사용하는 도구, 업무수행 방법까지 180도 다른 업무였다. 2023년 3월 또다시 업체가 변경됐고, A씨는 롤을 크레인으로 옮기는 업무를 수행하게 됐다.

익숙하지 않은 업무에 투입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3월20일 A씨가 크레인으로 롤을 옮기는 작업 도중 조작 실수로 롤이 바닥에 적재된 여러 롤과 충돌해 파손됐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사고는 A씨에게 큰 충격으로 남았다. 롤 파손 책임에 대한 압박, 동료들의 비난, 자책 등 여러 감정이 얽혀 트라우마가 됐다. A씨 부인 이아무개씨는 <매일노동뉴스>에 “눈을 감으면 사고 장면이 계속 그려진다고 했다”며 “자꾸 생각이 나서 크레인을 잡을 수 없는데 동료들한테서 ‘크레인 안 할거면 뭐하러 나오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A씨는 업무 변경을 위해 사측에 전보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병가 휴직을 냈다. 이후 병원에서 급성 스트레스 반응, 경도 우울 에피소드 등 진단을 받았다.

업무 변경도, 이직도, 휴직 연장도 어려워 ‘고립’

이직도 고려했지만 퇴사하면 불법파견 소송에서 최종 승소해도 정규직으로 전환되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포기했다고 한다. 인천지법은 2022년 12월 A씨를 포함해 920여명이 현대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씨는 “남편은 감옥 안에 갇힌 것이나 다름 없었다”며 “340만~380만원 정도였던 월급이 휴직 이후 50만~70만원 수준으로 떨어져서 휴직을 연장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A씨는 복직 시점이 다가올수록 예민해졌다고 한다.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잠도 거의 자지 않았다. 그로 인해 가족 간 다툼도 잦아졌다. 복직일(2023년 9월5일)을 일주일 남겨둔 8월29일, A씨는 자살을 시도했다. 그는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뇌사판정을 받고 9월6일 끝내 사망했다.

하청업체측은 공단에 제출한 보험가입자 의견서에서 “자회사 설립 후 입사 및 공정 선택은 재해자 선택이었으며 3천만원의 롤 파손건에 대한 책임도 묻지 않은 상태로 업무와의 연관성을 당사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업무상질병판정서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피해손실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해당 손실비용을 도급비에서 공제한 이력이 없다”며 “개인 징계에 대한 건은 당사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A씨 유족 이씨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편이 애초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시작한 것도 (정규직과) 차별하지 말고, 인간답게 대우해 달라는 것”이라며 “(자회사로 가지 않은 비정규직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고, 10년 넘게 같은 곳에서 같은 일만 했던 사람을, 다른 공정으로 보내는, 생계를 가지고 휘두르는 건 월권”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출처 : 2024년 10월 7일, 매일노동뉴스, 어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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