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중 멀티업무’ 초등교사의 자살, 법원 “공무상 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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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고학년 담임과 부장을 담당하며 받은 업무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사에게 법원이 ‘공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업무상 재해를 판단할 때 ‘사회평균인’이 아닌 ‘개인의 특성’을 기준으로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2017년 대법원 판결을 재차 확인했다.
우울증 진단에도 업무 복귀 “학생 보면 경직”
7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최수진 부장판사)는 사망한 초등학교 교사 A(사망 당시 33세)씨의 배우자가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낸 순직유족급여 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광주광역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했던 A씨는 2020년 9월 거주하던 아파트 21층에서 몸을 던져 숨졌다. 학교에 부임한 지 2년 만이었다. 교사 경력 10년 차였던 A씨가 세상을 등진 배경에는 ‘과중한 업무 부담’이 있었던 것으로 사후에 밝혀졌다.
A씨는 부임 첫해인 2018년부터 고학년(5·6학년) 담임을 맡다가 2020년에는 6학년 담임을 했다. 고학년은 저학년에 비해 6교시(오후 2시30분 종료)까지 수업을 해서 업무 부담이 큰 상황이었다. 게다가 A씨는 2020년 1월부터 3월까지 ‘6학년 부장’까지 맡았다.
‘코로나19 확산’도 업무 스트레스에 영향을 미쳤다. 2020년 3월 새 학기부터 원격수업이 실시돼 A씨는 매일 원격학습 자료를 준비했다.
교사 본연의 업무 외에도 ‘기자재 담당’ 직책까지 맡았다. 2018년부터 교육자재를 구입·교체하는 업무를 담당하며 업체 선정과 가격 조율, 의견 수렴 등을 거쳐야만 했다. 결국 A씨는 2020년 3월 ‘상세불명의 우울에피소드’를 진단받았다. 진료기록에는 “개학은 안 했지만 준비하는데 해야 할 일이 주어질 때마다 두렵다” “길가에서 학생만 봐도 경직되고 위축된다” 등의 내용이 적혔다.
피로가 쌓여 그해 4월부터 두 달간 병가를 냈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A씨는 다시 6학년 담임으로 복귀해 원격수업과 체험학습 계획 등 부장 업무를 병행했다.
법원 “개인적 취약성 있더라도 업무적 요인이 원인”
A씨가 받은 심리평가 결과도 심각했다. 심리평가보고서에는 A씨에 대해 “직업 선택에 회의를 느끼며 스트레스에 짓눌려 대처할 수 없다고 느낀다”고 나와 있다. 실제 A씨는 사망 당일 학부모에게 안내장을 잘못 전달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체험학습 업체 관계자와도 예산을 두고 일정을 조율하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유족은 과도한 업무 부담이 자살에 이르렀다며 2021년 7월 순직유족급여를 청구했지만, 인사처는 “업무적 요인이 없었다”며 불승인했다. A씨 아내는 그해 10월 소송을 냈다. 법원은 “교직 업무 외에 고인에게 우울증을 발생하게 할 만한 사건이 있다고 볼 만한 구체적인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며 공무상 재해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고인은 스스로 정신과를 찾아 상담과 치료를 받고 병가를 사용하기도 했으나 학교로 복귀한 후에도 업무상 부담감이 해소되지 않아 우울증이 급격히 악화했다”며 “비록 고인이 다른 교사들에 비해 지나치게 과다한 업무를 수행했던 것은 아니라 개인적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해서 달리 볼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법원 감정의도 “업무상 요인이 자살 시도 결심과 실행에 관련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소견을 냈다.
A씨 유족을 대리한 김용준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자살에 이르게 된 요인 중 내인적 소인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업무상 소인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업무상 소인이 인정되면 공무상 재해로 인한 사망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 데에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출처 : 2024년 10월 8일, 매일노동뉴스, 홍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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