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상급단체 변경해도 이전 상급단체 조합원 자격 유지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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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조직형태 변경을 했더라도 조합원들의 명시적인 탈퇴 의사가 없었다면 상급단체를 탈퇴한 게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조직형태 변경이 상급단체 탈퇴를 전제로 한다는 기존 고용노동부 행정 해석을 뒤집는 판결로 노사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17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1민사부(재판장 구광현)는 지난 9월 11일 전국환경노동조합(환경노조) 송파지부 지부장 A 씨가 환경노조를 상대로 낸 징계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조직형태 변경'이 곧 상급단체 탈퇴는 아냐
A 씨는 지난해 4월 환경노조 간부들이 있는 SNS 단체대화방에 집행부의 조합비 횡령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환경노조는 지난해 5월 A 씨를 허위 사실 유포와 명예 훼손으로 조합원 권리 1년 정지 징계를 의결했다.
그러나 징계가 의결되기 한 달 전 A 씨가 속한 환경노조 송파지부는 임시총회를 열어 환경노조 송파지부에서 전국환경시설노동조합 송파지부로 조직형태를 변경했다. 다만 지부는 조직형태만 변경했을 뿐, 환경노조 탈퇴를 결의한 건 아니었다. 지부는 환경노조에 조합원들이 환경노조 탈퇴를 원하지 않는다는 공문을 보내 환경노조 조합원 지위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A 씨는 환경노조를 상대로 징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환경노조는 징계 당시 A 씨가 조합원이 아니었다며 소송이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A 씨가 조합원 지위를 유지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른 산별노조 지부로 조직형태 변경을 결의했더라도 기존에 소속된 산별노조 조합원으로서의 지위가 당연 소멸되는 것은 아니"라며 "조직형태 변경은 집단적ㆍ단체적 행동으로 이로 인해 개별 근로자에게 전속된 권리인 특정 노조 가입 여부가 결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송파지부 조합원들이 환경노조 조합원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겠다고 명시적으로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후 조합비를 납부하지 않았더라도 징계 사유가 될 뿐 조합원 자격 상실 사유는 아니"라며 "A 씨의 환경노조 조합원 자격이 유효해 징계 무효 확인을 다툴 확인의 이익이 있다"고 했다.
집행부 의혹 제기는 '정당한 권리'
A 씨의 조합원 자격이 인정되면서 소송의 쟁점은 징계 절차와 징계 사유가 정당한지로 좁혀졌다. A 씨는 징계 절차에 문제를 지적했다. A 씨는 조합원 권리가 1년 정지되면 지부장 역할을 수행할 수 없어져 환경노조가 일반 조합원 징계 절차가 아닌 노조 간부 탄핵 절차에 따라 출석 조합원 3분의 2 의결로 징계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징계 절차는 적법하지만 징계 사유는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 씨가 징계로 인해 남은 지부장 임기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됐더라도 이것을 노조 임원 탄핵으로 볼 수는 없다"며 "일반 조합원 징계 절차를 거쳤다면 적법하다"고 했다.
법원은 조합원이 노조 집행부를 비판하는 것은 정당한 활동이라며 징계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집행부에 대한 비판은 조합원으로서의 정당한 활동 범위 내의 일"이라며 "A 씨가 집행부의 비리 의혹을 제기한 것은 허위 사실 적시와 명예훼손이 아닌 주관적 의견 표명과 문제 제기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 씨가 양심선언문을 노조 간부들로 구성된 SNS 단체대화방에 게시해 일반 조합원이나 외부에는 공표되지 않았다"며 "노조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정당한 조합 활동을 방해한 것으로 볼 수 없어 징계는 무효"라고 했다.
이본 판결은 조직형태 변경 시 상급단체 탈퇴가 전제된다고 본 고용노동부 행정 해석을 뒤집는 판결이다. 이로 인해 지부ㆍ지회가 조직형태 변경을 하더라도 조합원들은 기존에 소속된 산별노조의 단체협약의 효력을 그대로 받을 수 있게 됐다.
정동일 법률사무소 해방 대표변호사는 "판결에 따르면 조직형태 변경은 지부의 법적 성격 변화일 뿐"이라며 "상급단체와의 관계는 단절된 것이 아니어서 조합원들은 계속 상급단체가 체결한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상급단체의 영향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정 변호사는 "지부ㆍ지회가 상급단체 단체협약의 보호를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교섭권을 확보할 수 있게 돼 단체협약 적용 제외를 걱정해 탈퇴하지 못한 지부ㆍ지회들이 조직형태 변경을 시도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산별노조의 통제력을 약화시키고 기업별 교섭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노사관계의 지형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교섭 상대방이 이원화되는 상황에 놓일 수 있고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 등에서 법적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며 "기업 교섭 전략에 더 높은 수준의 법률적 검토가 요구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별노조 지부가 상급단체를 완전히 탈퇴하기 위해서는 상급단체 탈퇴 안건을 총회에 별도로 상정해 통과시켜야 한다. 정 변호사는 "조직형태 변경만으로 조합원의 상급단체 탈퇴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조합법에 따라 총회에 별도 안건을 상정한 뒤 재적 조합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조합원 3분의 2 찬성이 있어야 상급단체 탈퇴가 가능하다"고 했다.
출처 : 이재헌 기자, 법원, “상급단체 변경해도 이전 상급단체 조합원 자격 유지돼”, 월간노동법률, 2025년 1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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