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무죄’에도 해임된 교수…대법 “일부 인정돼 해임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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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사유가 일부 인정된다면 그 일부만으로 해임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를 근거로 해임했더라도 행정소송에서 증거능력이 일률적으로 부정되지 않는다는 판단도 같이 내놨다.
24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제3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지난 17일 서울대에서 해임된 전(前) 교수 A 씨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낸 해임처분 취소 청구 기각 결정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2019년 대학원생 B 씨는 당시 교수였던 A 씨가 해외 출장 중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주장하며 학교에 대자보를 붙였다. 조사에 나선 학교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A 씨를 해임했다.
A 씨의 징계사유는 ▲해외 출장 중 B 씨 성추행 ▲대학원생들에게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질책ㆍ강요 ▲"남자 친구 사귀려면 허락 받아야 한다" 등 사생활 침해 발언 ▲조교들에게 설거지ㆍ연구실 청소 등 개인적 업무 지시 ▲논문 중복 게재와 선행 논문 미표기 등이었다. 이 중 주된 징계사유는 A 씨가 B 씨의 정수리와 허벅지를 만지고, B 씨에게 팔짱을 끼라고 지시한 성추행 행위였다.
A 씨는 해임처분에 대해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를 청구했지만 기각되자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해임 '위법'…"성추행 일부는 사실 아냐"
1심은 해임이 위법하다고 봤다. 법원은 징계사유 대부분을 사실로 판단했지만, A 씨가 B 씨의 정수리와 허벅지를 만진 건 성추행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1심은 징계사유 대부분이 사실이더라도 해임의 주된 이유인 성추행의 일부가 사실이 아니라면 해임이 위법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해임의 주된 이유가 A 씨의 성추행이었지만 일부 행위는 성추행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주된 사유 일부가 인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A 씨를 해임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했다.
법원은 성추행 형사사건에서 A 씨가 무죄를 받은 점도 고려했다. 검찰은 강제 추행 혐의로 A 씨를 기소했지만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은 "관련 형사사건에서 A 씨의 강제 추행 혐의가 무죄로 판단됐다"며 "A 씨와 B 씨의 친분을 고려할 때 성추행이 고의로 일어난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의해 해임처분이 내려진 점도 지적했다. 서울대 비전임 강사 C 씨는 A 씨의 포털 계정 비밀번호를 몰래 알아내 이메일을 캡처한 뒤 징계위원회에 제보했다. 징계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해임처분을 했다. 이 일로 C 씨는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법원은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더라도 징계절차엔 문제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를 토대로 징계 처분을 했더라도 형사소송법과 달리 행정소송법에는 위법한 증거를 배제하는 규정이 없다"며 "징계절차에는 위법성이 없다"고 했다.
2심ㆍ대법은 해임 '적법'…"일부만으로도 해임 충분"
그러나 2심은 해임이 적법하다며 1심을 뒤집었다. 대법원도 같은 판단을 해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주된 해임 사유인 성추행 중 일부가 부정됐지만 인정된 사유만으로도 해임은 적법하다"며 "해임처분이 비례ㆍ평등의 원칙에 위배돼 재량권 한계를 벗어난 위법한 처분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징계절차의 정당성도 인정됐다. 재판부는 "형사소송의 위법 수집 증거는 행정소송에서 증거능력이 부정되지 않는다"며 "이를 기반으로 한 조사와 징계에 절차적 하자와 위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위법 수집 증거 배제원칙을 따르는 형사소송과 달리 행정소송에서는 법원 재량으로 위법 수집 증거의 증거능력이 결정된다. 이진규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행정소송에선 증거가 위법적인 방법으로 수집됐다는 이유만으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위법 수집 증거의 증거능력은 사실심 법원의 재량에 따른다"고 설명했다.
행정사건의 경우 증거를 수집한 수단이나 방법이 사회질서에 현저하게 반하거나 상대방의 인격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지 여부로 증거능력을 판단하고 있다. 즉, 증거 수집의 수단이나 방법이 현저히 반사회적이거나 인격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경우엔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된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을 판단할 때도 이 같은 판단기준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송연창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서 학교가 A 씨에 대한 징계나 사찰 목적으로 증거를 위법하게 수집한 것이 아닌 C 씨의 제보를 통해 위법 증거를 얻게 돼 법원이 이점을 고려해 증거능력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학교가 나서서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고 이메일을 몰래 열람해 증거를 수집했다면 증거능력이 인정됐을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여러 개의 징계사유 중 일부만 인정되더라도 그 일부가 중대할 경우 징계처분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 변호사는 "단순히 징계사유 일부만 인정돼도 해고 등 징계처분이 적법한 것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일부 인정된 징계사유가 중대성을 갖는 경우엔 해고가 적법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도 "대법원은 일부 인정된 징계사유의 처분 경위, 내용과 비중, 종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징계의 적법성을 판단한다"며 "인정된 징계사유만으로 동일한 징계처분을 할 가능성이 있는지도 고려 대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인정된 징계사유만으로도 해고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면 이번 사건처럼 징계의 적법성이 인정된다"며 "다만 해고의 증명 책임은 사용자가 부담해 회사는 이를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 이재헌 기자, ‘성추행 무죄’에도 해임된 교수…대법 “일부 인정돼 해임 정당”, 월간노동법률, 2025년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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