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사용자, 소극적 공정대표의무만 부담”...새 법리에 손배 피한 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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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는 소극적 공정대표의무만을 부담한다는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회사가 적극적으로 나서 교섭대표노조와 소수노조 간 발생한 차별을 시정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다만 회사는 어느 한 노조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인 태도는 유지해야 한다.
사건 당사자인 포스코는 새 법리로 공정대표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도 피할 수 있었다. 다만 노조에 지원한 차량 배분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돼 전국금속노동조합 포스코지회에 1000만 원을 배상하게 됐다.
"사용자는 소극적 공정대표의무만 부담" 대법서 확정
지난 22일 대법원은 포스코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공정대표의무 위반 시정 재심결정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상고 대상이 아닌 판결의 경우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기각하는 것을 뜻한다.
2020년 전국금속노동조합 포스코지회(지회)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포스코 노동조합(포스코노조)는 근로시간 면제 한도(타임오프) 배분에 합의하지 못했다. 당시 교섭대표노조인 포스코노조는 회사에 분배를 요청했다.
지회는 회사의 타임오프 분배가 잘못됐다면서 반발했다. 과거 회사와 포스코노조가 체결한 타임오프 분배 합의에 어긋난다는 이유다. 지회는 회사와 포스코노조가 공정대표의무를 위반해 소수노조인 지회를 차별하고 있다면서 시정을 요구했다.
쟁점은 회사가 어느 정도의 공정대표의무를 부담하는지로 떠올랐다. 사용자가 적극적 공정대표의무를 부담하게 된다면 사용자는 지회가 차별받지 않을 방법을 모색해 타임오프를 배분해야 할 의무를 진다. 반면 소극적 공정대표의무만을 부담한다면 회사는 중립적 태도를 유지하면 될 뿐 적극적으로 차별을 시정할 의무는 지지 않게 된다.
1심은 지회 손을 들었지만 2심을 심리한 서울고법은 포스코가 공정대표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사용자에게 소극적 공정대표의무만을 인정한 것이다. 사용자가 소극적 공정대표의무만을 부담한다는 법리를 명시적으로 제시한 첫 법원 판단이었다. 이 판단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지난해 12월 서울고법은 "사용자가 부담하는 공정대표의무 내용은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며 체결된 단체협약을 이행하는 것과 관련해 어느 일방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하고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소극적 의무라고 봐야 한다"며 "노조 간 견해 대립이 있는 경우 사용자는 각각의 노조가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출한 자료를 면밀히 검토해 보다 객관성ㆍ타당성이 인정된다고 판단되는 처리 방향을 채택하면 충분하다"고 했다.
이어 "한 노조로부터 이의제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후견적 지위에서 적극적으로 제3의 해결책을 모색해 노조에 제시해야 할 적극적 의무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부연했다.
손배소 '소극적 공정대표의무' 유지됐지만...차량 배분은 위법
대법원 판결에 앞서 회사와 포스코노조의 공정대표의무 위반 손해배상 책임을 따지는 1심 판결도 나왔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제42민사부(재판장 정현석)는 전국금속노동조합이 포스코와 포스코노조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법원은 지회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용자는 소극적 공정대표의무만을 진다는 법리가 적용돼서다. 다만 지회가 청구한 약 1억7000만 원 손해배상액 중 1000만 원 상당의 회사 책임은 인정됐다.
회사의 공정대표의무 위반 책임이 인정된 것은 차량 배분 때문이다. 앞서 포스코는 노조에 지원하기로 한 차량 3대의 지원 기간을 포스코노조와 지회에 11 대 1 비율로 배분했다. 포스코노조는 2대 차량을 사용하고 지회는 1대 차량을 5개월만 사용하게 한 것이다.
포스코는 타임오프를 배분과 마찬가지로 체크오프 인원수에 따라 배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회사 책임을 인정했다. 차량 배분은 타임오프 배분과는 달리 회사와 노조가 배분 기준을 합의한 적 없어 회사가 기준을 정할 수 있다. 그러나 조합원 수를 판단하는 기준 설정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근로자들이 포항과 광양에 나뉘어 있는 포스코 특성상 원활한 조합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차량 지원 필요성이 크다"며 "지회와 포스코노조는 같은 사업장 내 복수노조로서 각자 조합원을 유치하는 경쟁관계인데 회사가 차량 지원을 한 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할 경우 조합원 모집 활동도 한 쪽에 과도하게 유리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 대의 차량을 특정 기간에만 지회가 사용하거나 지회가 시기별로 빌려 쓰는 방식은 실질적으로 제대로 차량을 사용할 수 없는 조치에 해당하는 점 등을 보면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차량 지원이 노동조합의 존립과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더라도 사용자가 이를 제공하기로 한 이상 교섭창구 단일화에 참여한 노동조합 간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은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회는 이 소송에서 회사와 포스코노조가 ▲타임오프 배분 ▲단체교섭과 단체협약 체결 관련 정보 미제공 ▲포스코노조의 임금협약 교섭권 포기에 대해서도 공정대표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차량 배분과 관련해서는 손해배상 소송 외에도 공정대표의무 위반 시정 재심결정 취소 소송이 별도로 진행 중이다. 1심과 2심에서는 지회가 승소했고 사건은 대법원에 올라갔다.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차량 배분에 대해 회사의 공정대표의무 위반을 인정하는 결론이 나와 지회의 주장에 힘이 실린다. 다만 사용자가 소극적 공정대표만을 부담한다는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는 점은 향후 법원의 판단을 바꿀 수 있다는 변수다.
두 사건에서 회사 측을 대리한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사용자의 공정대표의무는 소극적ㆍ수동적 의무라는 관점에서 회사가 인지하고 있는 기준으로 타임오프를 배분한 것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은 타당하다"며 "다만 법원이 타임오프와 같은 기준을 적용한 차량 배분에 대해 공정대표의무 위반을 인정한 것에는 의문이 들고 동일한 쟁점을 심리 중인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록 포스코지회장은 "금속노조가 설립되자 또 다른 노조 세력을 키워 노노 간 대립 구도를 만든 회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법적 논리보다는 노동자의 단결된 힘이 답이라고 생각한다"며 "지회는 포스코노조와도 소통하면서 포스코 내 모든 노동자가 하나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출처: 2024년 05월 31일, 월간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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