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졸속’ 도입한 지방공기업, 법원서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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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공기업의 졸속적인 임금피크제 도입이 법원에서 제동 걸렸다. 재판부는 사업주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적법한 동의절차를 거치지 않은 데다가, 임금삭감이라는 불이익에도 적절한 대상조치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33단독(부장판사 김주옥)는 지난달 30일 서울 동작구시설관리공단 퇴직자 A씨가 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피크제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정부 지침 내려오자마자 임금피크제 도입
동작구시설관리공단은 조례에 따라 구립체육시설을 관리·운영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A씨는 2001년 일반직 3급으로 공단에 입사해 체육사업팀에서 근무하다가 2021년 12월 60세로 정년퇴직했다.
공단은 2015년 9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에서 지방공기업 임금피크제 권고안을 내려보낸 지 한달만이다. 60세 정년을 유지하면서 정년 3년 전부터 연차적으로 급여의 10%, 15%, 20%를 삭감하는 내용이다. 적용 대상은 급여수준이 최저임금 150% 이하인 일반직·전문직 8급과 현업직 등 임금이 적은 직원을 제외한 전 직원이었다.
A씨는 공단이 임금피크제를 졸속 도입해 절차를 지키지 않았고,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해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노동자를 차별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집단적 동의 있었다 할 수 없어”
김주옥 부장판사는 절차상 하자를 지적했다. 김 부장판사는 “임금피크제 운영내규 제정은 정년이나 근로조건 변화 없이 정년에 임박한 노동자에 대한 임금의 삭감만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므로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에 해당함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과반수 노조가 없는 상황에서 공단이 형식적 동의 절차를 거친 점을 지적했다. 김 부장판사는 “공단이 직원들을 상대로 임금피크제 설명회를 개최한 사실은 인정되나 어떤 부서에서 몇 명의 노동자가 참석했는지, 참석 노동자와 사용자측 사이 또는 사용자 상호 간 찬반 의견 교환이 이뤄졌는지 알 수 있는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짚었다.
이어 “공단이 개최한 노사협의회에 참석한 근로자위원 5명이 집단적 의사를 대변한다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다”며 “근로자 집단의 동의는 단순히 개별적으로 동의한 근로자수의 합산을 의미하는 건 아니므로 과반수가 동의서에 서명했다는 사정만으로 적법한 집단적 동의가 있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 차별
“청년채용했어도 불이익 상쇄 안 돼”
합리적 이유가 없는 연령 차별이란 점도 인정됐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임금피크제 유효성은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자 불이익 정도 △대상 조치 도입 여부 및 적정성 △감액된 재원 사용처 등을 고려해 판단된다.
김 부장판사는 “근로조건에 변화가 없었고 임금삭감 불이익에 대한 적절한 대상 조치가 취해졌다고 볼 자료가 없다”며 지적했다. 그러면서 “임금피크제 시행 이후 3명을 채용한 사실은 인정되나 감액된 재원이 그 비용으로 사용됐다고 인정할 자료가 부족하다”며 “설령 감액된 재원을 신규 청년채용에 사용했다고 해도 이미 60세 정년을 보장받던 노동자들이 입는 불이익을 충분히 상쇄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김 부장판사는 공단의 불법행위를 지적하며 임금채권이 아닌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기도 했다. 공단은 근로기준법상 임금채권 소멸시효인 3년이 지났기 때문에 지급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부장판사는 “공단이 A씨에 대해 무효인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임금을 감액시킨 행위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며 공단의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손해배상 청구권의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은 대법원이 임금피크제 유효성 판단 기준을 설시한 2022년 5월로 봤다.
지방공기업 임금피크제 무효 판례 쌓여
A씨를 대리한 이진욱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박근혜 정부 당시 급하게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가 법원에서 무효 판결을 받는 지방공기업 사례가 쌓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진화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팀 부팀장은 “기획재정부는 임금피크제가 실패했음을 인정해야 한다”며 “임금피크제 지침을 폐기하고 각 기관이 제도를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 2024년 05월 08일, 매일노동뉴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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