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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조치 없이 추락사] “노동자 아닌 수급자” 시공자에 면죄부 준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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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61.♡.185.172)
댓글 0건 조회 45회 작성일 24-05-2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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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에서 일하던 목수가 6미터 아래로 떨어져 사망했다. 소규모 공사현장엔 추락을 대비한 안전조치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시공자 책임을 묻지 않았다. 숨진 목수가 노동자가 아닌, 시공자에게 일을 도급받은 수급인이란 이유다. 수급인과 노동자를 기계적으로 분리해 시공자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안전모조차 없이 공사현장 투입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최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를 받는 A씨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농기계 사업을 하는 A씨는 농기계 신축을 위해 2021년 11월 경남 함안에서 공사를 시공했다. 이 과정에서 판넬 설치 작업을 목수 B씨에게 맡겼다. B씨는 경력이 많은 목수로 팀을 이뤄 건축 공사를 해 왔다. 동료 2명을 불러 일했다. 사고는 한순간이었다. B씨는 높이 5.8미터 상당의 건축물 지붕에서 작업하던 중 중심을 잃고 추락해 사망했다.

현장에 추락을 대비한 안전장치는 없었다. B씨 등은 안전모 및 안전대를 지급받지 않았고, 안전난간은 물론 추락방호망·안전대 부착설비 등도 설치되지 않았다. 검찰은 A씨가 사업주로서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1심을 심리한 창원지법 마산지원 형사3단독(양석용 부장판사)은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A씨와 B씨의 실질적 고용관계를 인정해 A씨에게 사업주로서 안전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양석용 부장판사는 양형 판단에서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고, 유족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면서도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동종 전력도 없다”고 설명했다.

수급인만 강조한 법원

그러나 2심에서 판단이 뒤집혔다. A씨를 사업주가 아닌 도급인으로, B씨를 노동자가 아닌 수급인으로 본 것이다. 창원지법 형사3-1부(재판장 신종환 부장판사)는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업주가 아닌 도급인이라는 A씨측 주장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A씨와 피해자 사이에 실질적 고용관계가 성립했다거나 A씨가 피해자의 시공이나 개별 작업에 관해 구체적으로 지시·감독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에게 수급인에 대한 안전조치 의무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산업안전보건법 63조는 ‘도급인의 노동자 또는 수급인의 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조치 의무 등에 관해만 규정하고 있을 뿐, ‘도급인 본인이나 수급인 본인’의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조치 의무에 대해서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언급했다.

재판 과정에서 B씨가 노동자로서 일한 정황이 인정됐지만, 수급인으로서의 역할이 더 부각됐다. 재판부는 A씨와 B씨가 계약관계를 알 수 없는 구두 계약만 체결한 점, 다른 노동자 2명이 A씨가 아닌 B씨와 임금 관련 대화를 나눈 점 등을 지적했다. A씨가 현장에 상주하며 직접 지시했다는 증언에 대해 재판부는 “일반적 도급관계”라고 일축했다.

재판부는 B씨 사망에 대한 혐의를 무죄로 봤지만, 다른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의무 위반 혐의를 유죄로 봐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대법원 역시 2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소규모 현장서 수급인-노동자 분리 안 돼”

형식적으로 수급인을 판단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향법)는 “소규모 공사 현장일수록 수급인이면서 동시에 가장 많이 일하는 노동자일 가능성이 크다”며 “수급인의 노동자까지 도급인의 안전조치 의무를 넓힌 건 안전한 현장을 만들라는 취지지 누군가를 배제하라는 게 아니다. 수급인과 노동자를 기계적으로 분리하는 해석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수급인도 보호받을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중대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은 종사자에 수급인을 포함한다”며 “산업안전보건법도 중대재해처벌법처럼 근로기준법상 고용관계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처 : 2024년 05월 23일, 매일노동뉴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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