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직 ‘월 가동일수’는 20일”…21년 만에 뒤바뀐 판결, 어떤 변화 가져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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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 근로자가 산업재해를 당한 경우 손해배상액 산정 기준이 되는 '월 가동일수'는 20일을 초과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기존 월 가동일수는 22일이었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로 21년 만에 그 기준이 변경됐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근로일수가 줄어들고 공휴일이 늘어나는 등 사회ㆍ경제적 변화를 반영한 결과다.
이번 판결로 산재를 당한 근로자들이 받을 손해배상액이 줄어들게 됐다. 공단이 지급하는 손해배상액부터 근로자가 회사에 청구할 수 있는 민사상 손해배상액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하는 일용직 근로자의 통상근로계수도 기존 월 가동일수인 22일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향후 변경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이날 근로복지공단이 삼성화재를 상대로 구상금을 청구한 사건에서 원고 일부 승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인해 근로시간 상한이 감소했고 연간 공휴일이 증가하는 등 사회ㆍ경제적 구조에 지속적인 변화가 있었고 근로자의 근로여건과 생활여건도 과거와 달라졌다"며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가동일수를 20일을 초과해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21년 만에 바뀐 '월 가동일수'...대법 "사회ㆍ경제적 구조 변화해"
A 씨는 크레인 후크에 연결된 안전망에서 작업을 하던 중 바닥에 추락해 골절 상해를 입었다. 공단은 A 씨에게 휴업급여를 지급한 후 회사가 가입한 보험사인 삼성화재를 상대로 구상금을 청구했다.
근로자가 산재를 당해 일을 하지 못하면 공단은 일실수입 손해를 계산해 지급한다. 일실수입 손해는 근로자가 다치지 않고 정상적으로 일했다면 받을 수 있었다고 기대할 수 있는 임금이다. 이때 일실수입은 육체노동 가동연한과 월 가동일수를 곱해 산정한다.
공단은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가동일수를 최대 22일로 보고 보험료를 지급했다. 월 가동일수 22일은 2003년 대법원 판결에 따른 것이다.
1심과 2심은 삼성화재가 공단에 구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지급해야 하는 일실수입 손해 산정 방식은 달랐다. 1심은 월 가동일수를 19일로 봤다. A 씨가 51개월간 총 근로일수가 179일에 불과했다는 이유다. 반면 2심은 기존 기준에 따라 22일이라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깨고 월 가동일수를 20일로 인정했다. 월 가동일수를 22년으로 정했던 20여 년 전에 비해 근로시간이 줄어들고 연간 공휴일이 증가하는 등 사회적ㆍ경제적 구조에 변화가 있었다는 이유다. 고용노동부가 매년 실시하는 고용형태별 근로실태 조사에 따르더라도 월 가동일수를 22일로 정했을 당시에 비해 많은 통계가 달라졌다는 점도 판단 근거가 됐다.
수년 전부터 보험사를 필두로 경험칙으로만 산정하던 월 가동일수를 근로 실질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러한 주장을 일부 하급심에서도 받아들여진 바 있다.
2021년 서울중앙지법은 "경제가 선진화하고 레저산업이 발달해 근로자들도 이전처럼 일과 수입에만 매여 있지 않고 생활의 자유를 즐기는 추세"라며 "월 가동일수가 22일이라는 기준이 처음 등장한 1990년대 후반 이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근로일이 줄었고 공휴일이 증가했다"고 판시해 화제가 됐다. 이 사건 1심도 삼성화재의 주장을 받아들여 가동일수를 19일로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변화된 근로환경, 월평균 근로일수에 대한 통계 등을 반영해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가동일수를 실질에 맞게 인정했다"라며 "향후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가동일수는 20일을 초과해 인정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재 손배액 줄어드나...판결 영향 어디까지?
일용직 근로자들이 다수 가입해 있는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에 따르면 건설노조가 보는 건설일용근로자의 한 달 평균 근로일수는 20일이다. 일반 근로자가 주말을 제외하고 한달 동안 근로한 일수를 따져보면 평균 21.73일이 나온다. 22일은 건설노조 기준에서도, 일반 근로자 기준에서도 근무를 많이 한 경우에 속한다.
다만 이번 판결로 근로자가 받을 수 있는 산재 배상액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산재 배상액을 산정할 때 고려하는 일실 수입은 육체노동 가동연한과 월 가동일수에 따라 산정한다. 이번 판결에서 월 가동일수가 줄어들게 돼 산재 배상액은 다시 줄어들게 됐다. 산재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청구하는 민사상 손해배상액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특히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하는 일용직 근로자의 통상근로계수도 변경될 수 있다. 통상근로계수는 일용직 근로자의 평균임금을 산출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현행 통상근로계수는 0.73으로 일용직 근로자가 1개월 22.3일 일하는 것을 전제로 산출한 것이다.
근로자의 적극적인 소명이 있다면 20일 넘는 월 가동일수가 인정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일용 근로자들이 직접 근무일수를 소명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수백만 원을 더 받기 위해 지난한 소송전까지 감수해야 해서다.
한국노총은 "산업현장의 현실과 달리 단순히 형식적인 제도 도입을 근거로 월 노동일수 기준을 줄여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에 유감을 표한다"며 "아울러 이번 판결로 인해 산업재해를 당한 일용노동자들이 손해배상 액수가 줄어들고, 월 노동일수 입증 책임까지 짊어지게 돼 육체적 고통에 이어 경제적, 정신적 고통이 가중될 것으로 보여 심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김환성 노동법률사무소 신의 대표공인노무사는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경제ㆍ사회적인 변화와 고용형태와 산업별 통계를 고려해 내린 판단으로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은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높인 2019년 전원합의체 판단에서도 이미 감지된 바 있다"며 "다만 근로자가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액까지 줄어들 가능성이 있고 일용직 근로자의 통상근로계수도 변경될 가능성도 엿보인다"고 말했다.
출처: 2024년 04월 25일, 월간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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