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해고 구제명령 회피한 ‘회장님’ 대법원 “실경영자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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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상 대표이사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회사를 경영했다면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을 이행할 주체로서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노동자를 부당해고한 ‘회장님’은 법인 등기상 대표이사를 대신 내세우는 ‘꼼수’를 부렸지만, 유죄를 피할 수 없었다.
‘무급휴직 통보’에 부당해고 판정, 대표는 ‘발뺌’
28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지난 25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경기도 이천의 화장품 제조·판매업체 B사의 대표이사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상시근로자 약 5명을 고용해 회사를 운영하면서 직원 C씨에 대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구제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C씨는 2020년 9월 무급휴직 3개월을 통보받으며 사실상 해고되자 그해 11월 서울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고, 이듬해 1월 부당해고 판정이 나왔다. 해고 기간의 임금 상당액만 약 1천400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A씨는 10일 이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지 않아 구제명령이 확정됐는데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111조)에 따르면 확정된 구제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재판 쟁점은 구제명령을 이행할 지위에 있는 자가 누구냐다. A씨는 해고 당시 대표이사인 D씨를 상대로 구제명령이 이뤄져 자신은 ‘실경영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A씨는 구제명령이 확정된 2021년 3월 이후에야 대표이사로 취임해 구제명령 이행의무 자체를 알지 못했다고 항변했다.
1·2심 “갖은 핑계 대며 책임 회피, 실제 경영자”
그러나 1심은 A씨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A씨가 구제명령 확정될 당시에도 ‘실질적인 경영자’ 지위에 있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구제명령) 확정일로부터 두 달 남짓 후에 대표이사로 정식 취임했음에도 공소제기까지 구제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구제명령 실효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구제명령 확정 당시 대표이사에 한해 처벌 규정이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구제명령이 확정됐는데도 피고인이 갖은 핑계를 대며 책임을 회피해 해당 근로자는 또다시 고통을 받게 됐다”며 “판정된 임금을 아직도 받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2심 결론도 같았다. A씨는 ‘5명 이상 사업장’이라 처벌대상이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은 법인별 구분 없이 각 법인 임직원을 지휘·관리했고, 임직원들은 평소 피고인을 ‘회장’으로 대우해 왔다”며 형식상 B사 대표로 있었지만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은 A씨에게 있다고 봤다. 법인등기에 대표이사로 기재된 D씨도 법정에서 “(본인의) 해임 당시 주주총회에 관해서도 제대로 몰랐고, 주식을 모두 A씨에게 양도했다”고 진술했다.
‘사용자’ 해석에 관한 판단도 일관됐다. 재판부는 “근로기준법 준수 의무 주체로서의 사용자 지위는 형식이 아닌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며 “피고인은 근로자를 해고한 시점부터 서울지노위로부터 고발당한 시점까지 줄곧 4개 법인의 실권자이며 실제 경영자로서 책임과 권한을 행사해 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사용자 확대, 근로기준법 실효성 확보”
특히 A씨에게 구제명령 이행 권한이 충분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무급휴직을 해야 한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 직원들을 내보내고자 했던 것”이라며 “오히려 해고 이후 직원을 새로 고용하고 했다. 피고인에게 부당해고를 시정하고 구제명령을 이행할 능력과 권한이 충분했는데도 오히려 회사 폐업을 결정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역시 원심을 유지하면서 근로기준법 규정에 대한 해석을 명확히 했다. 대법원은 ‘실경영자’가 처벌대상이라고 판단하며 “근로기준법이 사용자를 사업주에 한정하지 않고 사업 경영 담당자 등으로 확대한 이유는 노동현장에서 근로기준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적 배려”라는 2008년 대법원 판결을 인용했다.
‘확정된 구제명령 또는 구제명령을 내용으로 하는 재심판정을 이행하지 않은 자(근로기준법 111조)’에 대한 해석도 ‘회사를 사실상 경영해 온 사람’이라고 못 박았다. 대법원은 “원심 판시 구제명령에 B사 대표자로 법인 등기사항 전부증명서상 대표이사인 D씨가 기재돼 있더라도 이는 회사를 특정하기 위한 기재일 뿐 구제명령의 이행의무자를 한정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인이 근로기준법상 구제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인정한 원심 판단은 결론적으로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출처 : 2024년 04월 29일, 매일노동뉴스, 홍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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