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이사한테 보고했으니 임원도 근로자?…법원은 ‘근로자성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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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등기 임원의 근로자성을 부정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대표이사가 임원에게 일부 지휘ㆍ감독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는 '위임계약에 따라 임원이 부담하는 최소한의 보고 의무'라며 선을 그었다. 근로자성을 인정한 1심 판결을 뒤집고 임원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판결이다.
17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10-2행정부(재판장 김유진)는 지난 12일 전자제품 제조기업 A 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한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비등기 임원 계약 해지, 근로자성 다툼으로
전자제품 제조기업 A 사에서 EPI 개발 업무를 했던 G 씨는 2016년 EPI 개발 그룹 총괄책임자인 임원으로 승진했다. G 씨는 승진과 함께 비등기 임원으로 임용됐고, 회사와 매년 임용계약서를 작성했다.
어느 날 회사 감사팀은 "G 씨가 다수의 국책과제에 자신의 이름을 등재하면서 명확한 기준 없이 기여도를 높게 산정하고, 연구수당을 많이 받아간다"는 제보를 받고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 후 회사는 G 씨에게 계약 해지 사유 발생, 보안서약서상 3대 투명성(금전ㆍ보고ㆍ업무처리 투명성) 의무 위반을 이유로 위촉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G 씨는 부당해고를 주장하면서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회사는 G 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임원에 해당해 위촉계약 해지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노동위원회는 G 씨 손을 들어줬다. 경기지노위는 "G 씨는 사용자의 상당한 지휘ㆍ감독을 받으면서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이고, 해고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이어진 중앙노동위원회도 초심 판정을 유지했다.
1심 "지휘ㆍ감독 받아 노무제공…근로자성 인정"
쟁점은 비등기 임원인 G 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 여부로 떠올랐다. 직책이나 명칭이 임원이어도 위임받은 사무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이사 등의 지휘ㆍ감독을 받아 일정한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다면 임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1심은 G 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1심은 "G 씨는 A 사에 대해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해 왔고, 실질적으로 근로자의 지위에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1심은 G 씨가 임원이 된 후에도 이전과 비슷한 업무를 수행했고, G 씨의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인 대표이사가 상당한 지휘ㆍ감독을 했다고 봤다.
1심은 "대표이사는 G 씨에게 수시로 연락해 제품의 성능, 품질과 관련된 사항을 질의하거나 업무상 지시를 했던 것으로 보이는바, G 씨가 기능적으로 분리된 특정한 전문 부분을 총괄하는 독자적인 권한을 부여받아 독립적으로 업무를 집행했다기보다 상무라는 비등기 임원으로서의 명칭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표이사의 지휘ㆍ감독 아래 회사의 일부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회사는 G 씨가 근무시간을 스스로 결정하고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등 회사의 관리ㆍ감독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은 "탄력적 시간제를 채택하거나 근무형태가 주로 출장 근무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는 경우라면, 그러한 업무의 특성에 따라 근무시간이나 근무장소는 유연하게 결정될 여지도 있다"며 "G 씨가 근무시간의 결정이나 휴가의 사용 등에 있어서 엄격한 구속을 받지 않았다는 사정은 근로자성 판단에 결정적인 요소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결론적으로 1심은 근로자인 G 씨에게 회사가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 통보한 것은 해고와 같다며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최상위 전결권한에 인사권 행사까지…2심 뒤집혀
그러나 2심은 1심을 뒤집고 G 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당시 G 씨는 회사에서 단 6명만 가지고 있는 최상위 전결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G 씨는 이 전결권한으로 자산 이관, 각종 주요 장비의 구매 및 대여, 개발비 예산 증액 등 중요 사항을 포함해 1200여 건의 결재를 했다.
2심은 "G 씨는 전결 시 대표이사가 알아야 할 경영상 중요 사항은 반드시 사전 보고하도록 하긴 했지만, 이는 회사와의 위임계약에 따라 G 씨가 부담하는 최소한의 보고 의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일부 지휘ㆍ감독을 받은 사실이 인정되기는 하나, 위임계약의 법률관계에서 위임인이 수임인에게 위임사무의 처리방향을 제시하고 위임사무의 처리결과를 보고하는 관계는 충분히 상정 가능하다"며 "G 씨가 총괄하고 있는 업무에 관한 광범위하고 상당한 지위와 권한 등을 고려해 보면 G 씨가 대표이사로부터 일부 지휘ㆍ감독을 받는다는 사정만으로 G 씨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G 씨는 임원으로서 직원들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거나 급여조정 평가를 하기도 했다. 임원으로 임용된 후에는 조퇴ㆍ지각 횟수가 연간 최소 57회부터 최대 116회에 달했다.
2심은 "임원으로 임용된 이후에는 출퇴근 등 근태 관리가 자율적으로 이루어졌고, 근태 불량을 이유로 징계처분이나 부정적 평가를 받을 염려가 없는 등의 이유로 근태 수정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G 씨는 해지 통보를 받을 때까지 4대보험과 퇴직연금에 가입돼 있었지만, 2심은 이로 인해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건 아니라고 봤다. 2심은 "사회보장제도와 관련해 근로자로 인정받았는지 등의 사정은 회사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음을 이유로 또는 반대로 임원을 포함한 직원의 복리후생을 위해 임의로 정할 여지가 적지 않다"며 "근로자성이 인정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번 사건에서 회사 측을 대리한 홍성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1심 판결과 다르게 임원이 회사와 맺는 위임계약의 본질을 명확히 파악해 임원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부정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대표이사로부터 일정 부분 발생한 지휘ㆍ감독을 곧바로 임원의 근로자성 징표로 보지 않고 위임계약 법률관계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사건처럼 비등기 임원의 근로자성이 부정되는 경우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 있다. 해당 임원이 회사 내에서 전문적인 업무 영역을 갖고 독자적인 권한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홍 변호사는 "기업 입장에서 위임계약을 맺은 임원의 근로자성이 문제되지 않도록 하려면 임원에게 업무 수행에 있어서 전문성과 책임, 독자적인 권한을 명확하고 뚜렷하게 부여해야 한다"며 "만약 의사결정의 책임과 권한을 가진 대표이사가 임원의 결정을 바꾸고 임원에게 지시를 내린 징표가 확인되면 임원의 근로자성 부정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 경계선을 분명하게 긋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 이동희 기자, 대표이사한테 보고했으니 임원도 근로자?…법원은 ‘근로자성 부정’, 월간노동법률, 2025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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