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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중처법ㆍ산안법 위반은 상상적 경합” 첫 판결...어떤 변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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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61.♡.185.172)
댓글 0건 조회 139회 작성일 23-12-2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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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위반에 대한 첫 대법원 선고가 나왔다. 1심과 2심 모두 경영책임자에게 실형이 선고됐던 한국제강 사건이다. 대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함께 문제된 경우 한 개의 행위로 보는 '상상적 경합'관계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상상적 경합으로 보는 경우 가장 무거운 죄인 중대재해처벌법 형량이 적용된다. 죄수관계를 놓고 검찰과 법원의 입장이 엇갈리던 상황에서 나온 첫 판단이다.

이번 대법원 판단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동시에 적용될 경우 형량의 상한을 결정하지만, 사실상 기업의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에 영향을 줄만한 내용은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와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 이행 주체가 동일한 경우 검사의 구형과 법원의 형량 결정에서는 고려될 수 있다. 그러나 하급심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 형량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가시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8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이날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국제강 대표이사 A 씨의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목적, 보호법익, 행위태양 등에 비추어 보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와 근로자 사망으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 업무상과실치사죄는 상호간 사회관념상 한 개의 행위가 수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로서 상상적 경합 관계"라고 판단했다.

'중처법 2호 사건' 한국제강...'동종 전과'에 첫 실형
 
한국제강 사건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워넝 대표가 처음으로 실형을 받은 사건이다. 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두 번째로 법원 선고를 받은 사건이라 일명 '2호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지난해 3월 경남 함안군 한국제강 공장에서 설비ㆍ보수를 담당하던 하청업체 근로자가 떨어진 방열판에 깔려 사망했다. 크레인 섬유벨트가 끊어지면서 매달려 있던 방열판이 근로자를 덮쳤고 사고 직후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검찰은 A 씨가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모두 위반했다고 판단해 징역 2년을 구형했다. A 씨는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로서 안전보건 관리 책임자가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평가 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A 씨는 하청업체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능력이 있는지 평가하는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는 등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이행하지도 않았다. A 씨가 의무를 이행했다면 B 씨가 안전보건 관리 책임자로서 중량물 취급 작업에 관한 작업계획서를 작성했을 것이고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취지다.
 
1심과 2심은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1심은 A 씨에 징역 1년을 선고해 법정구속했다. A 씨에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전과가 있다는 점이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A 씨는 혐의를 모두 인정했기 때문에 2심에서 쟁점이 된 것은 형량이었다. 그러나 2심은 형량을 조절할 특별한 사유가 없다고 보고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상상적 경합 vs 실체적 경합"...엇갈린 법원과 검찰

이번 사건에서 검사와 법원의 입장이 충돌한 것은 죄수관계다. 검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를 실체적 경합 관계로 보고 기소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 업무상과실치사죄는 상상적 경합 관계라고 판단했다.

이는 범죄 행위에 여러 가지 법 위반이 동시에 성립할 때 어떻게 형량을 책정해야 하는 지에 관한 문제다. 실체적 경합은 각각 행위가 각각 죄를 구성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경우 여러 개의 죄가 합쳐져 형량이 가중될 수 있다. 상상적 경합은 한 개의 행위에 의해 여러 개의 죄가 성립한다고 본다. 상상적 경합이 적용되면 여러 개의 죄 중에 가장 무거운 죄만 적용된다. 또 한 개의 죄로 이미 법원 판단을 받았다면 다른 죄목으로 다시 처벌할 수 없게 된다.
 
2심은 "A 씨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총괄책임자로서 하청 근로자에 대해 산업재해를 예방할 의무를 부담함과 동시에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로서 안전ㆍ보건을 확보할 의무가 있었다"며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면 같은 일시ㆍ장소에서 같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결과의 발생을 방지하지 않은 부작위에 의한 범행에 해당해 법적 평가를 떠나 사회 관념상 한 개의 행위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의 보호법익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산업재해 또는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의 안전을 유지ㆍ증진하거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해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명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며 "이는 사람의 생명이 보호법익인 업무상과실치사죄와도 같다"고 덧붙였다.  

대법 "중처법과 산안법, 보호법익ㆍ주의의무 동일해"

검사는 실체적 경합을 주장하면서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검사 측 상고를 기각했다. 상상적 경합으로 본 원심 판결이 맞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모두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생명과 신체의 보전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고 판단했다. 

또 두 법이 요구하는 행위와 주의의무도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A 씨가 안전보건총괄책임자로서 작업계획서 작성에 관한 조치를 하지 않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행위와 경영책임자로서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과 이행에 관한 조치를 하지 않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행위는 모두 같은 일시, 장소에서 같은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 발생을 방지하지 못 한 부작위에 의한 범행"이라며 "그 법적 평가를 떠나 사회관념상 한 개의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부과된 안전확보의무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부과된 안전조치의무와 마찬가지로 업무상과실치사죄의 주의의무를 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에서는 대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 의무 이행이나 양형 등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A 씨가 상고를 포기하면서 죄수관계 외의 쟁점은 다뤄지지 못했다.

중처법 형량 상한 줄어드나..."직접적인 영향은 적을 것"

대법원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와 근로자 사망으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 업무상과실치사죄는 상호 간 사회관념상 한 개의 행위가 수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로서 상상적 경합 관계에 있다는 법리를 최초로 선언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동시에 성립할 경우 둘 중 어느 관점을 택할 지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였다. 검찰은 주로 실체적 경합을 적용해 기소를 했지만 법원은 상상적 경합이라는 판결을 내놨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발행한 '중대재해처벌법 벌칙해설'에서 "원칙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의무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 조치의무는 내용이 상이해 실제적 경합관계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다만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확보의무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의무에 중첩되는 내용이 있다면 상상적 경합이 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반면 법원은 상상적 경합이라는 판결을 계속해서 내놨다. 중대재해처벌법 1호 사건인 온유파트너스 사건에서도 법원은 "검사는 온유파트너스 각 죄의 관계를 경합범 관계로 보고 공소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각 죄는 근로자의 생명이라는 동일한 법익을 보호하고 있고, 의무 위반 행위 각각이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를 발생시킨 일련의 행위라는 점에서 규범적으로 동일하고 단일한 행위라고 평가할 수 있어 상상적 경합 관계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로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동시에 문제 될 경우 선고될 수 있는 형량의 상한이 낮아지게 됐다. 실체적 경합관계라면 가장 무거운 죄인 중대재해처벌법에 산업재해위반 죄를 가중해 최대 징역 45년까지 선고할 수 있었지만 상상적 경합관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형량 상한인 30년까지만 선고할 수 있다. 

그러나 권영국 해우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하급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을 정도로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형량의 상한이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며 "피고인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인과관계나 양형에 대한 부분은 대법원 심리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법원이 가벼운 형량을 확정했다고 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홍성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죄수관계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의 행위자가 같은 경우 나오는 문제로 모든 사건에 적용할만한 내용은 아니"라며 "다만 법인에는 두 가지 죄가 함께 적용돼 법인에 부과되는 벌금은 가장 중한 죄인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결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2023년 12월 29일, 월간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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