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프리랜서 아나운서도 KBS 근로자”...계약 만료는 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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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아나운서도 근로자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프로그램이 개편되거나 신규 인력이 충원되면 계약이 만료되는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있었지만 사실상 한국방송공사(KBS)에 종속돼 지휘ㆍ명령을 받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판단이다.
29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제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프리랜서 아나운서 A 씨가 한국방송공사를 상대로 낸 근로에 관한 소송에서 회사 측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승소로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원심은 "A 씨는 KBS의 상당한 지휘ㆍ감독에 따라 정규직 아나운서들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해 온 KBS의 근로자"라며 "A 씨의 계약 기간이 만료됐다는 이유로 업무에서 배제하고 사실상 해고한 것은 부당해고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잘못되지 않았다면서 지난 21일 이를 확정했다.
정규직과 다름없이 일했지만...인원 충원하자 해고
A 씨는 2015년부터 KBS B 지역 방송국에서 일하던 프리랜서 아나운서다. A 씨는 티브이와 라디오에서 주 5회 날씨방송을 하기로 하고 입사했지만 계약된 프로그램 이외에도 각종 프로그램을 맡았다. 회사 내부 테스트와 교육을 받은 후 뉴스 아나운서 업무도 수행했다. 회사는 방송 전에 피해야 할 의상 색상을 지시하기도 했다. 회사가 방송 구성이나 멘트가 정리된 문서를 제공하면 A 씨는 이에 따라 방송을 진행했다.
다른 지역 방송국에 파견도 갔다. 회사에 C 지역 방송국에서 파견 요청이 들어오자 A 씨는 평일은 B 방송국에, 주말에는 C 방송국으로 출근했다. 2018년 이후에는 평일과 주말 모두 C 방송국으로 출근했다. C 방송국의 인력이 부족해지자 A 씨는 C 방송국과 계약을 맺고 일했다.
업무 배정은 프리랜서 아나운서와 정규직 아나운서를 구분하지 않고 이루어졌다. A 씨는 아나운서 부에서 이루어지는 근무 배정회의에 참석해 다른 아나운서들과 업무 분장을 협의했다. 방송편성부장이 아나운서별 업무를 배정하면 아나운서들이 참여하는 단체 대화방에 그 내용이 공유됐다. 근무 내용에 변동이 발생하면 회사는 SNS 메시지 등으로 수시로 변경 요청을 했다.
A 씨는 정규직 아나운서와 같은 사무실을 사용했다. 방송을 할 때는 회사가 협찬받는 의상을 착용했고 회사의 분장실에서 회사 소속 코디네이터로부터 메이크업을 받았다.
A 씨의 출퇴근시간은 방송프로그램 편성 시간에 따라 변경됐다. 급여는 진행하는 프로그램 건별로 책정됐다.
A 씨는 방송편성부장의 지시에 따라 개국기념식이나 종무식에서 사회를 보기도 했다. 외부에서 방송국 견학을 오면 간단한 특강을 하기도 했고 방송국 일원으로서 봉사활동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회사는 신규 인력을 채용하면서 A 씨에게 계약 만료를 통보했다. 계약서에 명시된 계약 기간이 '인력 충원 또는 프로그램 개편 시' 까지라는 이유다.
이에 A 씨는 프리랜서가 아닌 사실상 KBS의 기간제 근로자였다고 주장했다. 기간제 사용 2년이 지났으니 KBS는 기간제법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소송을 냈다.
법원 "A 씨는 KBS 근로자...계약 만료는 부당해고"
1심은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2심은 달랐다. 2심은 "A 씨는 KBS의 상당한 지휘ㆍ감독에 따라 정규직 아나운서들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해 왔고 회사에 대해 종속적인 관계에 있는 아나운서 직원인 아니라면 수행하지 않을 업무도 상당 부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2심은 A 씨가 KBS에 종속돼 있었다는 점도 인정했다. 2심은"A 씨가 KBS가 제작하는 방송 프로그램 이외에 별도로 방송출연을 했다는 자료를 찾기 어렵고 모든 방송 스케줄과 주말 당직 근무를 소화했다"며 "단체 대화방을 통해서 다른 아나운서들과 방송 일정을 긴밀하게 공유하면서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경우 수시로 이를 대체하기도 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A 씨는 실질적으로 KBS에 전속돼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어 "A 씨가 받은 급여는 진행한 프로그램에 대한 건별 대가로서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을 갖고 있다"며 "A 씨의 출퇴근시간은 KBS가 편성한 방송스케줄에 따라 정해졌고 휴가일정은 KBS에 보고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A 씨는 KBS의 근로자"라고 덧붙였다.
2심은 "KBS는 계약을 거듭 갱신하면서 2년이 넘는 기간 사용했기 때문에 기간제법에 따라 무기계약 근로자로 봐야 한다"며 "KBS가 A 씨의 계약 기간이 만료됐다는 이유로 업무에서 배제하고 사실상 해고한 것은 부당해고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이 판단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보면서 이 판결은 확정됐다.
A 씨를 대리한 류재율 법무법인 중심 변호사는 "판결이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기 때문에 KBS는 A 씨를 정규직 아나운서로 근무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며 "이번 판결은 현재 방송국에서 많이 활동하고 있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들도 정규직 근로자로 보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향후 유사사건에서 비슷한 결론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방송국 프리랜서 아나운서들과 관련해 대법원은 물론 하급심에서 근로자성을 인정받는 사례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은 지난 수십년간 방송업계의 비정상적인 고용구조 때문"이라며 "방송국은 공적인 성격을 지니는 만큼, 사후적으로 개별 사례 판결만 따라 갈 것이 아니라 고착화된 비정규직 중심의 고용구조를 과감하게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출처: 2023년 12월 29일, 월간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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