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동이슈

대법, ‘불파 근로자 단협 적용 예외’ 문 열었나...‘대기발령 적법’ 판결에 우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관리자 (61.♡.185.172)
댓글 0건 조회 33회 작성일 24-01-09 09:50

본문

c3aed2b41b281da1359856ebf1f3cb34_1704761386_59.png
 

부당해고된 근로자를 복직시킬 때 대기발령을 내리더라도 위법하지 않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부당해고 근로자는 원직 복직시키는 것이 원칙이지만 인사 질서, 경영상 필요 등 사정이 있다면 대기발령이 정당하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이 적법한 대기발령의 기준에 대해 설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판결에 노동계는 우려를 쏟아냈다. 단체협약에 부당해고가 인정된 경우 그 즉시 원직 복직시켜야 한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대법원이 예외를 인정한 것이다. 해고된 근로자는 협력업체 소속이었다가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근로자다. 대법원은 대기발령이 협력업체 소속이었던 근로자를 원청 소속으로 다시 배치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였다면서 그 적법성을 인정했다. 향후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투쟁이 위축될 수 있는 문이 열린 셈이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현대자동차 근로자 최병승 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에 관한 소송에서 원심 중 원고 승소 부분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지난 4일 "최 씨를 대기발령한 것은 고용간주된 근로자를 현실적으로 고용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직무교육 등을 통해 회사의 사업장 질서에 맞게 받아들이면서 합당한 보직을 부여하기 위한 임시적 조치"라며 "대기발령으로 인한 최 씨의 불이익이 크다고 볼 수 없고 회사가 최 씨와 성실한 협의절차도 거쳐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같은 날 대법원은 현대차 아산공장 근로자 오지환 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도 원고 패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두 사건의 외형과 결과는 다르지만 결국 같은 취지다.
 
두 사람은 현대차를 상대로 불법파견 투쟁 선두에 나섰던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불법파견 인정받았지만 결근...'대기발령 적법성' 두고 공방
 
최 씨는 2002년부터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던 근로자다. 2005년 직접고용 투쟁을 하다 협력업체에서 해고됐고 2010년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판결을 받아들었다. 2012년에는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라는 판단도 받았다.
 
법원 판단에 따라 현대차는 최 씨를 복직시키게 됐다. 그러나 원직 복직 대신 대기발령을 냈다. 최 씨는 대기발령에 불복해 927일간 결근했고 현대차는 그를 다시 해고했다.
 
오 씨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오 씨도 불법파견 투쟁에 나섰다가 협력업체에서 해고됐다.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후 회사가 배치대기발령을 내리자 375일간 결근했고 이를 이유로 해고당했다.

최 씨는 현대차의 대기발령이 위법해 출근을 거부한 것이라며 출근 거부를 이유로 한 해고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최 씨는 회사에 부당해고 기간 동안의 임금과 단체협약에 따른 징계가산금을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징계가산금은 회사가 잘못된 징계해고를 했을 경우 해고 기간 평균 임금의 두 배를 지급하는 단체협약상 제도다.
 
쟁점은 현대차의 대기발령이 위법한지가 됐다. 부당해고 근로자를 복직시킬 때는 원직 복직이 원칙이다. 또 현대차 단체협약에 따르면 회사는 부당해고 근로자를 부당징계 판명 즉시 원직에 복직시켜야 한다.
 
1심과 2심은 대기발령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대기발령은 회사가 적법하게 원직 복직 의무를 이행했다고 보기 어려워 최 씨가 출근을 거부한 것은 정당하다는 취지다. 반면 오 씨 하급심에서는 다른 결론이 나왔다. 오 씨 사건 2심은 대기발령이 오 씨를 업무에 복귀시키는 데 필요한 절차였기 때문에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대법 "대기발령, 고용간주 근로자 배치에 필요"...정당성 인정
 
대법원은 대기발령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대법원이 부당해고 복직 시 대기발령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그 기준에 대해 설명한 것은 처음이다.
 
대법원은 "사용자가 부당해고한 근로자를 복직시키면서 일시적인 대기발령을 하는 경우 그 대기발령이 원직 복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위법하다고 볼 것은 아니"라며 "대기발령이 이미 이루어진 인사질서, 사용주의 경영상 필요, 작업환경의 변화 등을 고려해 근로자에게 원직 복직에 해당하는 합당한 업무를 부여하기 위한 임시적인 조치로서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되는 경우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때 근로자의 생활상 불이익이 어느 정도인지, 근로자 측과 협의가 이루어졌는지 등도 고려해야 한다.
 
대법원은 이에 따라 최 씨의 대기발령을 정당성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최 씨의 대기발령은 고용간주된 최 씨를 현실적으로 고용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직무교육 등을 통해 현대차의 사업장 질서에 맞게 받아들이면서 합당한 보직을 부여하기 위한 임시적 조치"라며 "이로 인해 최 씨가 받게 되는 생활상 불이익이 있다거나 그 불이익이 크다고 볼 수 없고 성실한 협의절차도 거쳤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가 최 씨를 복직시켜야 했던 시점은 최 씨가 해고되고 7년이 지났을 때다. 최 씨가 일하던 공정에는 다른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었고 회사로서는 최 씨의 업무수행 능력, 작업방식 변화, 공정별 수요를 고려해 보직을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대기발령 기간에는 급여가 그대로 지급돼 최 씨에게 경제적 불이익이 없었고 출근장소는 같은 공장 내 인사팀이어서 출퇴근에 불편함이 없었다는 점도 고려됐다.
 
대법원은 "최 씨는 파견법상 고용간주 효과로 근로자 지위를 획득한 근로자로서 현대차와는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근로조건을 형성한 적이 없다"며 "최 씨와 현대차 간 현실적인 근로관계 형성을 위해서는 인사관리를 위한 서류를 제출하고 직무교육을 받는 등 현실적인 고용절차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오 씨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오 씨가 복직하게 된 시점은 해고로부터 12년이 경과한 때였고 그가 담당하던 공정은 이미 없어진 상태였다.
 
또 대법원은 회사가 가산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가산금 조항 도입 경위, 목적, 내용 등을 보면 이 조항은 회사가 부당한 징계권을 행사해 해고하는 것을 억제하고 그 징계해고가 부당하다고 판명됐을 때 근로자를 신속하게 원직에 복귀시키도록 하는 제재적 규정"이라며 "이 조항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회사가 근로자에 대해 징계권을 행사해 해고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2005년 현대차가 최 씨의 공장 출입을 금지시켜 해고한 것은 최 씨가 협력업체에서 해고됐기 때문이었다. 대법원은 이 해고가 현대차의 징계권 행사라고 보기 어려워 가산금 지급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고 봤다.
 
단협 적용 제외 여지 남긴 대법...노동계 "투쟁 위축 우려"
 
이번 사건은 대법원이 부당해고 근로자 복직 시 대기발령의 정당성 인정 기준을 설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은 사용자가 부당해고된 근로자를 복직시키는 경우 원직 복귀가 원칙이라고 명시하면서 일시적인 대기발령을 하는 경우 그 정당성 판단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다"며 "다만 이 판결은 근로자 복직 시 대기발령을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적법하다는 것이 아니라 원직 복직에 합당한 업무를 부여하기 위한 임시적 조치로서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경우에 한해 정당성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다만 노동계는 한발 더 나아가 우려를 표했다. 결과적으로 대법원이 하청근로자의 단체협약 적용 예외를 인정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부당해고 근로자는 부당해고 판명 즉시 원직에 복귀시켜야 한다는 단체협약 조항이 있음에도 대기발령 정당성을 인정했다.

정기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법률원장은 "현대차 단체협약은 부당해고를 인정하는 결정문을 송달받은 그날 당장 원직에 복직시키도록 규정하고 있어 대기발령과는 양립할 수 없다"며 "불법파견이 인정되면 하청 노동자는 원청 노동자로 의제되는데도 사실상 단체협약 적용을 주장할 여지가 없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에게 단체협약을 다르게 적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차별"이라며 "불법파견 노동자에게 원청의 단체협약이 적용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진 것 같아 대법원 판결 보수화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사건은 수년간 이어져 온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 과정에서 발생한 특수한 사례다. 최근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해고와 복직에 이어 출근 거부까지 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고 단체협약상 징계해고 가산금이 있는 기업도 드물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향후 하청업체 근로자의 불법파견 투쟁에 미칠 영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 변호사는 "이번 판결과 같은 사례가 많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는 원직 복직을 보장하는 단체협약을 믿고 투쟁을 할 비정규직 노동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최 씨의 대기발령은 당시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의 불법파견 투쟁을 탄압하고 악화시키기 위한 부당노동행위 의도임이 명백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간과했고, 이번 판결로 비정규직 투쟁을 상징하는 인물이 다시 해고돼야 한다는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현제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지회장도 같은 우려를 드러냈다. 김 지회장은 "노사는 자율적인 합의를 통해 법보다 높은 수준의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음에도 대법원은 노사 합의에 미치지 못하는 최악의 판단을 내놨다"며 "대법원이 노동자들의 요구와 투쟁에 제약을 건 셈"이라고 우려했다.
 
출처: 2024년 01월 08일, 월간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