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동이슈

연이은 중처법 5ㆍ6ㆍ7호 판결...'유해요인 개선 의무' 주목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관리자 (61.♡.185.172)
댓글 0건 조회 78회 작성일 23-10-25 11:53

본문

9c13dc5e6176c1208850e310e0c4078b_1698202350_55.png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 세 개가 연이어 나왔다. 중대재해 5호 건륭건설, 6호 국제경보산업, 7호 제동종합건설 판결이다.
 
건륭건설 판결에서는 유해ㆍ위험요인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업무 절차를 마련할 의무에 대한 법원 판단이 나왔다. 단순히 형식적으로 일반적인 유해ㆍ위험 요인만 확인해서는 안 되고, 사고가 발생한 공사 현장의 특성을 반영해 업무 절차를 마련해야지만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경영책임자의 의무 위반으로 근로자가 사망하게 됐다는 인과관계 논증이 느슨하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뒤이은 국제경보산업과 제동종합건설의 경우 경영책임자가 혐의를 부인하지 않은 사건이다. 의무 위반이나 인과관계에 대한 별다른 법원 판단이 나오지 않았다. 최근 나온 중대재해처벌법 판결 모두 피고인이 자백하거나 법원이 느슨하게 인과관계를 인정해 유죄가 되지만 결국 양형에서는 집행유예가 선고되고 있는 모양새다.
 
"중처법 유해ㆍ위험요인 확인은 이렇게"...기준 제시한 '5호' 건륭건설 판결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5단독 김윤석 판사는 지난 6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건륭건설 대표 A 씨에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건륭건설 법인에는 벌금 2000만 원이 선고됐다.

사망한 근로자는 지난해 3월 경기도 고양시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철근 작업을 하던 하청 근로자다. 근로자들이 약 190킬로그램에 달하는 철근 150개 묶음을 지하 2층으로 내리는 중 크레인에 고정한 슬링벨트가 풀리면서 떨어지는 철근이 무전을 하던 피해자의 머리를 가격했다.
 
당시 작업은 현장소장과 안전관리자들의 점심시간 중에 이루어졌다. 또 근로자들은 철근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고 철근 150개 묶음 중간 부분에 슬링벨트로 한 군데만 묶어 인양 작업을 했다.

검찰은 원청인 건륭건설 대표 A 씨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고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A 씨는 사업장 특성에 따른 유해ㆍ위험 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 절차를 마련하면서 일반적인 사항에 대한 절차만 규정했다. 최소한 고용부의 사업장 위험성평가 지침 기준도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지 평가하는 기준도 마련하지 않아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게 했다.
 
또 원청으로서 하청업체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 능력과 기술이 있는지 평가하는 기준이나 절차를 마련하지 않고 도급을 맡겼다.

A 씨는 세 가지 중 마지막을 제외한 두 가지 혐의를 부인했다. 이에 김 판사는 유해ㆍ위험 요인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업무 절차는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판단을 내놨다.

"유해요인 확인, 단순 매뉴얼로는 안 돼...사업장 특성 반영해야"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에게 사업장 특성에 따른 유해ㆍ위험 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김 판사는 A 씨가 이 의무를 이행했는지 판단하는 데에 있어 '사업장 특성'이 실질적으로 고려됐는지를 주목했다.

건륭건설은 안전보건 전문가에게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컨설팅을 받고 매뉴얼을 만들었다. 안전보건과 관련해 전문가 초청 강연과 자문도 받았다.

그러나 김 판사는 "이 매뉴얼은 일반적인 공사현장에서 지켜야 할 매뉴얼일 뿐 이를 '공사 현장의 특성에 따른' 유해ㆍ위험 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 절차라고 보기 어렵다"며 "초청강연이나 자문 등도 공사현장의 특성에 따른 유해ㆍ위험 요인을 확인하고 개선하기 위한 업무 절차라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 판사는 건륭건설이 작성한 위험성평가표도 사고가 발생한 공사현장의 실질적인 유해ㆍ위험 요인을 확인하고 작성한 것이 아니라 다른 공사현장의 경험을 참고해 형식적으로 작성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 판사는 위험성평가표에 이번 사고의 원인이 된 크레인 인양 작업의 위험성도 지적이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그는 "위험성평가표에는 크레인 작업 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두 줄로 결속해야 한다고 기재돼 있지만 그 위험성을 개선하기 위한 절차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이후에 작성된 위험성평가표에는 이 위험요인에 대한 평가가 누락돼 있다"며 "이 점이 개선되지 않아 결국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A 씨가 의무를 이행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건륭건설의 안전보건경영시스템 매뉴얼에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의 업무 수행을 평가하는 방법과 기준, 평가에 따른 포상 기준이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김 판사는 A 씨가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의 업무를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해당 매뉴얼은 이 사건 공사 현장과 관련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A 씨의 의무 위반은 모두 인정됐지만 김 판사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사고 발생에 피해자의 과실도 있는 점, A 씨가 유족과 합의하고 손해배상을 한 점,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점 등이 고려된 결과다.

느슨한 인과관계?...전문가 "보완 필요 있어"
 
A 씨가 혐의 부인과 함께 인과관계도 부인하면서 김 판사는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논증했다. 슬링벨트를 하나만 사용할 경우 사고 위험이 있다는 위험성평가 결과가 있었지만 개선하지 않았고 결국 그로 인해 근로자가 사망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김 판사는 이 점을 지적하면서 "공사현장의 위험성을 실질적으로 확인하고 이를 개선하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었다면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경영책임자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현장의 위험이 제거되지 못했고 그로 인해 근로자가 사망했다는 단계적 논증 구조다. 인과관계를 논증한 선행 중대재해처벌법 판결들도 이 같은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인과관계 논증이 좀 더 치밀해질 필요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감영규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현재 법원은 실질적으로 인과성이 인정되면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상당 인과관계설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구조적으로 관리 체제가 부실하다면 중간 관리자의 의무 위반은 통상적으로 예견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인데, 사실 통상적인 예견 가능성이라는 것은 막연한 개념으로 법원이 사건마다 자의적으로 판단한다는 비판이 따라붙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경영책임자, 안전관리총괄책임자, 하청 안전관리 책임자, 현장 소장 등 인적 연결고리에 주목해 각 주체별로 인과성을 심사했다면 더 촘촘하게 인과관계를 논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6호 국제경보산업ㆍ7호 제동종합건설...자백에 인과관계 논증 없어

서울북부지법 형사5단독 이석재 판사는 지난 12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아파트관리업체 국제경보산업 대표이사 B 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법인에는 벌금 3000만 원을 선고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아파트 관리소장도 B 씨와 같은 형량을 받았다.

지난해 4월 아파트 천장 누수를 확인하던 아파트관리업체 근로자가 1.5미터 높이 사다리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검찰은 추락 위험이 있음에도 피해자에게 안전모를 착용하라고 지시하지 않은 관리소장을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아파트관리업체 대표 B 씨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B 씨는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 대부분을 이행하지 않았다, 안전ㆍ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방침을 설정하지 않았고 유해ㆍ위험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 절차를 마련하지도 않았다.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지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해 평가ㆍ관리하고 사업장의 안전ㆍ보건에 관한 사항에 대해 종사자의 의견을 듣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다.

이 판사는 "B 씨는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아 사업장의 안전ㆍ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방침, 사업장의 특성에 따른 유해ㆍ위험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 절차를 전달받지 못한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인 관리소장이 안전ㆍ보건에 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지 않았다"며 "B 씨는 관리소장의 업무 수행에 대한 평가 기준도 마련하지 않아 관리소장이 피해자에게 안전모를 착용하라고 지시하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뒤이어 제주지법 형사2단독 배구민 판사는 지난 18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제동종합건설 대표 C 씨에게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제동종합건설에는 벌금 8000만 원이 선고됐다.
 
이번 사건은 하청업체 대표가 사망한 사건이다. 지난해 2월 제주대 학생생활관 공사 현장에서 굴뚝을 해체 작업이 진행되던 중 12미터 높이의 굴뚝이 무너지면서 굴삭기를 운전하던 철거업체 대표가 사망했다.
 
C 씨는 안전ㆍ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 방침을 설정하고 유해ㆍ위험요인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절차를 마련하지 않았다. 안전보건관리책임자 업무를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고 안전보건 종사자 의견을 듣고 개선하는 절차를 마련하지 않았다. 중대산업재해를 대비한 매뉴얼을 마련하고 그 이행을 점검하는 의무도 이행하지 않았다.
 
두 사건에서는 B 씨와 C 씨가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인과관계도 부인하지 않으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의무 이행이나 인과관계에 대한 별다른 법원 판단이 나오지는 않았다. 법원은 이들이 피해자 유족과 합의하고 유족이 선처를 바라는 점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출처: 2023년 10월 24일, 월간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