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2차 업체는 불법파견 아냐” 선그은 대법...하급심 파장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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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현대자동차 2차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2차 협력업체는 현대차의 협력업체(1차 협력업체)의 재하청업체를 말한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현대차 2차 협력업체 근로자의 불법파견을 인정한 원심 판단을 깬 지 1년 만에 나온 판단이다.
이번 판결로 예상되는 파장은 크다. 현재 동일한 쟁점으로 대법원에 계류 중인 현대차 2차 협력업체 불법파견 소송만 일곱 개다. 아직 대법원에 오르지 못한 사건도 여럿 있다. 2차 협력업체에 대한 불법파견 판단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대법원 판결이 교통정리를 하게 됐다. 이번 판결이 지난해 대법원이 깬 현대차 2차 하청업체 파기환송심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소송을 진행한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입장에서는 적신호다. 지회는 불법파견 소송을 통한 정규직화가 위주였던 기존의 투쟁 방식에서 현장 투쟁과 노조 조직을 강화해 기반을 다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7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제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전날 현대차 1ㆍ2차 협력업체 근로자 18명이 현대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양측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원심은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 중 1차 협력업체 근로자 15명의 불법파견만 인정하고 2차 협력업체 근로자 3명은 현대차의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별다른 판단 없이 원심을 확정했다.
도급 적법성 확대한 원심, 대법서 확정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들은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서열ㆍ불출 업무를 담당하는 1ㆍ2차 협력업체 근로자다. 서열은 자동차 부품을 올리는 팔레트에 정해진 순서대로 부품을 배열하는 작업이고 불출은 서열 된 부품을 작업장으로 운반하는 것으로 일종의 운송업무다.
현대차는 현대글로비스 등 1차 협력업체에 부품물류업무를 도급했고 1차 협력업체는 서열ㆍ불출 등 부품 운송 업무를 다시 2차 협력업체에 도급했다.
1심은 2차 협력업체 근로자 중 서열 작업을 하지 않는 근로자 한 명만 제외하고 모두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했다. 서열 작업 근로자는 작업지시서를 직접 보는 반면 불출 업무는 그렇지 않아서다. 다시 말해 작업지시서를 직접 보는지에 따라 불법파견 성립 여부가 갈렸다. 작업지시서를 지휘ㆍ명령의 징표 중 하나로 인정한 것이다.
반면 2심은 2차 협력업체 근로자에 대해서는 불법파견을 모두 부정했다. 작업지시서는 객관적 정보 공유에 불과하고 지휘ㆍ명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현대차가 불출 업무 순서와 동선을 지정했더라도 이는 작업의 효율성을 위한 것이지 지휘ㆍ명령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판단도 나왔다. 혼재 근무가 이루어졌더라도 2차 협력업체 근로자와 현대차 근로자가 같은 업무를 수행했다고 볼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이는 사내하도급의 정당성을 넓게 인정한 것이다. 특히 대법원이 지난해 판단을 하지 않았던 2차 협력업체 근로자의 불법파견 성립 여부에 관해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준희 광운대 법학부 교수는 "이번 판결은 기존의 사내하도급 불법파견 판단기준을 객관적으로 적용해 결론 낸 당연한 판결"이라며 "원심 판결에는 혼재 작업에 관한 판단이나 작업 수행의 효율화를 위해 일정 부분 외주화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는 등 다른 판결에 비해 전향적인 부분이 있었는데 대법원이 이를 확정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대법원은 업무수행방식이 동일하다고 해서 원청으로부터 상당한 지휘ㆍ명령을 받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되며 원청의 지휘 여부 등을 따져 구체적ㆍ개별적으로 파견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원심을 인정했다"며 "그동안 생산공장 내 하도급은 불법파견이라는 획일적 판단에서 벗어나 원청과 하청회사 간 분업과 협업을 위한 사내하도급 활용의 정당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평가했다.
"2차 업체 불법파견 아냐"...주목해야 할 두 가지
이번 판결 원심에는 주목해 볼 판단이 몇 가지 있다. 파견 징표 중 '상당한 지휘ㆍ명령'과 '원청 사업 편입'에 관한 판단이다.
① 서열지는 '객관적 정보'...지휘ㆍ명령 범위 제한
원심은 현대차가 협력업체 근로자에게 제공한 사양식별표, 서열지, 서열모니터, 물류관리 프로그램, 불출동선 등이 지휘ㆍ명령의 징표가 아니라고 봤다. 사양식별표와 서열지는 자동차생산정보(MES)를 기초로 특정 부품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추출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러한 정보들이 서열공정 작업자라면 정규직이든 사내협력업체 소속이든 외주업체 소속이든 관계없이 반드시 제공돼야 하는 객관적 정보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과거 대법원은 불법파견 사건에서 MES를 지휘ㆍ명령의 징표로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MES에서 추출한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작업지시서는 원청의 지휘ㆍ명령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MES에서 제공되는 정보를 지휘ㆍ명령이라고 판단한다면 파견 범위가 과도하게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원심은 "부품공급망 내 정보 공유를 지휘ㆍ명령으로 본다면 현대차 공장이 아니라 물류업체 자체 사업장 내에서 부품공급망을 통해 제공되는 정보를 이용해 서열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를 포함해 부품제조업체에서 서열 업무를 하는 근로자 전부가 현대차의 근로자가 된다"며 "이러한 결론은 파견의 범위를 무한정 확대해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불출 업무에 대해서도 파견을 부정했다. 원심은 "운송업무 생산효율성을 위해서는 동선이 가장 중요한데 사외 하도급업체에 불과한 2차 협력업체들이 사내의 다른 공정 작업자들의 동선, 작업시간대에 관한 정보를 모두 알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사내 모든 공정을 조율, 관할하고 있는 현대차 측에서 최적의 동선을 계획해 작업자에게 제공해서 효율성을 추구할 필요가 크다"고 했다.
② 정규직 근로자와 동일한 업무해도 "혼재근무 아냐"
원심은 2차 협력업체 근로자가 현대차 사업에 편입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원심은 "2차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와 유사한 방식으로 부품물류공정을 수행해 왔고 사내에서 이뤄지는 부품물류공정은 현대차가 설계한 시간당 생산량과 컨베이어 공정 속도에 밀접하게 연동돼 있지만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원심은 2차 협력업체 근로자와 정규직 근로자와 동일한 물류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혼재 근무는 아니라고 봤다. 부품 종류를 기준으로 보면 현대차 정규직 근로자와 협력업체 근로자의 업무가 명확히 구분된다는 이유다. 원심은 동일한 업무를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특정 부품에 대해서는 2차 협력업체 근로자만 업무를 수행했다면 같은 업무를 수행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작업이 현대차 공장 내에서 이뤄졌다는 것만으로는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현대차에 편입됐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도 나왔다. 서열ㆍ불출 업무가 이뤄지는 장소는 현대차와 부품제조업체, 통합물류업체, 2차 협력업체 등의 이해관계에 따라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결정돼서다.
대법, 2차 업체 판결 교통정리?..."하급심 영향 클 것"
이번 사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현재 대법원과 하급심에 동일한 쟁점의 소송이 여럿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2차 협력업체 근로자가 진행하는 불법파견 소송 중 대법원에 올라간 것만 일곱 건이다. 하급심에서는 서울고등법원에 계류된 사건이 여럿 있고 아직 1심 판단도 나오지 않은 사건도 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에 따른 파기환송심도 아직 진행 중이다.
현대차 불법파견에 대해서는 재판부별 판단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서울중앙법원의 경우 판결 경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일명 민사41부와 민사48부 판단이다.
민사41부는 2차 협력업체 근로자의 불법파견을 넓게 인정하는 판결이다. 현대차와 1차 협력업체 간 계약과 1차 협력업체와 2차 협력업체 간 계약 내용에 큰 차이가 없는 점, 2차 협력업체 근로자와 1차 협력업체 근로자의 업무가 유사한 점 등을 들어 불법파견을 모두 인정했다.
반면, 민사48부는 서열 업무를 하는 2차 협력업체 근로자에 한해서만 불법파견을 인정한다. 서열지나 서열모니터를 보는 2차 협력업체 근로자는 현대차로부터 지휘ㆍ명령을 받았다고 봤지만 서열지를 직접 보지 않고 부품을 운반하는 불출 업무에 대해서는 파견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의 1심도 민사48부 판결이다.
그러나 고등법원에서는 서열지와 서열모니터를 지휘ㆍ감독의 징표로 인정하지 않는 이번 판결의 원심과 같은 취지의 판단이 이어지는 추세다. 지난 10월 13일에 선고된 현대차 2차 협력업체 근로자에 대한 파기환송심도 이번 판결의 원심과 다른 재판부였지만 판결 내용은 거의 유사했다.
이준희 교수는 "후속 하급심 사건에 분명히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판결은 하도급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어 이러한 부분이 쟁점으로 다뤄지는 사건에서는 이 판례가 선례나 기준처럼 작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혼재작업이 이루어졌다면 법원이 기계적으로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경향이 있었고 업무를 외주화할 필요성이 있어도 그 업무의 특성이나 수행 방법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뚜렷하게 보여주지 않았다"며 "그러나 이번 원심 판결이 이에 대해 설시했고 대법원이 인정하면서 후속 판결들에도 굉장히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노동계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김한주 금속노조 언론부장은 "이번 판결은 뒤이은 대규모 2차 협력업체 소송인단의 판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패소 시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현대차의 대응에도 영향을 줄 수 있고 현대차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2ㆍ3차 하청 중심의 새로운 착취구조를 고착화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파기환송심 영향도 '주목'..."영향은 있겠지만 단언 어려워"
이번 판결이 진행 중인 파기환송심에 영향을 줄 것인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대법원의 판단은 현대차 2차 협력업체의 파견 성립 여부에 대해서는 다시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서울고법은 부품생산업체의 재하청 근로자 한 명과 현대글로비스의 재하청 근로자 두 명에 대해 각각 파기환송심을 진행했고 부품생산업체 재하청 근로자에 대해서는 파견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주목할 것은 나머지 두 명에 대한 판단이다. 두 개의 파기환송심은 같은 재판부에 배당됐음에도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재판부는 두 번째 사건에 대해서는 증인 신문을 요구하고 유사한 하급심 사건에 대해 알아보는 등 적극적으로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20일 진행된 2차 파기환송심 변론 기일에서도 재판부는 2차 협력업체 대표의 증인 신문을 요구했다. 계쟁기간으로부터 시간이 오래 지나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당시 사실관계에 대한 증언을 들을 필요가 있다는 이유다. 또 원고 측에게는 2차 파기환송심의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하급심에 계류 중인 동일한 쟁점의 사건이 어떤 것이 있는지 묻기도 했다.
재판부가 파기환송심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이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미지수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의 영향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다만 재판부가 적극적으로 판결을 검토하고 있고 사건마다 특수성이 있어 대법원 판결과 같은 결론이 나올지는 단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민사48부가 이전과 같은 입장을 유지할 것인지도 관전 포인트다. 현재 민사48부에는 가장 많은 소송인단이 모인 2차 협력업체 불법파견 사건이 계류 중이다.
불파 소송 적신호에 대안 찾는 비지회..."현장 투쟁으로 시선 돌려야"
소송을 진행한 근로자 측은 대법원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들은 다단계 하도급의 적법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 아쉬움을 표했다.
김현제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장은 "지회가 처음 조직되고 투쟁에 나섰을 때 가장 먼저 내걸었던 요구는 정규직화가 아니라 차별과 착취를 양산하는 사내하청구조를 박살내자는 것이었지만 이는 오늘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며 "그런데 오늘 대법원은 우리가 현장에서 감내해야 하는 차별과 착취가 불법이 아니라 합법이라는 것을 선언했다"고 날을 세웠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현대차 2차 협력업체 근로자의 불법파견 소송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현장 투쟁에 더 집중하겠는 입장이다. 그간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의 투쟁이 적극적인 조직화나 현장 투쟁보다는 불법파견 소송 집중돼 있었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원청은 1차와 2, 3차 하청을 나눴고 노동자들은 정규직만 되면 모든 게 한 방에 해결된다는 생각에 수많은 문제와 차별을 손 놓고 눈 감아왔다"며 "거기에 동화되고 순응한 비정규직의 저항은 더 이상 두려움이 대상이 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갈라치기에 성공했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은 7개의 소송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현장에서 당하고 있는 수많은 차별을 다시 조사고 떠들고 사회에 고발해야 한다"며 "더 나아가 훨씬 열악한 상황에 있는 완성차 대기업 밖의 부품사 노동자들과 손을 맞잡고 투쟁한다면 사법부는 다시 바뀌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제 지회장도 "지회는 다시 한 번 전열을 가다듬을 것"이라며 "단순히 사법부에 인생을 맡기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에서부터 조직하고 투쟁하는 노동조합답게 교섭과 합의, 투쟁으로 풀어나가는 해결책을 찾겠다"고 말했다.
이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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