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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간접공정’ 두고 엇갈리는 불파 판결…법원 시각 변화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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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61.♡.185.172)
댓글 0건 조회 62회 작성일 23-11-0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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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에서 공용기를 회수하고 도장 설비를 보수하고 사외에서 서열업무를 하는 등 간접공정을 담당하는 협력업체 근로자의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원은 기아가 과거 사내협력업체 운영을 관리하고 개입했다는 점을 불법파견 근거로 삼았다. 다만 지게차 수리 근로자는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봤다.
 
지난달 기아 사외서열 근로자의 불법파견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놨다. 그러나 다른 재판부에서 한 달여 만에 상이한 판단이 등장했다. 기아 간접공정 불법파견을 두고 재판부별로 판단이 갈리는 모양새다. 법원이 간접공정 불법파견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0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48민사부(재판장 김도균)는 기아 협력업체 근로자 34명이 기아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지난 12일 기아 하청업체 근로자 중 직접생산공정 근로자뿐만 아니라 간접공정에 해당하는 공용기 회수, 도장 설비보수, 사외서열에 대해서도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다만 공장 내에서 지게차 수리 업무를 하던 근로자 7명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아, 협력업체 경영ㆍ고용승계까지 관여해"...불법파견 인정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들은 기아 협력업체 소속으로 각각 도장공정, 조립공정, 소재제작공정, KD공정(포장업무), PDI공정(출고업무), 부품ㆍ자재 서열, 공용기 회수, 지게차 정비 등을 수행하던 근로자다.
 
자동차 생산 공정은 컨베이어벨트와 연동돼 이루어지는 직접생산공정과 컨베이어벨트를 직접 사용하지 않는 부수적인 업무인 간접공정으로 나뉜다. 도장공정, 조립공정, 소재제작공정 등은 직접생산공정, 물류 업무, 지게차 정비, 공용기 회수 등은 간접공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지난해 대법원은 현대자동차와 기아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제기한 불법파견 소송에서 직접생산공정과 간접공정 전반에 걸쳐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간접공정이더라도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차 생산 방식의 특성상 원청이 결정하는 작업량과 생산량에 연동돼 작업이 이루어진다는 이유다.
 
이번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기아가 협력업체 운영에 관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이 근거가 됐다.
 
기아는 2001년 2월 사내협력업체 관리기준 통일, 관리시스템 도입, 사내협력업체 소장제 등을 도입하고 사내협력업체 근로자의 근태관리, 안전지도, 교육, 애로사항에 대응하겠다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 계획' 마련했다.
 
노동조합과 체결한 단체협약에서는 공장별 직접고용 비정규직 인원 현황, 공장 부서별 인원현황, 사내협력업체 현황, 생산도급사 현황 등을 통보했고 협력업체 근로자의 인원수, 나이, 근속연수, 성별, 자녀유무, 사내협력업체 근로자의 고용형태, 인원 현황 등도 상세히 파악했다.
 
또 노조와 사내협력업체를 분사하지 않겠다고 협의하고 고용승계를 약속하는 등 사내협력업체의 조직이나 경영에 관한 사항까지 결정하거나 관여했다. 사내협력업체 대표 교체를 추진하고 협력업체 노조 설립을 관리한 사실도 인정됐다.
 
재판부는 "기아는 노조와 확약이나 회의 형태로 사내협력업체 근로자의 임금, 징계 등 처우나 인사관리, 사내협력업체 근로자의 체육대회 참가와 이에 따른 근태처리, 사내협력업체 근로자의 각종 복지, 사내협력업체나 소속 근로자의 요청에 따른 공장 내 시설 보완 등을 협의했고 사내협력업체 근로자의 휴일ㆍ특근 출근현황 등 근태에 관한 사항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공용기 회수ㆍ도장설비보수ㆍ사외서열도 불법파견"
 
기아는 간접공정인 공용기 회수, 도장 설비보수, 사외서열에 관해서는 불법파견을 강하게 부정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용기 회수는 물류업무의 일종으로 조립라인에서 사용하고 남은 공용기를 일정한 주기로 수거해 견인차로 운반한 후 공용기장에서 납품업체별로 정리하는 일이다.
 
재판부는 "공용기 회수 근로자의 근로조건 설정ㆍ관리 방식이 직접공정 근로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작업량도 메인 컨베이어벨트 생산량을 감안해 책정될 수밖에 없었다"며 "해당 업무는 단순ㆍ반복적 업무여서 사내협력업체의 전문성과 기술성이 필요한 업무가 아니고 사내협력업체가 직접 근로자들에게 독자적인 지휘ㆍ명령을 했다는 정황을 찾기도 힘들다"고 설명했다.
 
도장설비보수는 사내와 사외에서 진행됐다. 도장공정 내에서 바로 청소하거나 공장 밖으로 도장 설비를 수거해 세척한 후 다시 운송하는 방식이다.
 
재판부는 "도장설비보수는 메인 컨베이어벨트에서 이루어지는 정규직 근로자의 도장 작업 사이에 행해진다"며 "도장설비보수의 성공적인 수행 여부는 완성된 자동차의 품질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 생산공정과 연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사내에서 이루어지는 업무에 관해서만 판단하고 사외에서 이루어지는 업무는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사외서열에 대해서는 사외에서 이루어지는 업무 특성상 기아의 지휘ㆍ명령이 어려울 수 있고 협력업체가 자체적인 시스템과 장비를 개발했다는 점은 인정됐다.
 
그러나 근로자가 파견을 다투던 기간이 회사 측 발목을 잡았다. 해당 근로자가 파견관계가 성립됐다고 주장하는 기간은 이 협력업체가 기아의 사내협력업체에서 분사한 직후였다. 이 기간은 기아가 사내협력업체에 대해 구체적으로 관리ㆍ감독을 하던 시기다.
 
재판부는 사외서열 근로자도 업무지시를 받으면 신속히 업무를 진행해 조립공장에 부품을 납품해야 했다는 점, 당시에는 사내서열과 사외서열 업무가 구분되지 않았던 점, 사외물류센터에서 사용되는 장비가 기아의 소유였던 점 등을 고려해 파견관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계쟁기간 이후 협력업체가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추게 됐다 해도 파견근로관계 성립을 뒤집기는 부족하다"고 선을 그었다.
 
지게차 수리, '공장 안'이었지만...법원 "불법파견 아냐"
 
한편 기아차 공장 내에서 지게차와 견인차를 정비하고 자전거를 수리하던 협력업체 근로자 일곱 명에 대해서는 불법파견이 인정되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중장비 운용관리업체인 에스지물류 소속이다. 에스지물류는 기아에 지게차, 견인차 등 물류장비를 임대하고 수리하는 협력업체다. 수리를 위해서 기아 소하리공장 내에 지게차 정비소를 두고 있다. 근로자 일곱 명 중 다섯 명은 지게차, 견인차를 정비했고 두 명은 업무용 차량과 자전거 정비를 맡았다.
 
재판부는 "에스지물류 소속 근로자는 자체적으로 수립한 장비점검 기준과 점검표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고 지게차를 수리할 때는 지게차 제조사에서 제공한 정비지침서와 자체적으로 마련한 장비관리 기준서를 활용했다"며 "에스지물류는 지게차 정비에 필요한 인력배치 계획과 세부적인 작업스케줄을 직접 정하는 등 인사권과 근태관리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했다"고 설명했다.
 
또 "중장비 정비 업무는 기아 소하리공장 내 별도 마련된 정비소에서 에스지물류 소속 근로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며 "지게차와 견인차 수리는 중장비 임대차계약에 부수적인 협력업체의 의무이고 자동차 생산 업무와는 구별된다"고 선을 그었다. 자전거 수리 업무 역시 자동차생산과 구별된다는 이유로 불법파견이 인정되지 않았다.
 
"사외서열, 한 달 전에는 불법파견 아니었다" 갈팡질팡 하급심
 
기아 불법파견 사건에서는 공정별로 재판부의 판단이 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10월 판결) 선고가 나오기 불과 한 달 전인 9월 2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에서도 기아 불법파견 선고(9월 판결)가 나왔다.
 
9월 판결에서 재판부는 소송을 낸 근로자 34명 중 9명에 대해서만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눈여겨볼 점은 9월 판결에서는 사외서열 근로자의 불법파견이 부정됐다는 것이다. 두 판결의 근로자는 동일하게 '나우로지스' 소속이다.
 
9월 판결에서 사외서열 근로자는 사외 서열장에서 조립된 부품을 서열하고 지게차를 활용해 출하하는 공정에서 일했다.
 
재판부는 "나우로지스는 자체 물류센터를 운영하면서 기아의 서열정보를 수신하는 서버, 서열 정보를 추출해 변환하는 소프트웨어와 서열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를 자체적으로 개발해 보유했다"며 "나우로지스는 자체적으로 근로자들을 선발했고 기아와 별개의 취업규칙을 마련했으며 근로자들에 대한 인사권과 근태관리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서열은 간접공정 중 하나로 업무 특성상 직접생산공정과 연계되지만 연계성만으로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또 "사외서열의 경우 기아는 협력업체에 서열정보를 제공하고 협력업체는 해당 서열업무에 필요한 정보만을 추출해 자체적으로 서열지로 변환한 후 이를 소속 근로자에게 제공했다"면서 "근로자는 기아 공장과 구분된 별도 사업장에서 서열작업을 마친 후 그 작업 결과를 기아에게 전달했다"고 기아의 구체적 지휘ㆍ명령이 없었다고 봤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10월 판결은 기아가 사내협력업체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점을 근거로 분사 이후에도 기아가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볼 증거가 없다면서 사외서열 근로자의 파견근로관계를 인정했다"며 "근로자 파견관계 판단은 원ㆍ하청 간 우열 관계가 아니라 원청이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의 업무 수행 자체에 지휘ㆍ명령을 했는지, 원청 사업에 협력업체 근로자가 실질적으로 편입됐는지 등에 따라 판단해야 하지만 10월 판결이 다른 사정만 강조한 것은 법리상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사실 기아의 사외물류공정은 지난해 대법원 판결에서도 불법파견이 인정된 바 있다. 그럼에도 하급심에서 엇갈린 판단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변호사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사외물류 근로자 파견이 인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정한 판결이 나왔다는 것은 법원이 사외물류에 관한 새로운 이해와 사실관계를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지난해 대법원 판결의 사실관계 심리가 진행됐던 때는 2016년이고 대법원은 원심의 법리 위주로 판단하면서 새로운 사실관계나 인식 변화가 반영되지 못했는데 이러한 것들이 하급심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변화는 현대자동차 사건에서도 나타났다. 지난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던 현대차 2차 협력업체 근로자의 불법파견 여부를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판단한 결과 법원은 과거 불법파견을 인정했던 원심을 깼다. 불법파견 징표 중 하나였던 작업지시서는 구체적인 지휘ㆍ명령이 아닌 객관적 정보 제공에 불과하다는 점, 1차 협력업체가 독자적 설비를 갖추고 있어 2차 협력업체 근로자가 현대차 사업에 편입됐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이 새롭게 고려된 결과다.
 
기아 불법파견, '고법 계류' 사건 주목해야
 
기아 간접공정을 두고 불법파견 판단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고법에 계류 중인 사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9년에 중앙지법에서 1심이 선고된 후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인 두 사건이다.
 
이 사건에도 직접생산공정뿐만 아니라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사외서열업무, 지게차 관리, 도장설비보수, 공용기 회수 등 다양한 간접공정이 포함돼 있다. 10월 사건에서 불법파견이 아니라던 지게차 관리도 이 사건 1심에서는 불법파견으로 인정됐다.
 
두 사건은 1심에서 각각 판단을 받은 후 항소심에서는 같은 재판부에 배당돼 함께 변론을 진행 중이다. 두 사건의 원고는 130여 명으로 앞선 소송보다 규모도 크다.
 
한편, 노사 양측은 9월 판결과 10월 판결에 대해 모두 항소했다.

출처: 2023년 10월 30일, 월간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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