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후속조치 했지만 양형사유 안 돼”...한국제강, 2심도 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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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된 한국제강 대표이사 A 씨의 실형이 유지됐다. A 씨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음 법정구속된 장본인이다. 다른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이 집행유예에 그친 것과 달리 형량이 무거워진 데에는 '괘씸죄'가 작용했다. 한국제강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과태료를 부과받은 전력이 여러 번 있고 산재사망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업장이기도 하다.
2심에서는 형량 조정이 관건이었다. A 씨 측은 집행유예가 나온 다른 사건보다 의무 위반 사항이 적은 점, 사고 이후 후속 조치로 협력업체 안전관리지침서를 작성하고 위험성평가 컨설팅을 받는 등 후속 조치를 했다는 점을 감안해 형량을 감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런 사정이 형량을 조정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상상적 경합 관계에 있다는 판단도 유지했다. 법원은 지금까지 나온 중대재해처벌법 선고에서 모두 동일한 판단을 보이고 있다.
28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부산고등법원 창원제1형사부(재판장 서삼희)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한국제강 대표이사 A 씨의 항소심에서 A 씨와 검사 측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지난 23일 "A 씨가 사고 이후 협력업체 안전관리지침서를 작성하고 있고 안전 실천 결의대회를 개최했으며, 외부 전문기관으로부터 위험성평가 컨설팅을 받고 개선 조치를 완료했다는 것을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하더라도 원심의 양형이 과중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첫 중대재해 실형받은 A 씨...'동종 전과'에 괘씸죄
지난해 3월 경남 함안군 한국제강 공장에서 설비ㆍ보수를 담당하던 하청업체 근로자가 떨어진 방열판에 깔려 사망했다. 크레인 섬유벨트가 끊어지면서 매달려 있던 방열판이 근로자를 덮쳤고 사고 직후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근로자를 덮친 방열판은 무게 1.2톤, 가로 300cm, 세로 140cm에 달하는 중량물이었다. 방열판을 매달고 있는 섬유벨트는 오래돼 표면이 딱딱해졌고 불티에 용해되거나 긁힌 흠이 있는 상태였다. 기본 사용 하중 표식도 사라져 안전성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검찰은 A 씨가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모두 위반했다고 판단해 징역 2년을 구형했다. A 씨는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로서 안전보건 관리 책임자가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평가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 또 하청업체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능력이 있는지 평가하는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는 등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이행하지 않았다.
1심은 A 씨에 징역 1년을 선고해 법정구속하고 법인에는 벌금 1억 원을 선고했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경영책임자가 법정구속된 첫 사례다.
A 씨가 실형을 받은 데는 동종 전과가 있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한국제강은 지난 2010년 검찰청과 고용노동부의 합동점검에서 안전조치의무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았다. 2020년에는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창원지청에서 안전조치의무 위반으로 또다시 벌금형을 받았고 이듬해에는 산재사망이 발생해 대표이사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산재사망 직후에 실시된 고용부 정기 감독에서도 안전조치의무 위반이 적발돼 벌금을 받았다.
특히 이번 중대재해 사고는 앞선 산재 사망 사고에 대한 형사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발생했다. 중대재해사고가 발생하고 3개월 후에 실시된 고용부 감독에서도 안전조치의무 위반 사실이 재차 적발됐다.
1심은 "수년간에 걸쳐 안전조치의무위반 사실이 여러 차례 적발되고 산업재해 사망사고까지 발생한 것은 이 사업장에 근로자의 안전권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A는 이전에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로 형사재판을 받는 와중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음에도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A 씨, 후속 조치 있었지만...2심 "형량 감경 사유 안 돼"
A 씨는 항소했지만 2심도 1심 판결을 유지했다. 2심에서 쟁점이 된 것은 형량이었다. A 씨 측은 사고 이후 협력업체 안전관리지침서를 작성했고 전문기관으로부터 위험성평가 컨설팅을 받아 개선 조치를 완료했다면서 형량을 감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A 씨의 경우 이미 선고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과 비교하면 의무 위반 사항이 적었는데, 다른 사건에서는 전부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과 달리 A 씨에겐 실형이 선고됐다. A 씨 측은 이를 근거로 양형이 과도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 씨가 사고 이후 협력업체 안전관리지침서를 작성하고 있고 안전 실천 결의대회를 개최했으며, 외부 전문기관으로부터 위험성평가 컨설팅을 받고 개선 조치를 완료했다는 것을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하더라도 원심의 양형이 과중하다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형사 사건의 경우 양형 조건에 변화가 없고 원심 양형에 문제가 없다면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2심이 1심의 형량을 유지했다는 점은 A 씨가 주장한 사정들이 형량을 조절할 만한 새로운 사정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사고는 2021년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한 후 채 1년도 되기 전에 다시 발생한 사망 사고"라며 "각 사고에 사고 당사자의 과실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10개월 만에 2명의 근로자가 같은 사업장 내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A 씨가 하청에 대해서도 관리ㆍ감독할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A 씨는 하청 작업에 대한 원청의 관리ㆍ감독 권한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청 근로자 작업은 하청 책임하에 이루어지고 한국제강은 단지 하청 작업물을 납품받는 형태라고 인식했다는 것이다. 사고가 난 공장이 한국제강 사업장 안에 있기는 하지만 공장과는 별도로 떨어져 있고 업무도 별개로 하고 있어 작업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하청사는 2014년경부터 제강ㆍ압연 현장에 쓰는 물품의 수리 업무를 수행하면서 한국제강 사업장 내에서 대다수의 작업을 진행했다"며 "A 씨의 주장은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폐단을 근절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음에도 2년이 지날 때까지 그 취지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고, 이는 사고에 직ㆍ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A 씨의 경우 범죄 전력이 있었고 도급인으로서 의무를 엄격하게 이행해야 한다는 재판부의 시각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A 씨 측에서는 유리한 양형 요소를 추가로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양형조건에 변화가 없었다고 본 것을 주목해 볼만 하다"고 설명했다.
항소심도 '상상적 경합'...일관된 입장 보이는 법원
한편, 재판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와 산업안전보건겁 위반죄는 실체적 경합이 아닌 상상적 경합 관계라고 못 박은 부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는 범죄 행위에 여러 가지 법 위반이 동시에 성립할 때 어떻게 형량을 책정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다. 실체적 경합은 각각 행위가 각각 죄를 구성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경우 여러 개의 죄가 합쳐져 형량이 가중될 수 있다. 상상적 경합은 한 개의 행위에 의해 여러 개의 죄가 성립한다고 본다. 상상적 경합이 적용되면 여러 개의 죄 중에 가장 무거운 죄만 적용된다.
검찰 측은 실체적 경합 관계로 기소를 제기하고 있는 반면, 재판부는 상상적 경합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중대재해처벌법 선고는 모두 상상적 경합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번 사건에서도 검사는 상상적 경합이라는 1심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A에 관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 업무상과실치사죄는 상상적 경합범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A 씨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총괄책임자로서 하청 근로자에 대해 산업재해를 예방할 의무를 부담함과 동시에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로서 안전ㆍ보건을 확보할 의무가 있었다"며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면 같은 일시ㆍ장소에서 같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결과의 발생을 방지하지 않은 부작위에 의한 범행에 해당해 법적 평가를 떠나 사회 관념상 1개의 행위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의 보호법익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산업재해 또는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의 안전을 유지ㆍ증진하거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해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명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며 "이는 사람의 생명이 보호법익인 업무상과실치사죄와도 같다"고 덧붙였다.
출처: 2023년 08월 29일, 월간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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