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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처법 4호 판결이 말하는 ‘예산 수립’은?…첫 판시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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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61.♡.185.172)
댓글 0건 조회 49회 작성일 23-08-3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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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4호 사건에서 또다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법원은 경영책임자가 예산을 제대로 편성하지 않았고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아 근로자가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집행유예라는 결과만 보면 앞서 나온 중대재해처벌법 판결과 유사해 보이지만, 피고인이 의무 위반 여부를 다툰 첫 사건이라는 점에서 좀 더 들여다 볼 필요성이 있다. 앞서 선고된 온유파트너스와 한국제강, 시너지건설의 경영책임자는 모두 혐의를 인정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만덕건설 대표이사 류 모 씨는 의무 위반 혐의 네 가지 중 두 가지를 부인했다.

이에 재판부는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어떻게 이행해야 하는지 처음으로 판단을 내놨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안전ㆍ보건 경영 목표를 수립하는 것은 산업안전법상 안전ㆍ보건 계획과는 다르고 안전보건 예산을 편성할 때는 공사비에 계상하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9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창원지법 마산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강지웅)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류 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40시간을 선고했다. 만덕건설 법인에는 벌금 5000만 원이 선고됐다.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만덕건설 현장소장과 하청사인 대득건설 안전관리책임자, 사고 원인이 된 굴착기 작업자도 모두 집행유예와 사회봉사 40시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지난 25일 "류 씨가 수립한 안전ㆍ보건에 계획에는 재해의 예방, 유해 위험요인 개선, 그 밖에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등에 필요한 예산의 편성과 집행에 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 담겨있지 않고 류 씨는 계상된 산업안전보건관리비와 별도로 재해 예방에 필요한 안전ㆍ보건에 관한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며 "류 씨가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지 않은 것은 사고의 주요 원인이 됐다"고 판단했다.

의무 위반 다툰 첫 사건...재판부, 혐의 인정한 이유는?

만덕건설은 경남 창원시 상수도사업소에서 가압장 개선사업 공사를 도급받았고 이 중 토공사는 대득건설에 맡겼다. 현장에서는 굴착기로 땅을 파는 터파기 작업과 토사가 무너지지 않도록 흙막이를 설치하는 작업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었다. 피해자는 공사현장 흙막이 가시설 용접 작업을 하던 근로자로, 굴착기 뒤로 지나가다가 회전하는 굴착기와 통로 벽 사이에 협착돼 숨졌다.

사고가 난 현장은 협소한 편으로 작업자들이 굴착기와 부딪힐 위험이 있는 곳이었다. 작업자가 굴착기 옆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굴착기 뒤쪽 통로를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 통로는 굴착기가 회전할 경우 통로 벽과 굴착기 간 공간이 5cm 정도만 남았다. 사망한 작업자도 이 5cm 남짓 공간에 끼어 사고가 발생했다.

검찰은 만덕건설 대표이사 류 씨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재판에 넘겼다. 
 
류 씨가 이행하지 않은 의무는 네 가지다. ▲사업장의 안전ㆍ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방침 설정 ▲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안전ㆍ보건에 관한 인력, 시설 및 장비를 구비하는데 필요한 예산 편성과 집행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이 각 사업장에서 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평가기준 마련과 평가ㆍ관리 ▲중대산업재해의 발생 또는 발생할 급박한 위험에 대비한 대응조치 매뉴얼 마련이다.

류 씨는 안전ㆍ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방침을 설정하는 의무와 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예산을 편성할 의무는 이행했다고 반박했다.
 
류 씨는 산업안전보건법상 회사의 안전보건에 관한 계획 수립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2022년도 안전ㆍ보건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고 이사회에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를 이행한 것을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ㆍ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방침 설정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산업안전보건관리비로 계상된 공사금액을 안전관리자 인건비, 안전시설비, 개인보호구ㆍ안전장구 구입비 등으로 집행했다고 변론했다.

재판에서 류 씨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이행했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의무 이행 여부가 쟁점이 된 것은 이번 사건이 처음이다. 앞서 선고된 사건에서 모든 피고인은 의무 위반 사실을 전부 인정하고 자백했다.

재판부는 류 씨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ㆍ보건 목표를 수립하는 것과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ㆍ보건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ㆍ보건에 관한 인력과 시설을 구비하는 데 필요한 예산 편성 의무를 이행했는지 판단할 때 어떤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지도 설시했다.

"중처법상 경영방침, 산안법 안전보건 계획과 달라"

재판부는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ㆍ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방침을 설정하는 것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ㆍ보건 계획을 세우는 것과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두 가지는 상당 부분 중복될 수 있지만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계획은 매년 사업장의 상황을 고려한 구체적인 계획인 데 비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요구하는 안전ㆍ보건 목표와 경영방침은 사업을 수행하면서 각 부문에서 항상 고려해야 하는 안전ㆍ보건에 관한 기본적인 경영철학과 의사결정의 일반적인 지침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고 했다.
 
재판부는 안전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방침을 설정할 때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사항 열거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사업장의 규모와 특성 등을 반영해 재해 예방과 예산 편성, 집행에 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ㆍ보건 목표와 경영방침은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과 규모 등이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 2호나 9호에 관한 것 등으로 구체화돼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 2호는 안전ㆍ보건 전담 조직과 인력에 관한 내용, 9호는 하청업체 평가 기준과 점검 절차 마련에 관한 내용이다.

재판부는 이 법리에 따라 류 씨가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업계에서 통용되는 표준적인 양식을 별다른 수정 없이 활용하는 데 그치거나 안전ㆍ보건을 확보하기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 포함되지 않아 명목적인 것에 불과한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이 요구하는 목표와 경영방침을 설정했다고 볼 수 없다"며 "류 씨가 주장하는 계획에는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과 규모 등이 반영돼 있지 않고 그 내용을 봐도 건설회사에 일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인 사항들을 열거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특히 재해의 예방, 유해 위험요인 개선, 그 밖에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등에 필요한 예산의 편성과 집행에 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 담겨있지 않다"고 부연했다.

적절한 재해 예방 예산 편성은?..."산업안전보건관리비에 국한돼선 안 돼"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가 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안전ㆍ보건에 관한 인력, 시설 및 장비 구비를 위해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고 그 용도에 맞게 집행하도록 규정한다.

이때 재판부는 '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인력, 시설, 장비'가 산업안전보건법을 비롯해 종사자의 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관계법령 등에서 정한 인력, 시설, 장비라고 설명했다.
 
특히 건설업의 경우 고용노동부 고시인 '건설업 산업 안전보건관리비 계상 및 사용기준'이 예산을 수립하는 데 1차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중대재해처벌법상 예산 편성 의무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상 의무보다 폭넓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은 도급이나 용역 등을 통해 노무를 제공하는 종사자에 대해서도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져서다.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편성해야 하는 예산은 산업안전보건관리비에 국한되지 않고 관계 법령에 따라 의무적으로 갖춰야 할 인력, 시설 및 장비 구비를 위한 비용이 모두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또 안전보건 예산이 편성돼 있다 하더라도 그 예산이 사업장에서 그 용도에 맞게 집행되지 않았다면 의무 이행으로 볼 수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재판부는 "만덕건설이 공사금액 일부를 안전관리자 인건비, 안전시설비, 개인보호구 및 안전장구 구입비, 안전보건교육비, 행사비 등으로 집행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그러나 류 씨는 공사금액에 계상된 산업안전보건관리비와 별도로 재해 예방에 필요한 안전ㆍ보건에 관한 예산을 편성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이어 "류 씨는 굴착기를 사용해 작업하는 경우 출입금지 표지판, 울타리 등 안전시설을 설치해 작업반경 내 공간에 근로자가 출입하지 못하도록 통제하거나 유도자를 배치해야 할 법령상 의무가 있었지만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위반 인정됐지만..."피해자 과실ㆍ유족 합의 있어 집행유예"

재판부는 류 씨가 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해 근로자가 사망하게 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공사현장 굴착기 작업반경 내에 출입금지 표지판, 울타리 등 안전시설을 설치해 근로자 출입을 통제하거나 유도자를 배치해 굴착기를 유도했더라면 재해 발생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와 같은 인력과 시설을 구비하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류 씨가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지 않은 것은 사고의 주요 원인이 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이 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지 않아 이들이 건설기계에 의한 협착 위험을 적절히 평가하고 안전사고를 방지하는 조치를 안 하게 했다"며 "작업 중지, 위험요인 제거 등 대응조치에 관한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아 급박한 위험이 있음에도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작업을 중지하거나 즉시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등 대응조치를 할 수 없게 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류 씨가 중대재해 위험에 대비해 체계적인 매뉴얼을 마련하고 종사자에게 공유하고 주기적으로 점검했다면 누군가는 매뉴얼에 따른 대응조치를 취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만약 대응조치가 이루어졌다면 피해자가 협착되는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류 씨가 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한 데에 고의가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류 씨는 2022년 3월 안전보건관리 컨설팅 업체에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의뢰했지만 컨설팅 업체의 거듭된 요청에도 관련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 등 적극적인 협조를 하지 않았다"며 "이로 인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업무 진행이 지지부진하던 중 중대재해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목적을 고려하면 류 씨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류 씨가 책임을 통감하고 재발 방지를 다짐한 점, 피해자에게도 어느 정도 과실이 있는 점, 피해자 유족과 합의했고 유족이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인과관계 부실 지적 이어져...기업, 판결 참고해 예산 점검해야

전문가들은 법원의 인과관계 논증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형성하고 운영하는 것이다. 체계가 잘 운영되지 않았다고 해서 현장 근로자가 사망하는 결과가 발생했다는 인과관계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법원이 갖고 있는 숙제이기도 하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에 대한 평가기준을 마련해 제대로 평가했다면 현장에서 안전에 관한 사항을 잘 준수했을 것이라는 것은 추측에 불과하다"며 "만약 대응매뉴얼이 미비해서 즉각적인 구호조치를 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부상에 그칠 수 있음에도 사망하게 됐다면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겠지만 현장에서 즉사했다면 대응매뉴얼 미비와 사망 간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대원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도 "법원은 인과관계를 자연과학적 수준으로 엄격하게 판단하기보다는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 위반이 부족했다는 것이 확인되면 포괄적으로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상태 변호사는 대응매뉴얼의 개념 혼동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상 대응매뉴얼은 사고 발생 시 후속 조치에 관한 매뉴얼을 의미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대응매뉴얼을 사전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매뉴얼이라고 보고 사전에 매뉴얼이 잘 준비돼 있었다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사전에 사고를 예방하는 것은 유해위험성 평가지만 이에 대한 판단은 나오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한편, 이번 판결은 법원이 안전보건에 관한 경영방침 설정과 예산 편성에 대한 판단을 처음 내놨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이번 법원 판시는 기업이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이행할 때 참고할 수 있는 내용이다.

정상태 변호사는 "기업으로서는 안전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방침 설정 시부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이 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며 "예산 수립의 경우에도 재판부는 공사금액에 계상돼 있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와 별도로 추가적인 예산 편성을 했는지 여부도 판단하고 있으며 단순히 인력, 시설 등에 대한 예산을 편성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작업과 관련한 구체적인 항목에 예산이 편성돼 있는지도 살펴보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한 기업들의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출처: 2023년 09월 29일, 월간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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