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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피해자 결정 돕지 않은 회사, 위자료 줘야”...확장된 의견청취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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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61.♡.185.172)
댓글 0건 조회 46회 작성일 23-08-3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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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성폭력 사건에서 회사가 피해자 의견청취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회사는 단순히 피해자의 의사를 묻는 것을 넘어서 처리 절차를 객관적으로 안내하고 피해자가 처리 절차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31일 노동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10-2민사부(재판장 김동현)는 성폭력 피해자 A 씨가 회사인 대한항공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지난 10일 "피해자는 가해자 진술의 구체적 양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전달받고 형사고소할지 여부 등 자신의 대응 방안을 정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며 "사용자는 이러한 A 씨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은 채 단순히 사직서 제출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점만을 전달해 의견청취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평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A 씨, 가해자 사직에 문제 제기한 이유는?
 
A 씨는 팀장 B 씨로부터 직장 내 성폭력을 당했다. 보안 사고가 일어나자 팀장은 사고 경위를 설명하라면서 A 씨를 사저로 불러 성폭행을 시도했다. 이후 A 씨는 회사에 직장 내 성폭력을 신고했고 조사가 시작되자 B 씨는 스스로 사직했다.

A 씨는 회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A 씨는 성폭력이 업무와 관련돼 벌어졌기 때문에 회사가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로자가 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우 사용자는 손해배상책임을 진다. 다만 불법행위가 사용자의 사업과 시간적, 장소적으로 근접하고 사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는 불법행위 동기가 업무처리와 관련돼 외형적, 객관적으로 사무와 관련된 경우 사용자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

주목할 점은 A 씨가 징계 절차가 이루어지기 전 B 씨가 사직한 것에 대해서도 회사의 책임을 물었다는 것이다.

A 씨는 직장 내 성폭력 조사가 진행될 당시 B 씨의 사직에 반대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이다. B 씨가 혐의를 인정한다면 징계 절차 없이 사직으로 사건을 마무리하자는 회사 측의 강권이 있었다는 것이다.

A 씨는 B 씨가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사직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A 씨의 법률대리인도 사건이 신속하게 해결됐다면서 회사 측에 인사말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B 씨가 조사 과정에서 A 씨에게 책임을 돌리는 발언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A 씨는 반발했다. B 씨가 A 씨에게 책임을 돌린 것을 알았으면 사직에 동의하지 않고 징계나 형사고발 등 다른 절차를 택했을 거라는 주장이다. A 씨는 회사가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니 남녀고용평등법상 의견청취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다고 볼 수 없다면서 위자료를 청구했다.
 
반면 회사 측은 범죄 행위가 휴가 기간 중 근무지와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다면서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가해자는 당시 장기휴가 중으로 담당 업무는 다른 직원에게 이관된 상황이었다. A 씨도 피해 당시 휴무여서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업무에서 배제돼 있었다는 설명이다. 또 직장 내 성폭력 사건 조사와 피해자 의견 청취도 잘 이행했다고 반박했다.

법원 "휴가 중 회사 밖 성폭력도 사용자 책임"

재판부는 대한항공의 책임을 인정했다. 휴가 중 사저에서 벌어진 성폭력이더라도 업무와 관련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B 씨는 A 씨를 포함한 직원들의 일상적인 업무 수행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A 씨의 직무 테스트, 근무평정을 하는 등 상급자로서 지휘ㆍ감독을 해왔다"며 "B 씨는 휴가 기간이 끝나면 이전의 팀장 직책과 업무로 복귀가 예정돼 있어 보안사고 처리 과정에 관여할 것으로 예상됐고 실제로 그 역할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B 씨가 A 씨를 사저로 부른 것도 보안사고에 대해 더 들어보자는 명목에서였고 그는 1주일 뒤 팀장으로 복귀하는 것이 예정돼 있어 사고에 직접 관여할 필요가 있었다"며 "A 씨가 늦은 시간 멀리 떨어져 있는 곳까지 가해자를 찾아간 것은 곧 복귀할 팀장의 지위와 권한에 따른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가해자가 성폭력을 저지르기 전까지는 보안사고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라고 하는 등 업무상 대화를 이어갔다"며 "가해행위는 외형상 객관적으로 사용자의 사업활동이나 사무집행행위와 관련됐다고 볼 수 있어 사용자책임이 성립한다"고 했다.

"회사, 피해자 적절한 선택 도왔어야"...2심서 확장된 의견청취의무

재판부는 의견청취의무를 잘 이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회사 책임을 인정했다. 1심이 의견청취의무에 대한 회사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과는 다른 판단이다.

앞서 1심은 B 씨가 자진해서 사직한 것과 해고의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다. 회사가 징계 절차를 열지 않고 사직 처리를 한 이유는 A 씨가 사직 처리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빠른 종결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1심은 "직장 내 성폭력의 사후 대응과 처리 절차는 중요한 원칙과 방향성을 지키면서 이를 해치지 않는 한 부차적이고 세부적인 사항에 흔들리지 않게 진행되는 것이 불가피하고 중요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책임감 있는 자세와 일관성 있는 대응도 요구된다"고 했다.

이어 "가해자는 결과적으로 강간미수라는 사실관계는 분명히 시인했기 때문에 A 씨의 동의하에 결정되고 진행된 강간미수와 사후처리절차의 원칙과 방향을 변경할 이유는 없다"며 "가해자 사직 처리는 법률대리인의 검토와 조력을 받아온 A 씨의 의사와 희망을 반영해 징계의 대안으로 선택돼 진행된 것으로 이 절차가 A 씨의 이익을 해치는 위법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2심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A 씨가 대응 방안을 적절히 선택할 수 있도록 회사가 가해자의 진술 등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의견청취의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회사는 A 씨에게 직장 내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해 마련된 다양한 제도와 절차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할지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비밀 유지를 위해 각별한 주의를 다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며 "그러나 회사 측은 A 씨가 공식적인 징계 절차를 거치게 될 경우 피해가 공개될 염려가 있다는 점만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면서 무징계 사직을 받아들이라고 사실상 강권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는 가해자 진술의 구체적 양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전달받고 형사고소할지 여부 등 자신의 대응 방안을 정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며 "사용자는 이러한 A 씨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은 채 단순히 사직서 제출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점만을 전달해 의견청취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평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 씨가 사직에 동의했다 하더라도 회사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A 씨가 임의사직 처리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부분이 있고 가해자 사직 이후 A 씨의 법률대리인이 감사 공문을 보냈지만 그 사실만으로 회사의 잘못을 치유하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A 씨가 사직 처리 이후 감사인사를 했던 점을 고려해 위자료는 300만 원만 인정했다. 재판부는 "A 씨 측은 가해자와의 신속한 분리를 반복해 강조했을 뿐 징계 절차에 회부하지 않겠다는 사용자 입장에 분명한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데다 오히려 회사의 조치에 환영과 감사의 표시를 하기도 함으로써 사용자가 적절한 필요조치를 취하지 못하게 된 데 일정 부분 기여한 바가 있다"고 위자료 산정 이유를 설명했다.
 
"정보공개 어디까지?" 늘어난 실무자 부담...노동계는 '환영'
 
남녀고용평등법은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시 징계, 근무장소 변경 등 사업주가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징계 등 조치를 하기 전에는 피해 근로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이때 '필요한 조치'는 공식적인 절차나 비공식적인 절차 모두 가능하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주를 위한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가이드북'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했을 경우 비공식 절차에 따른 해결과 공식 절차에 따른 해결이 모두 가능하다. 따라서 이번 사안과 같이 징계 절차를 밟지 않고 사직 처리를 하는 것 자체는 위법이 아니다.

이번 사건에서 법원이 위자료 청구를 인정한 것은 회사가 의견청취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의견청취의무가 단순히 피해자의 의견을 듣는 것을 넘어서 피해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까지 포함된다고 봤다.

한 노동 전문 변호사는 "법원은 회사가 피해자의 의견 청취를 할 때 피해자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하기 때문에 충분히 사실관계를 설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형식적으로 의견 청취는 이행했더라도 피해자가 올바른 선택을 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문제가 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는 고용부의 가이드 취지와도 부합한다. 고용부 '직장 내 성희롱 예방 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해 고충 상담이 이루어지는 경우 사용자는 직장 내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해 마련된 다양한 법제도와 직장 내 제도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또 신고인이 처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한 선택지를 제공해 신고인 스스로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가장 만족할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해 선택할 수 있도록 도우라고 제시한다.

다만 이러한 법원 판결이 기업 실무자에게 혼선을 줄 가능성도 있다. 피해자의 의견이 제대로 형성될 수 있도록 필요한 한도 내에서는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다. 섣불리 정보를 모두 공개했다가 당사자의 반발을 살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의견청취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회사가 배상 책임을 질 수 있어 실무자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변호사는 "이 판결은 
회사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기 때문에 기업 실무자에게 중요한 판결이 될 수 있다"며 "가해자의 진술을 피해자에게 공개할 경우 가해자 측에서 반발할 가능성이 있으며 무엇보다 신속한 분쟁 해결을 원하는 회사 입장에서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동계는 이 판결을 환영했다.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는 "이번 판결은 사건 처리 과정에서 피해자의 의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남녀고용평등법 취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며 "직장 내 성폭력 예방과 대응에 대한 기업과 사업주의 책임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성폭력 발생 시 회사는 가해자만 사직 처리하고 피해자를 위한 보호 조치 없이 사건을 조용히 덮으려 하는 경우가 빈번하고 이러한 처리는 2차 피해로 이어져 왔다"며 "기업과 사업주는 더 이상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처리 절차로 조치 의무를 다했다고 주장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2023년 08월 31일, 월간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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