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해지ㆍ갱신 반복 ‘기간제 강사’에 법원 “계속근로 단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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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단위로 근로계약과 계약 해지를 반복해 온 서울 공립학교 영어회화 전문강사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라고 판단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학교가 강사에게 한 근로계약 종료 통보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6일 노동법률에 따르면 지난달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1민사부(재판장 정희일)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립학교에서 영어회화 전문강사로 일한 A 씨 등 5명이 서울특별시를 상대로 낸 근로에 관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 씨 등 5명은 서울시가 설치ㆍ운영하는 공립학교에서 영어회화 전문강사로 일했다. 이들은 강사로 일하며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맺고 갱신하는 것을 반복했고, 최대 임용기간이 만료됐을 때 학교로부터 근로관계종료를 통보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A 씨의 경우 모 초등학교에서 2010년 9월 1일부터 2014년 8월 31일까지 1년 단위로 총 세 번 근로계약을 갱신했다. 초등학교장은 최대 임용기간 만료를 이유로 A 씨에게 근로계약 종료를 통보했고, A 씨는 초등학교의 신규채용절차에 따라 새로 근로계약을 체결해 2014년 9월 1일부터 2015월 2월 28일까지 일했다.
그러던 중 서울시는 '영어회화 전문강사 근무학교 이동 배치 알림' 공문을 시행했다. 이 공문에 따라 A 씨는 2015년 3월부터 모 고등학교로 이동배치됐다. A 씨는 이곳에서 고등학교장과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또 1년 단위로 총 세 번 근로계약을 갱신했다.
하지만 이 고등학교도 2019년 2월 A 씨에게 계약기간이 종료됐다며 근로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A 씨 외 나머지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 후 근로관계 종료를 통보받았다.
이에 A 씨 등은 자신들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 지위에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기간제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2년을 초과해 기간제근로자를 사용할 수 없고, 2년을 초과해 기간제근로자를 사용하면 그 기간제근로자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
그러나 같은 법 시행령에선 '다른 법령'이 기간제근로자 사용기간을 별도로 정한 경우엔 2년을 초과해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이번 사건에서 '다른 법령'에 해당하는 건 초ㆍ중등교육법이다. 초ㆍ중등교육법은 기간을 정해 영어회화 전문강사를 임용할 때 그 기간을 1년 이내로 하되, 필요한 경우 계속 근무한 기간이 4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즉, 종합하면 사용자인 학교는 초ㆍ중등교육법에 따라 기간제근로자인 영어회화 전문강사를 2년 초과해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계속 근무한 기간이 4년을 초과하면 영어회화 전문강사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봐야 한다.
법원은 "기간제 근로계약이 반복해 체결되거나 갱신돼 일정한 공백기 없이 기간제근로자가 계속적으로 근로한 경우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최초 기간제 근로계약에서부터 최종 기간제 근로계약에 이르기까지 기간 전체가 '계속 근로한 총기간'에 포함돼야 한다"는 법리를 제시했다.
A 씨 등은 기간제 근로계약을 1년 단위로 체결ㆍ갱신해 계속 근무한 기간이 4년을 초과했다. 이에 법원은 A 씨 등의 손을 들어주고 A 씨 등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A 씨 등은 계속 근로한 총기간 동안 새로운 근로관계가 형성돼 근로관계가 단절됐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없다"며 "영어회화 전문강사로서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고 임금 등 근로조건이 실질적으로 크게 변동되지 않았다"고 했다.
서울시 측은 A 씨 등과 세 번의 근로계약 갱신 후 신규채용절차에 따라 근로계약을 새로 체결한 사실을 들어 근로관계 단절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A 씨 등의 근무시점부터 4년이 경과한 시점부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전환됐음에도 근로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근로계약 종료를 통보한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A 씨 등은 부당해고 이후에도 기존 근로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득이 신규채용절차에 응시했다고 보일 뿐, 부당해고 결과를 받아들이려고 신규채용에 응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A 씨 등이 부당해고 이후 기존에 근무하던 학교에 다시 신규채용됐다고 해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관계로 전환된 기존 근로관계가 단절됐다고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기간제법상 계속근로 단절 여부는 기존 판례에서도 꾸준히 쟁점이었던 부분이다. 이번 사건은 신규채용절차에 따라 근로계약을 새로 체결한 것을 계속근로 단절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인정한 판례도 있다. 이번 사건과 똑같은 상황에서 영어회화 전문강사가 자신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라며 제기한 사건에 대한 2020년 대법원 판결이다.(대법원 2020. 8. 20. 선고 2017두52153 판결)
대법은 학교가 신규채용 시 '공개채용' 절차를 거친 후 새로운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계속근로가 단절됐다고 봤다. 대법은 공개채용절차에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경쟁이 이루어졌고, 학교가 기존 영어회화 전문강사들을 계속 채용하겠다는 의사를 가지고 평가 기준을 마련한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즉, 대법은 공개채용 방식으로 진행한 학교의 신규채용절차가 기존 영어회화 전문강사를 계속 채용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고 봤다. 때문에 계속근로가 단절됐다고 최종 판단했다.
이번 사건 법원 역시 학교가 신규채용절차에서 공개채용 방식을 거쳤는지를 살폈으나, 공개채용은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은 "A 씨 등의 소속 학교 변경 과정에서 별도의 공개채용 절차를 거친 바 없는 점을 비춰 보면 이를 근로관계 단절의 징표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출처: 2023년 09월 06일, 월간노동법률, 이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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