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불파 근로자, 다른 업무로 전보하면 ‘부당’…새 법리 내놓은 지노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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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불법파견으로 인한 직접고용 이후 직무배치에 관한 새로운 법리가 등장했다. 직접고용할 때는 원직 복직을 원칙으로 하고 이종업무에 배치하게 될 경우엔 정당한 인사명령인지 여부를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근로자의 원래 직무가 하청업체가 담당하는 간접공정이더라도 마찬가지다. 경기지노위는 근로자를 원직에 배치하기 위해 원청이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하거나 변경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경기지노위는 근로자들을 원직에 복직시키라는 구제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다. 당장 원직 복직이 어려운 만큼 노사가 대화를 통해 배치할 공정을 결정하라는 취지다. 이에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다.
불법파견 승소 근로자, 음독한 사정은?..."전환배치에 불만 있었다"
28일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아 화성공장 주차장에서 근로자 A 씨가 음독 후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A씨는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A 씨 동료와 가족들은 A 씨가 불법파견 소송에서 승소한 후 원치 않는 업무로 배치되면서 육체적ㆍ정신적 부담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승소 판결을 받았다. 기아 하청노동자 271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이다.
승소 후 회사가 직접고용할 일만 남았지만 문제는 직무였다. A 씨는 협력업체에서 간접공정 업무를 담당하던 근로자였는데 승소 후 기아 화성공장의 조립부에 배치됐다. 대법원 판결으로 기아와 근로자들 간 직접고용관계가 형성됐음에도 원래대로 협력업체가 담당하는 공정으로 배치할 수는 없어서였다.
A 씨의 동료는 "정규직이 됐지만 십수 년씩 일해 온 일터에서 쫓겨나 강제 전환배치됐다"며 "더 분노스러운 것은 A 씨가 근무하던 공장에서는 전환배치된 노동자들을 2주, 4주마다 다른 작업반으로 이동하게 해 육체적ㆍ정신적으로 현장에 적응할 수 없도록 몰아붙였다"고 했다. 그는 회사의 강제 전환배치가 A 씨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근로자들은 전환배치에 반발해 노동위를 찾았다. 근로자 62명은 경기지노위에 부당인사발령 구제 신청을 제기했고 경기지노위는 지난 5월 22일 전환배치가 부당하다고 결정했다. 파견법에 따라 직접고용된 후 직무 배치할 때는 원직이나 동종ㆍ유사 직무에 배치하는 것이 파견법 취지에 맞는다는 것이다.
경기지노위의 새 법리 "하청 공정이어도 원직 복직이 원칙"
인사권은 사용자의 권한이다. 따라서 필요성이 인정되고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크지 않다면 전환배치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특히 근로자들이 주장하는 원직은 하청 공정이다. 기아의 직원이 된 근로자들을 하청 공정에 배치하는 것은 하청업체의 인사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해당 공정을 직영화하려면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경기지노위는 근로자 측 손을 들었다. 경기지노위는 "조립부 인사발령은 업무상 필요성도 인정하기 어렵고 생활상 불이익이 객관적으로 크지 않지만 업무상 필요성과 비교했을 때 근로자들이 감내할 수준이라고 볼 수 없다"며 "협의 절차도 근로자를 대리할 권한이 없는 자와 협의해 정당한 인사명령이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정에서 주목할 점은 경기지노위가 불법파견 후 인사발령에 대해 새로운 법리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인사발령이 정당한지 판단할 때는 업무상 필요성, 생활상 불이익,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고려해야 한다. 전직처분에 대한 업무상 필요성과 전직에 따른 근로자의 생활상 불이익을 비교하고 근로자가 속한 노동조합과 협의를 거치는 등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거쳤는지 살펴야 한다. 업무상 필요에 의한 전보여도 생활상 불이익이 과도하다면 부당 전보가 될 수 있다.
사용자 측은 근로자들을 전환배치할 업무상 필요성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조립부에 인원을 충원할 필요가 있었고 A 씨가 원래 수행하던 공정은 하청업체 담당 공정이어서 업무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전환배치 후 임금 불이익도 없고 협의 과정도 거쳤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경기지노위는 직접고용 후 인사배치는 일반적인 인사발령과 달라 다른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경기지노위는 "직접고용 후 인사명령은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계속적 근로관계를 전제로 하는 처분이 아니라 대법원 판결 이행을 계기로 근로관계가 최초로 형성되는 시작 단계에서의 처분"이라며 "계속적 근로관계를 토대로 삼고 있는 사안과 직접적이고 실질적으로 근로관계가 계속되지 않았던 이 사건은 성격이 달라 동일한 법리를 적용할 수 없고 사용자에게 부여되는 인사명령에 대한 상당한 재량권은 상당한 범위로 축소된다"고 했다.
경기지노위 판정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승소한 파견근로자는 원청과 새롭게 근로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새롭게 근로관계를 형성할 때는 파견법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 이때 당사자 간 합의를 통해 근로조건을 결정하거나 원직에 복직시키는 것만이 파견법 취지에 맞다고 볼 수 있다. 동종ㆍ유사 업무에 배치하는 것은 원직 복직을 이행하기 어려운 경우에 불가피하게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이종업무에 배치하는 것은 불법파견의 불법성을 온전히 제거했다고 보기 어려워 부당한 인사명령에 해당하는지 더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이종업무에 배치한 경우 사용자는 높은 수준의 업무상 필요성을 입증하고 생활상 불이익에 대해 상당 수준의 상응 조치, 신의칙상 강화된 절차를 이행해야 한다.
다만 사용사업주가 근로자와 합의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근로자가 합리적 이유 없이 합의를 거부하고 원직 복귀나 동종유사업무로 배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합리성이 인정될 수 있다.
근로자 측을 대리한 주민영 전국금속노동조합 법률원 공인노무사는 "파견노동자의 노동조건, 근로계약 기간 등을 보호하는 판례 법리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더 나아가 직무 부여와 관련해서도 회사가 인사권이라는 명목으로 마음대로 근로자들을 배치하는 데 제동을 걸 수 있는 판정"이라며 "회사의 인사권, 경영권, 재량권보다 파견노동자들의 권리 보호를 더 적극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하청업체 공정에 원직 배치?...노동위 "하청계약 해지도 고려해야"
경기지노위는 원직 복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기아의 주장도 정면 반박했다. 원직 공정을 하청업체에 도급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종업무로의 전환배치를 인정한다면 파견법의 취지에 어긋나고 불법파견을 근절할 수 없을 것이라는 취지다.
경기지노위는 "사용사업주는 불법파견 사건에서 일반적으로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혹은 확정된 이후라도 해당 하청관계가 합법적 도급임을 주장하면서 그러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이는 그동안 적법한 진성 도급이라 주장해 왔는데 이를 한 번에 없었던 것으로 돌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러한 사용사업주 주장의 정당성을 판단할 때는 하청관계가 존재하는지만을 검토할 것이 아니라 사용사업주가 하도급관계를 설정하고 관리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살펴봐야 한다"며 "그러지 않고 사용사업주의 주장을 그대로 수긍한다면 직접고용간주ㆍ의무가 인정된 사건에서 파견법적 효과는 사실상 무력화된다"고 설명했다.
또 "이는 불법파견을 하더라도 해당 파견근로자를 원직 이외의 직무에 배치하는 등 방법으로 직접 채용하기만 하면 될 뿐 현재의 하청관계로 위장된 관계를 그대로 유지해도 무방하다는 잘못됨 신호를 사용사업주에 주게 될 위험이 있고 불법파견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경기지노위는 원직 복직을 위해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경기지노위는 "사용자와 수급업체 간 관계는 영구불변의 관계가 아닌 계약에 의해 형성된 관계로 계약만료 1개월 전까지 통지하면 사용자가 원하는 시점에 언제든 해지할 수 있다"며 "사용자가 수급업체와 협의하면 공정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직영 전환이 가능해 원직 배치가 사실상ㆍ법률상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하청 공정을 직영으로 전환하는 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면 직영 전환 완료를 조건으로 원직 배치를 약속하는 방법도 있다고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지노위는 "조립부로의 인사발령은 비록 사용자가 조립부 결원 문제를 완화해 경영효율성을 추구하려는 목적에 충실한 것이라 하더라도 불법파견에 따른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업무를 수행할 필요성을 압도하지 못한다"며 "원직이나 동종유사업무로 배치가 사실상ㆍ법률상 불가능하거나 이에 준하는 장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종업무에 배치할 업무상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중노위로 가는 노사, 초심판정 유지될까
이번 판정에 대해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불법파견 소송에서 판결이 확정된 근로자들을 어떻게 배치할지에 대해 선례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나온 판정으로 지금까지 없었던 법리"라고 설명했다.
파견근로자의 인사명령이 쟁점이 된 선례는 있다. 2016년에 선고된 한국마사회 부당전직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 판결이다. 당시 대법원은 파견법에 따라 고용이 간주된 근로자에게 한 인사발령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인사발령으로 인해 근로조건이 부적절해졌고 근로관계 내용도 변경됐다는 이유다.
이번 판정은 한국마사회 사건보다 더 나아가 아예 새로운 법리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 법리가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대형로펌 변호사는 "이번 판정문은 근로자들을 원직에 배치하기 위해 협력업체와 계약을 해지하거나 협력업체 경영권에 간섭할 수 있다는 취지인데 현실적이지 않다"며 "실체가 있는 협력업체를 마치 원청의 계열사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노동위원회에서 판정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것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다.
'원직'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기준도 문제다. 경기지노위는 판결이 확정될 때 근무하던 공정이 원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개정 전 파견법이 적용되는 근로자의 경우 판결이 확정되면 수년 전부터 고용이 간주된다. 개정 후 파견법이 적용되는 근로자는 판결이 확정됐을 때부터 고용관계가 성립한다. 고용 간주 근로자와 고용 의무 근로자 간 차이가 있음에도 경기지노위는 두 가지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다만 경기지노위는 근로자들의 구제 신청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인사발령이 부당하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당장 원직 복직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복직과 임금지급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대신 새롭게 배치할 직무를 근로자와 협의해 결정하라고 판단했다.
경기지노위는 "사용자에게는 근로자들을 원직 또는 기존에 수행한 업무와 동종ㆍ유사 업무로 복직시켜야 할 의무가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직무로 배치할 것인지는 상호 협의를 통해 결정돼야 해 복직 신청은 기각한다"고 했다.
주민영 노무사는 "복직 구제 명령이 나오지 않은 건 아쉬운 부분"이라며 "회사와 협의가 잘되지 않아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했지만 결국 근로자들은 다시 회사와 협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노사는 모두 중노위에 재심을 청구했다. 기아 측은 인사명령이 부당하다는 결정에 대해, 근로자 측은 구제명령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대해 다시 판단을 받을 예정이다.
그러나 경기지노위는 근로자들을 원직에 복직시키라는 구제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다. 당장 원직 복직이 어려운 만큼 노사가 대화를 통해 배치할 공정을 결정하라는 취지다. 이에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다.
불법파견 승소 근로자, 음독한 사정은?..."전환배치에 불만 있었다"
28일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아 화성공장 주차장에서 근로자 A 씨가 음독 후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A씨는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A 씨 동료와 가족들은 A 씨가 불법파견 소송에서 승소한 후 원치 않는 업무로 배치되면서 육체적ㆍ정신적 부담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승소 판결을 받았다. 기아 하청노동자 271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이다.
승소 후 회사가 직접고용할 일만 남았지만 문제는 직무였다. A 씨는 협력업체에서 간접공정 업무를 담당하던 근로자였는데 승소 후 기아 화성공장의 조립부에 배치됐다. 대법원 판결으로 기아와 근로자들 간 직접고용관계가 형성됐음에도 원래대로 협력업체가 담당하는 공정으로 배치할 수는 없어서였다.
A 씨의 동료는 "정규직이 됐지만 십수 년씩 일해 온 일터에서 쫓겨나 강제 전환배치됐다"며 "더 분노스러운 것은 A 씨가 근무하던 공장에서는 전환배치된 노동자들을 2주, 4주마다 다른 작업반으로 이동하게 해 육체적ㆍ정신적으로 현장에 적응할 수 없도록 몰아붙였다"고 했다. 그는 회사의 강제 전환배치가 A 씨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근로자들은 전환배치에 반발해 노동위를 찾았다. 근로자 62명은 경기지노위에 부당인사발령 구제 신청을 제기했고 경기지노위는 지난 5월 22일 전환배치가 부당하다고 결정했다. 파견법에 따라 직접고용된 후 직무 배치할 때는 원직이나 동종ㆍ유사 직무에 배치하는 것이 파견법 취지에 맞는다는 것이다.
경기지노위의 새 법리 "하청 공정이어도 원직 복직이 원칙"
인사권은 사용자의 권한이다. 따라서 필요성이 인정되고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크지 않다면 전환배치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특히 근로자들이 주장하는 원직은 하청 공정이다. 기아의 직원이 된 근로자들을 하청 공정에 배치하는 것은 하청업체의 인사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해당 공정을 직영화하려면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경기지노위는 근로자 측 손을 들었다. 경기지노위는 "조립부 인사발령은 업무상 필요성도 인정하기 어렵고 생활상 불이익이 객관적으로 크지 않지만 업무상 필요성과 비교했을 때 근로자들이 감내할 수준이라고 볼 수 없다"며 "협의 절차도 근로자를 대리할 권한이 없는 자와 협의해 정당한 인사명령이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정에서 주목할 점은 경기지노위가 불법파견 후 인사발령에 대해 새로운 법리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인사발령이 정당한지 판단할 때는 업무상 필요성, 생활상 불이익,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고려해야 한다. 전직처분에 대한 업무상 필요성과 전직에 따른 근로자의 생활상 불이익을 비교하고 근로자가 속한 노동조합과 협의를 거치는 등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거쳤는지 살펴야 한다. 업무상 필요에 의한 전보여도 생활상 불이익이 과도하다면 부당 전보가 될 수 있다.
사용자 측은 근로자들을 전환배치할 업무상 필요성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조립부에 인원을 충원할 필요가 있었고 A 씨가 원래 수행하던 공정은 하청업체 담당 공정이어서 업무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전환배치 후 임금 불이익도 없고 협의 과정도 거쳤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경기지노위는 직접고용 후 인사배치는 일반적인 인사발령과 달라 다른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경기지노위는 "직접고용 후 인사명령은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계속적 근로관계를 전제로 하는 처분이 아니라 대법원 판결 이행을 계기로 근로관계가 최초로 형성되는 시작 단계에서의 처분"이라며 "계속적 근로관계를 토대로 삼고 있는 사안과 직접적이고 실질적으로 근로관계가 계속되지 않았던 이 사건은 성격이 달라 동일한 법리를 적용할 수 없고 사용자에게 부여되는 인사명령에 대한 상당한 재량권은 상당한 범위로 축소된다"고 했다.
경기지노위 판정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승소한 파견근로자는 원청과 새롭게 근로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새롭게 근로관계를 형성할 때는 파견법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 이때 당사자 간 합의를 통해 근로조건을 결정하거나 원직에 복직시키는 것만이 파견법 취지에 맞다고 볼 수 있다. 동종ㆍ유사 업무에 배치하는 것은 원직 복직을 이행하기 어려운 경우에 불가피하게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이종업무에 배치하는 것은 불법파견의 불법성을 온전히 제거했다고 보기 어려워 부당한 인사명령에 해당하는지 더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이종업무에 배치한 경우 사용자는 높은 수준의 업무상 필요성을 입증하고 생활상 불이익에 대해 상당 수준의 상응 조치, 신의칙상 강화된 절차를 이행해야 한다.
다만 사용사업주가 근로자와 합의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근로자가 합리적 이유 없이 합의를 거부하고 원직 복귀나 동종유사업무로 배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합리성이 인정될 수 있다.
근로자 측을 대리한 주민영 전국금속노동조합 법률원 공인노무사는 "파견노동자의 노동조건, 근로계약 기간 등을 보호하는 판례 법리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더 나아가 직무 부여와 관련해서도 회사가 인사권이라는 명목으로 마음대로 근로자들을 배치하는 데 제동을 걸 수 있는 판정"이라며 "회사의 인사권, 경영권, 재량권보다 파견노동자들의 권리 보호를 더 적극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하청업체 공정에 원직 배치?...노동위 "하청계약 해지도 고려해야"
경기지노위는 원직 복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기아의 주장도 정면 반박했다. 원직 공정을 하청업체에 도급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종업무로의 전환배치를 인정한다면 파견법의 취지에 어긋나고 불법파견을 근절할 수 없을 것이라는 취지다.
경기지노위는 "사용사업주는 불법파견 사건에서 일반적으로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혹은 확정된 이후라도 해당 하청관계가 합법적 도급임을 주장하면서 그러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이는 그동안 적법한 진성 도급이라 주장해 왔는데 이를 한 번에 없었던 것으로 돌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러한 사용사업주 주장의 정당성을 판단할 때는 하청관계가 존재하는지만을 검토할 것이 아니라 사용사업주가 하도급관계를 설정하고 관리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살펴봐야 한다"며 "그러지 않고 사용사업주의 주장을 그대로 수긍한다면 직접고용간주ㆍ의무가 인정된 사건에서 파견법적 효과는 사실상 무력화된다"고 설명했다.
또 "이는 불법파견을 하더라도 해당 파견근로자를 원직 이외의 직무에 배치하는 등 방법으로 직접 채용하기만 하면 될 뿐 현재의 하청관계로 위장된 관계를 그대로 유지해도 무방하다는 잘못됨 신호를 사용사업주에 주게 될 위험이 있고 불법파견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경기지노위는 원직 복직을 위해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경기지노위는 "사용자와 수급업체 간 관계는 영구불변의 관계가 아닌 계약에 의해 형성된 관계로 계약만료 1개월 전까지 통지하면 사용자가 원하는 시점에 언제든 해지할 수 있다"며 "사용자가 수급업체와 협의하면 공정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직영 전환이 가능해 원직 배치가 사실상ㆍ법률상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하청 공정을 직영으로 전환하는 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면 직영 전환 완료를 조건으로 원직 배치를 약속하는 방법도 있다고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지노위는 "조립부로의 인사발령은 비록 사용자가 조립부 결원 문제를 완화해 경영효율성을 추구하려는 목적에 충실한 것이라 하더라도 불법파견에 따른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업무를 수행할 필요성을 압도하지 못한다"며 "원직이나 동종유사업무로 배치가 사실상ㆍ법률상 불가능하거나 이에 준하는 장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종업무에 배치할 업무상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중노위로 가는 노사, 초심판정 유지될까
이번 판정에 대해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불법파견 소송에서 판결이 확정된 근로자들을 어떻게 배치할지에 대해 선례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나온 판정으로 지금까지 없었던 법리"라고 설명했다.
파견근로자의 인사명령이 쟁점이 된 선례는 있다. 2016년에 선고된 한국마사회 부당전직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 판결이다. 당시 대법원은 파견법에 따라 고용이 간주된 근로자에게 한 인사발령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인사발령으로 인해 근로조건이 부적절해졌고 근로관계 내용도 변경됐다는 이유다.
이번 판정은 한국마사회 사건보다 더 나아가 아예 새로운 법리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 법리가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대형로펌 변호사는 "이번 판정문은 근로자들을 원직에 배치하기 위해 협력업체와 계약을 해지하거나 협력업체 경영권에 간섭할 수 있다는 취지인데 현실적이지 않다"며 "실체가 있는 협력업체를 마치 원청의 계열사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노동위원회에서 판정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것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다.
'원직'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기준도 문제다. 경기지노위는 판결이 확정될 때 근무하던 공정이 원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개정 전 파견법이 적용되는 근로자의 경우 판결이 확정되면 수년 전부터 고용이 간주된다. 개정 후 파견법이 적용되는 근로자는 판결이 확정됐을 때부터 고용관계가 성립한다. 고용 간주 근로자와 고용 의무 근로자 간 차이가 있음에도 경기지노위는 두 가지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다만 경기지노위는 근로자들의 구제 신청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인사발령이 부당하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당장 원직 복직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복직과 임금지급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대신 새롭게 배치할 직무를 근로자와 협의해 결정하라고 판단했다.
경기지노위는 "사용자에게는 근로자들을 원직 또는 기존에 수행한 업무와 동종ㆍ유사 업무로 복직시켜야 할 의무가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직무로 배치할 것인지는 상호 협의를 통해 결정돼야 해 복직 신청은 기각한다"고 했다.
주민영 노무사는 "복직 구제 명령이 나오지 않은 건 아쉬운 부분"이라며 "회사와 협의가 잘되지 않아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했지만 결국 근로자들은 다시 회사와 협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노사는 모두 중노위에 재심을 청구했다. 기아 측은 인사명령이 부당하다는 결정에 대해, 근로자 측은 구제명령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대해 다시 판단을 받을 예정이다.
출처: 2023년 07월 28일, 월간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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