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노조 승격 차별한 KEC에 법원 “부당노동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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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기간 교섭대표노조 조합원 168명이 승격할 동안 파업을 벌인 소수노조에선 6명의 조합원이 승격했다. 법원은 회사가 파업을 한 노조 조합원에게 차별적 의사를 갖고 승격인사에서 불이익을 줬다고 봤다. 경북 구미의 반도체 부품 제조업체 KEC에서 벌어진 일이다.
11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13부(재판장 박정대)는 지난달 22일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이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금속노조 KEC지회 조합원에 대한 회사의 승격 차별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승격 차별이 단순히 일회성으로 우연히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고 지적하며 특정 노조에 대한 회사의 반조합적 의사가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또한 고과, 인사평가 등에서 집단 간 격차가 발생할 경우 평가가 정당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 제출 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금속노조 "특정노조에 불이익"…중노위 각하ㆍ지노위 기각
KEC는 매년 성적고과 2회(상ㆍ하반기 각각 1회씩), 능력고과 1회를 실시하고 결과에 따라 정기승격 및 정기승호를 했다. 근로자들은 정기 인사 결과에 따른 임금을 받았다.
소송의 주인공은 지난 2018년 이루어진 정기 인사다. 회사는 근로자들의 2016년 및 2017년 상ㆍ하반기 성적고과 등을 토대로 2018년 1월 1일자 정기승격 및 정기승호를 시행했다.
금속노조는 2018년 정기 인사 결과에 문제를 제기했다. 금속노조는 회사가 인사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금속노조 조합원에게 교섭대표노동조합 조합원보다 낮은 점수를 줘 승격에서 차별했다고 주장했다.
KEC는 'KEC노동조합'과 '금속노조 KEC지회', 'KEC기업노동조합'이 존재하는 복수노조 사업장이다. 조합원 수는 2018년 기준 각각 264명, 108명, 14명으로, KEC노동조합이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8년 정기 인사에서 승격된 호봉제 근로자 38명 중 KEC지회 소속 조합원은 2명뿐이었다. 교섭대표노조 소속 조합원은 25명, 노조 조합원이 아닌 근로자는 11명이 승격했다.
금속노조는 회사가 KEC지회 조합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며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불이익 취급 및 지배ㆍ개입의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다. 지노위는 금속노조의 구제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중노위 역시 기각하는 재심 판정을 했다.
법원 "동일한 집단에서 현격한 차이 나"…노조에 손
그러나 법원은 다른 판단을 내렸다. 법원은 2018년 정기 인사가 지회에 대한 지배ㆍ개입으로 보긴 어렵지만 불이익을 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서로 동일한 업무를 담당하는 균등한 근로자 집단 안에서 두 집단으로 나뉘어 통계적으로 현격한 차가 발생했다"며 "이러한 격차는 회사가 KEC지회 조합원들에게 부정적ㆍ차별적 의사를 갖고 교섭대표노조에 비해 불이익한 취급을 한 것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구체적인 수치에 주목했다. KEC지회 조합원의 승격률은 3.5%인데 반해, 교섭대표노조 조합원의 승격률은 10.3%를 기록했다. 두 집단 사이의 승격률은 3배가량 차이 났다.
재판부는 이러한 격차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평가 항목을 구체적으로 살폈다. 직접생산부서 근로자들의 경우 ▲경영방침 ▲담당과업 ▲규율성 ▲협조성 ▲적극성 ▲책임성 등 총 여섯 가지 항목으로 성적고과를 평가받았다.
재판부는 실제 생산량에 따라 자동적으로 점수가 산정되는 경영방침과 담당과업 두 항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관적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는 규율성, 협조성, 적극성, 책임성 네 항목에서 KEC지회 조합원들이 낮은 고과점수를 받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규율성과 협조성에서의 평균점수 차이가 경영방침과 비교했을 때 크게 났다. 법원은 "같은 항목에 대해 평가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교섭대표노조 조합원보다 종합점수가 높아도 승격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KEC지회 조합원 A 씨는 종합점수 3.3점을 받아 3.2점을 받은 교섭대표노조 조합원 B 씨보다 점수가 높았지만, B 씨는 승격하고 A 씨는 승격하지 못했다. 이때 승격 여부는 관리자의 추천 유무로 갈렸다. 재판부는 "추천 유무로 승격이 결정될 정도로 추천은 정기 인사에서 큰 영향을 미쳤는데, 추천은 전적으로 관리자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인사위원회에 추천서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2018년을 포함해 7년간 이루어진 정기 인사 결과도 분석했다. 그 결과, 2012년부터 2018년까지 교섭대표노조 조합원 168명이 승격할 동안 KEC지회에선 6명의 조합원이 승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는 "객관적인 승격자 선정 기준을 사용했다"며 "실제로 객관적으로 실적에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성적고과에서도 이 같은 차이가 발생한 것뿐이며 부당한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러한 차이가 단순한 근무 성적 차이라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기 인사로 인한 노사 분쟁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회사와 금속노조는 2012년, 2014년, 2015년, 2016년 인사에서도 동일한 분쟁을 겪었다. 법원은 "성과 차이로 설명하기 어려운 승격 차이는 단순히 일회적이나 우연히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KEC지회가 파업을 한 2010년 이래로 반복돼 나타나 고착화된 현상"이라며 "회사에겐 KEC지회 조합원들의 장악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불이익을 줄 충분한 동기가 존재했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2018년 정기 인사 결과에 회사의 차별적이고 반조합적인 의사가 있다고 판단했다.
사용자 책임 강조한 법원 "자료 제출 책임 회사에"
노조 간 차별로 사용자로부터 불이익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 책임은 불이익을 받은 노조 또는 근로자에게 있다.
그러나 인사상 차별의 경우 사용자가 특정 노조를 차별하기 위해 인사권을 사용한 것인지를 근로자 측에서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원칙적으로 인사권은 사용자에게 있고, 법원도 사용자의 인사권이 근로기준법 위반이나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유효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근로자 측에서 인사상 차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를 증거로 수집해야 하지만 인사평가 관련 자료는 노조나 근로자 개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KEC 사건에서도 결정적인 증거가 된 평가 자료는 법원의 문서 제출 명령 등을 통해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판결 재판부는 사용자의 책임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고과 내지 인사평가와 같이 사용자 일방만이 정보를 갖고 있는 정보의 비대칭 상황에서 두 근로자 집단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격차가 있다는 게 증명된 이상 인사평가가 정당하다는 구체적 자료를 제출할 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다"고 명시했다.
법원은 회사가 개인정보보호 등을 이유로 정기 인사 관련 통계자료 제출에 소극적이었던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법원은 "회사는 지회 소속 근로자들을 제외한 근로자들을 비실명화해서라도 판단의 기초가 되는 통계자료를 충분히 제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회사는 지회 소속 조합원들에 대한 장악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불이익을 줄 충분한 동기가 존재했다"고 판단했다.
이와 비슷한 판단은 지난해 3월 선고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건에서도 있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은 금속노조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법원은 회사가 금속노조 삼성테크윈지회를 소수노조로 만들기 위해 지회 간부들을 승진 차별했다며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다.
당시 판결문에선 "노조에 대한 사용자의 차별과 사용자의 차별 의사가 입증됐다고 볼 수 있는 이 사건에선 인사고과 근거자료를 보유한 평가 당사자인 사용자가 차별에 대한 합리적 이유를 소명해야 한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사용자 입장에선 인사평가의 공정성을 최대화하고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관련 분쟁이 생겼을 경우엔 법원에 이를 적극적으로 소명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노조 측을 대리한 정이량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승격은 개인에게 개별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승격 차별을 당한 노조에서도 자신들의 조합원이 승격 차별을 당하고 있는지 파악 못 할 수 있다"며 "이 사건의 경우 2015년부터 3년간 지회 소속 조합원이 한 명도 승격하지 못하는 등 눈에 띄는 차별이 있어 실태조사에 들어갔고 그 결과가 소송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2012년부터 7년간 이루어진 정기 인사 결과에 대한 통계를 내 회사의 반조합적 의사를 판단했다"며 "왜 이러한 승격 격차가 났는지 사용자에게 구체적 자료를 제출할 책임을 물은 것 역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덧붙였다.
출처: 2023년 07월 13일, 월간노동법률, 이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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