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 지지하고 음식 제공한 노조 간부들…대법 “업무방해방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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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농성을 벌인 조합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농성장 바로 아래에서 지지 집회를 개최한 이들을 업무방해방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들의 조력행위가 업무방해를 용이하게 했다고 본 원심을 뒤집은 판결이다.
18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대법원 제1부(재판장 박정화)는 업무방해방조로 재판에 넘겨진 철도노조 간부 A 씨 등 7명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업무방해와 조력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며 방조범 성립을 엄격하게 판단했다. 법원은 "방조범이 성립하려면 정범의 범죄 실현에 현실적인 기여를 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며 "범죄 실현과 밀접한 관련 없는 행위를 도와준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엔 방조범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음식 제공 등으로 업무방해방조" 재판 넘겨져
앞서 지난 2014년 3월 한국철도공사(공사)는 700여 명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순환전보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공사는 순환전보의 목적을 '직원들의 다양한 업무 기회 확대', '지역ㆍ분야 간 인력 불균형 해소'라고 설명했다.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은 운전 경로 및 차종의 숙지가 중요한 운전분야와 차량분야에서 상시적인 순환전보를 실시할 경우 사고 위험이 있다며 즉각 반발했다. 특히, 당시 철도노조가 철도 민영화 및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을 반대하는 파업을 한 것과 관련해 공사가 보복성 전보를 할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했다.
공사는 철도노조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순환전보를 예정대로 단행했다.
본격적인 사건은 순환전보에 반발한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고공농성에 돌입하면서 시작됐다. 2014년 4월 9일 새벽 6시 20분경 조합원 이 모 씨와 유 모 씨는 순환전보 철회를 요구하며 서울차량사업소에 설치된 높이 15m가량의 조명탄에 올라 2인용 텐트를 설치했다. 공사는 고공농성자들의 안전을 위해 4월 9일부터 5월 2일까지 약 한 달간 조명탑 전원을 차단해야 했다. 조명탑 전원이 차단되면서 공사는 야간 입환 업무를 하지 못했다. 결국 두 사람은 업무방해로 유죄가 확정됐다.
이 사건과 관련해 철도노조 서울본부 간부 A 씨 등 7명은 이 모 씨와 유 모 씨 두 사람의 고공농성을 지지하기 위해 조명탑 아래 천막을 설치하고 지지 집회를 개최했다. 또, 고공농성을 하는 동안 음식물과 책 등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기도 했다. A 씨 등은 고공농성자들의 업무방해 범행을 용이하게 만들어 이를 방조했다는 업무방해방조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ㆍ2심 모두 업무방해방조 인정
1심은 A 씨 등에게 업무방해방조죄가 있다고 판단해 벌금 50~200만 원을 선고했다.
법원은 고공농성자 두 사람이 조명탑에 올라간 이유와 A 씨 등이 집회를 개최한 이유가 순환전보의 부당성을 알리는 것으로 똑같다는 점, A 씨 등이 천막을 설치하고 집회를 개최한 장소가 조명탑 아래라는 점을 지적했다.
1심은 "A 씨 등이 고공농성자 두 사람과 가까운 곳에서 동일한 주장을 하면서 매일 집회를 연 것은 두 사람의 농성 활동을 지지해 그들의 결의를 강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는 두 사람의 업무방해 행위를 용이하게 하거나 그 결의를 강화해 이를 방조한 것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A 씨 등은 자신들의 행위가 공사의 순환전보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시하기 위한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이었을 뿐으로 두 사람의 고공농성을 지지하고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 음식물과 생필품을 올려보낸 것에 대해서도 A 씨 등은 안전과 건강을 유지하도록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 역시 두 사람의 고공농성을 용이하게 하고 결의를 강화한 측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2심도 업무방해방조죄를 인정했다. 다만, 벌금은 30~100만 원으로 1심보다 줄어들었다.
2심은 방조행위를 폭넓게 바라보는 법리를 제시했다. 법원은 "방조행위는 정범이 범행한다는 것을 알면서 그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ㆍ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르키는 것으로, 방조는 정범의 실행행위 중에 이를 방조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실행 착수 전에 장래의 실행행위를 예상하고 이를 용이하게 하는 행위를 해 방조한 경우에도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이때 방조범의 고의성은 정범이 실현하는 범죄의 미필적 인식 또는 예견만으로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해당 법리를 이번 사건에 대입하면 두 사람의 고공농성이 공사의 야간 입환 업무를 방해한다는 점을 A 씨 등이 인식했다면 업무방해방조의 고의성이 인정된다는 것이 법원의 설명이다. 2심은 이를 근거로 "A 씨 등은 고공농성이 공사의 야간 입환 업무를 방해한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는 상황에서 A 씨 등의 행위는 고공농성을 더욱 용이하게 했다"며 "이를 인식한 상황에서 두 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거나 A 씨 등이 업무방해방조의 고의가 없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지난 2014년 3월 24일 서울 중구 서울서부역 공항철도 광장에서 열린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노조탄압 분쇄 조합원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강제순환전보 중단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원심 뒤집은 대법 "인과관계 찾기 어렵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방조범은 정범에 종속해 성립하는 범죄이므로 방조행위와 정범의 범죄 실현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필요하다"는 법리를 제시했다. 대법은 A 씨 등이 벌인 지지 집회 및 음식물 제공과 조명탑 점거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단했다. 애초 철도노조는 공사의 순환전보 방침에 반대하는 투쟁을 준비하고 있었고, 정범인 고공농성자 두 사람은 철도노조의 계획과 무관하게 조명탑을 점거했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또한, 대법원은 업무방해방조죄를 판단할 때 노동3권,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이 위축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쟁의행위가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경우 제3자가 그러한 사정을 알면서 쟁의행위의 실행을 용이하게 한 경우에는 업무방해방조죄가 성립할 수 있다"면서도 "근로자나 노동조합이 노동3권을 행사할 때 제3자의 조력을 폭넓게 받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고, 근로자나 노동조합에 조력하는 제3자도 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있으므로 위법한 쟁의행위에 대한 조력행위가 업무방해방조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때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 위축되지 않도록 업무방해방조죄의 성립 범위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A 씨 등이 지지 집회에서 한 고공농성 지지 발언 등은 표현의 자유, 일반적 행동의 자유나 단결권 보호 영역에 해당하고, 이 같은 지지 발언이 조명탑 점거에 현실적인 기여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음식물 등 생필품을 올려보낸 행위도 '생존과 안전'을 위한 행위로 보고 방조범 성립을 인정할 정도의 인과관계가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음식 등을 올려보낸 행위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점거에 일부 도움이 된 측면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야간 입환 업무를 방해한다는 정범들의 범죄에 대한 지원행위 또는 정범들의 범죄 실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인과관계'에 '기본권'까지 살핀 법원…판단 더 엄격해지나
이번 판결로 대법원이 방조범 성립에 대한 엄격한 판단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지지 집회라는 형태로 나타난 이른바 '정신적 방조'가 정범의 범죄 실현과 인과관계가 없다고 봤다. 업무방해를 지지했다는 것만으로 방조범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업무방해를 지지했다는 것만으로 방조범이 성립된다고 보면 방조범의 가벌성 한계를 책정하기 어렵다는 비판은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박지현 인제대 법학과 교수는 "특별한 사정이나 상황 없이 단순히 범행에 대해 심정적 지지를 표현했다는 것만으로 방조범이 성립한다고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이번 사건에서처럼 연대 집회에서 행한 지지 발언을 처벌한다면 가령 점거 농성을 지지한다는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는 행위 등에도 방조범을 구성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음식물 등 생필품을 제공한 행위의 경우 정신적 방조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역시도 정범들의 범죄 실현과 밀접한 관련이 없다고 봤다.
A 씨 등을 대리한 조연민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정범들의 생명 유지와 안전을 위해 음식 등을 올려보낸 것인데, 이를 방조범으로 처벌할 경우 비인간적이고 인권 침해적인 상황을 감내하라는 요구를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하게 되는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누군가의 생명 유지를 위해 형사처벌을 무릅써야 하는 상황이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이번 대법 판결이 조력하는 제3자의 기본권을 강조하면서 업무방해방조죄의 성립을 신중하게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 변호사는 "대법원은 순환전보에 반대하면서 자신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는 정범들을 지지하고 도와준 A 씨 등의 행위를 기본권 행사라는 관점으로 들여다봤다"며 "이를 업무방해방조로 처벌하면 조력하는 사람들의 기본권이 무력화된다고 본 것이며,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진 않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 단결하고 연대하는 노동조합의 특징인 집단성을 노동3권,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으로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이 지난 2021년 내린 판결과 비교해 업무방해방조에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0년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지회)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생산라인을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한 사건에서 당시 금속노조 간부였던 최병승 씨는 지회의 농성에 참가해 지지 발언을 하는 등 조합원들을 독려했다. 이후 최 씨는 업무방해 공동정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21년 9월 16일 대법원은 산별노조 간부인 최 씨가 점거농성에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 업무방해방조죄에 해당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선고했다. 다만, 최 씨가 농성 현장에서 조합원들을 독려한 행위에 대해선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업무방해방조를 일부 인정했다.
최 씨 사건에서 대법원이 제시한 법리는 이번 A 씨 등의 사건에서도 똑같이 제시됐다. "방조범은 정범에 종속해 성립하는 범죄이므로 방조행위와 정범의 범죄 실현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필요하다"는 대목과 "위법한 쟁의행위에 대한 조력행위가 업무방해방조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때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 위축되지 않도록 업무방해방조죄의 성립 범위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대목이다.
조 변호사는 "최병승 씨 판결 결과와 비교하면 대법원이 업무방해방조에 대해 더 엄격하고 한발 더 나아간 판결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출처: 2023년 07월 18일, 월간노동법률, 이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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