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도 “별정우체국 집배원 사용자는 정부”…파견소송 영향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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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한 별정우체국 집배원의 사용자가 정부라는 2심 판결이 나왔다. 2심도 1심에 이어 정부가 별정우체국 집배원의 사용사업주로서 보호의무와 안전배려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는 정부가 별정우체국 직원들의 사용자가 아니라고 본 최근 판결과는 다른 결과다. 앞서 법원은 별정우체국 직원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파견 관계를 부정했다. 두 사건의 사실관계는 동일하지만 법원이 근로관계에서 사용자와 보호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의 범위를 다르게 보면서 결과도 갈렸다. 다만 이번 판결 결과는 파견 소송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5월 25일 노동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3-1민사부(재판장 석준협)는 별정우체국 집배원 A 씨의 유족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1심에 이어 2심도 같은 판단을 내렸지만, 손해배상액은 2억4000만여 원에서 1억9000만여 원으로 줄었다.
재판부는 지난 12일 "정부는 사용자로서 노무제공 과정에서 A 씨가 생명,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필요한 조치를 해야 했지만 이를 소홀히 해 A 씨가 급성 심장사에 이르게 했다"며 "정부는 보호의무 위반으로 인해 A 씨와 그 유가족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유족 "진짜 사용자는 정부…정부 지시로 일했다"
A 씨는 우정사업본부 산하 아산우체국 소속 별정우체국에서 1996년부터 집배원으로 일하다 2017년 심혈관 질환인 급성 심장사로 사망했다. 근로복지공단은 A 씨의 심혈관 질환을 업무 가중 때문으로 보고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A 씨는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62시간 48분 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족들은 A 씨가 만성적 업무상 과로, 높은 작업 강도에 처해있음에도 실질적인 사용자인 정부가 근로자 보호를 위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들의 이 같은 주장은 별정우체국의 탄생 및 운영 방식과 연관이 깊다. 별정우체국은 민간이 운영하는 우체국이다. 1960년 당시 전국 읍 단위까지 우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재원이 충분하지 않자 정부는 민간 자본으로도 우체국을 운영할 수 있도록 별정우체국 제도를 시행했다. 별정우체국 운영에 관한 모든 사항은 별정우체국법이 규정하고 있고 별정우체국 직원의 임금이나 업무운영비는 우정사업본부가 지원한다.
별정우체국 직원들은 우정사업본부 지시에 따라 우정사업본부가 직접 운영하는 총괄우체국으로 파견 가기도 했는데, A 씨 역시 별정우체국에서 아산우체국으로 발령받아 일했다. 2004년 충청지방 우체국 5개가 아산우체국으로 통합되면서 A 씨를 포함한 별정우체국 직원들은 아산우체국으로 파견됐다.
아산우체국에서 우정직 집배원과 별정우체국 집배원들은 구분 없이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다. 이들은 아산우체국 물류과장으로부터 구체적인 업무지시 등을 받았다. A 씨가 문제를 일으키면 경고를 하는 사람은 별정우체국장이 아닌 아산우체국장이었다.
2심도 "실질적 사용자는 정부, 파견법상 보호의무 져야"
법원은 1심 판결에 이어 2심 판결에서도 정부의 책임을 인정해 유족 손을 들어줬다. A 씨의 실질적인 사용자는 정부이고 정부는 사용자로서 A 씨의 보호할 의무를 부담한다는 취지다.
법원은 "정부는 자신의 사업장인 아산우체국에 A 씨를 파견받아 지휘ㆍ명령하며 13년간 정부를 위해 일하도록 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별정우체국직원 인사규칙에 따르면 지방우정청장은 별정우체국 집배원의 채용, 승진, 전보 등의 인사권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며 "별정우체국은 별도의 집배 업무 관련 시설 없이 주로 우편 접수 및 금융 창구 역할만 하고 있으며 총괄우체국과 지방우정청장의 관리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법원은 별정우체국과 정부 사이에 근로자파견계약을 맺지 않아 파견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A 씨가 13년간 정부를 위해 일했기 때문에 파견근로자를 위한 보호의무가 A 씨에게도 적용돼야 한다고 봤다.
법원은 "정부는 A 씨가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명ㆍ신체ㆍ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필요한 조치를 해야 했음에도 열악한 환경에서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해 A 씨가 급성 심장사에 이르게 했다"며 "정부는 업무수행으로 인해 A 씨에게 신체상 재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것으로 보여 보호의무 위반으로 인한 A 씨와 유족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다만, 법원은 A 씨가 자신의 건강을 돌봤어야 할 책임을 감안해 정부의 책임을 50%로 제한했으며, 손해배상액은 2억4000만여 원에서 1억9000만여 원으로 줄었다.
유족 측을 대리한 정병민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1심과 동일하게 대한민국이 A 씨의 실질적인 사용자라는 것을 전제로 과로사에 대한 정부의 보호의무와 안전배려의무 위반을 분명히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 판단 엇갈린 까닭은…"파견 사건에도 영향 있을 것"
별정우체국 직원의 사용자에 대한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법원은 1심과 2심 모두 정부가 별정우체국 직원의 사용자라고 인정했다. 정부가 A 씨의 실질적인 사용자이기 때문에 사용자로서 보호 의무와 안전배려의무를 진다고 봤다.
그러나 지난 2월 별정우체국 직원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불법파견 소송에서는 다른 판단이 나왔다. 법원은 정부와 별정우체국 직원 간 파견근로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파견 소송에서 법원은 별정우체국 직원의 사용자가 별정우체국장이고 우정사업본부가 근로자들에게 한 지휘ㆍ명령은 별정우체국법에 따른 것이어서 파견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우정사업본부 지시에 따라 근무지를 옮긴 것은 파견이 아닌 전출이라고 선을 그었다.
파견 소송 판결은 이번 판결 선고를 앞둔 상황에서 나왔다. 파견 소송 결과가 이번 소송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정부 측에서는 파견 소송 결과를 근거로 정부가 사용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파견 소송 결과가 2심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두 소송은 정부의 사용자성이 쟁점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세부적인 법리는 달라서다. 파견 소송은 정부와 사용자 간 파견 관계가 성립하는지 따졌고 이번 소송은 정부가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하는지를 판단한 것이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재판부는 파견 소송 결과와는 관계없이 정부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별정우체국장과 대한민국 간 근로자 파견 계약 관계가 존재하지 않아 파견법을 직접 적용할 수 없다고 해도 A 씨가 별정우체국 직원 인사규칙과 아산우체국장의 파견 지시에 따라 대한민국을 위해 근무한 이상 사용사업주의 파견근로자를 위한 의무 법리는 적용돼야 한다"며 "대한민국과 A 씨 사이에 직접적인 근로계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 해도 다르게 볼 이유는 없다"고 설명했다.
정병민 변호사는 "보호의무 내지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의 범위는 근로관계를 전제한 개념보다 넓다는 취지로 해석된다"며 "그간 대법원 판례 등에 비추어 보면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사건 결과가 파견 소송에서 근로자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적용 법리가 다르더라도 정부가 별정우체국 집배원의 사용자로서 구체적인 인사ㆍ노무 지휘를 했고 근로조건에 대해 결정했다는 사실은 동일해서다.
다만 파견 판단 대상이 다른 만큼 그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파견 소송은 집배원과 사무직원을 포함한 전체 별정우체국 직원들에 관한 소송인 반면 이번 소송은 별정우체국 집배원만을 대상으로 한 소송이다.
정병민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서 유족 측이 승소한 것이 파견 소송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두 사건의 법리는 다르더라도 정부가 사용자로서 구체적인 인사노무지휘를 하고 근로조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인정된 셈"이라고 말했다.
출처: 2023년 05월 25일, 월간노동법률, 이지예ㆍ이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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