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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고속도로 수납원 불법파견 첫 인정...'동종근로자 부재'에 처우는 불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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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61.♡.185.172)
댓글 0건 조회 48회 작성일 23-04-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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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신대구부산고속도로 통행료 수납원의 불법파견을 최초로 인정했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주식회사가 용역업체에 업무 매뉴얼을 하달하는 방식으로 지휘ㆍ명령이 이루어졌다는 판단이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측은 회사가 민간투자법에 따라 설립돼 한시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민간투자법이 있더라도 근로자 파견 관계에 대해서는 파견법이 적용된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근로자 처우에 관한 쟁점은 불씨로 남았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가 통행료 수납 업무 전체를 외주화하면서 하청근로자와 동종ㆍ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원청 소속 근로자(동종ㆍ유사 근로자)가 없기 때문이다. 근로자 측은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정규직 근로자 중 가장 낮은 직급의 근로자와 동일한 수준으로 처우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근로자 측은 이 부분에 대해 상고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교섭을 통한 근로조건 개선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근로자 측이 임금 소송을 별도로 제기할 가능성도 남게 됐다.

18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제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에서 요금 수납 업무를 하는 용역업체 근로자 135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고용의사표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통행료 수납 업무는 전부 도급...지휘ㆍ명령은 매뉴얼로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주식회사는 대구-대동 간 고속도로 민간투자시설사업을 위해 현대산업개발과 금호산업, 대우, 한진중공업, 대림산업 등 9개 기업이 출자해 설립한 법인이다.
 
정부는 2000년 신대구부산고속도로와 협약을 맺었다. 고속도로 시설 소유권과 관리운영권이 국가에 귀속되는 대신 회사는 2036년까지 고속도로와 부속시설을 관리ㆍ운영하고 통행료를 징수한다는 내용이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는 통행료 수납업무, 교통안전업무, 일상유지관리업무, 터널유지관리업무, 장비관리업무 등을 모두 외주 업체에 포괄적으로 위탁했다. 민간투자법에 따르면 회사는 주무관청의 승인을 받아 시설 유지ㆍ보수와 관리를 제삼자에 위탁할 수 있고 주무관청은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승인을 거절할 수 없다.
 
소송을 제기한 건 통행료 수납 업무를 위탁한 용역업체 근로자들이다. 이들은 신대구부산고속도로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업무 지시를 하는 등 용역업체 근로자를 파견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고속도로 개통 후 통행료 수납 업무를 맡은 용역업체는 총 3개다. 업체가 변경될 때마다 용역업체 근로자들의 고용도 승계됐다. 근로자들은 통행권 발행과 회수, 통행료 수납, 하이패스, 제한차량, 미납차량 관련 업무 등을 수행했다. 이들은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로고가 들어간 명찰과 조끼 등을 착용했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는 업무 매뉴얼을 작성해 외주업체에 배포했고, 근로자들은 이 매뉴얼과 규정, 업무지침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다. 매뉴얼에는 영업소 업무 현황과 특징부터 요금수납시스템(TCS), 하이패스시스템, 통합료수납시스템 등의 사용 방법이 상세히 규정돼 있었다. 또 근로자들은 매일 근무확인서와 업무 처리 명세서, 업무일지 등 각종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고 이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소속 직원에게 보고됐다.
 
고용노동부도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고용부는 2019년 신대구부산고속도로에 용역업체 근로자들을 직접고용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회사가 이를 거부하면서 근로자들은 법원 판결을 기다리게 됐다.
 
법원은 근로자 측 손을 들었다. 1심은 "전국의 고속도로는 하나의 망으로 연결돼 있어 신대구부산고속도로는 9개 지역에 산재해 있는 영업소를 다른 고속도로의 영업소들과 통일적으로 운영ㆍ관리할 필요성이 있다"며 "외주업체가 수행한 통행료 수납업무 등은 신대구부산고속도로의 주된 업무 중 하나로 통행량 변동, 사고 발생 등 유동적 상황 변화에 대처해 일사분란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영업소 근무자와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직원은 상호 유기적인 보고와 지시, 협조를 통해 업무를 수행할 필요가 있었고 본질적으로 원청의 지휘ㆍ명령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통행료 수납 업무를 수행하는데 직접적인 지휘나 작업지시는 필요하지 않아 지침만으로도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지시를 받은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다.
 
원하청 근로자가 혼재 근무하지 않았다는 것은 법원의 결론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는 통행료 수납 업무 전체를 외주화했다. 원청에는 하청 근로자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이 없었고 원청과 통행료 수납 업무는 분리돼 있었다. 그러나 법원은 하청 근로자들이 원청 로고가 있는 복장과 명찰을 착용한 점, 원하청 근로자들이 함께 교육을 받고 홍보업무를 수행한 점 등을 고려해 파견을 인정했다.
 
대법원도 원심에 문제가 없다면서 이 판단을 확정했다.
 
대법 "민간투자법 보다 파견법이 우선"...한국도로공사와 차이는?
 
이번 사건은 신대구부산고속도로가 통행료 수납 업무를 포괄적ㆍ전체적으로 도급한 사례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고속도로 요금수납원의 불법파견이 처음 문제된 곳은 한국도로공사다. 2019년 대법원은 한국도로공사가 용역업체의 요금수납원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놨다.

 
이번 사건은 한국도로공사 사건과 유사하면서도 차이가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요금 수납 업무를 직영으로 운영하다가 순차적으로 외주화했다. 원청에도 하청 근로자와 동일하게 요금 수납 업무를 하는 원청 근로자가 있었고 원하청 근로자가 섞여 작업하기도 했다.
 
반면 신대구부산고속도로는 처음부터 통행료 수납 업무 전체를 도급했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소속 근로자 중 용역업체 근로자와 유사한 업무를 하는 직원은 없었다. 혼재 근무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도로공사 사건보다 상대적으로 파견 징표가 약했다.
 
법원이 직종 구분 없이 파견을 모두 인정한 점도 눈에 띈다.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 중에는 요금수납원뿐 아니라 소장, 파트장, 사무직 관리자도 포함돼 있었다.
 
법원은 "소장과 사무직원이 수행하는 업무도 영업소 업무에 당연히 포함되고 영업소 운영을 위해서는 소장과 사무직원이 필요했다"며 "신대구부산고속도로가 근로조건을 결정했거나 업무상 지시를 하는 등 근로자 파견관계를 인정하기 위한 징표들은 대부분 공통적으로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가 특수목적 법인이라는 점도 주목할 점 중 하나다. 회사 측에서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가 고속도로 건설과 운영을 위해 한시적으로 설립된 법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민간투자법에 따른 사업시행자이기 때문에 근로자 파견 판단 법리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민간투자법이 다른 관계법률보다 우선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근로자 파견관계 성립 여부는 민간투자법에 규정되지 않은 사항이기 때문에 파견법에 따른 판단기준으로 결정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동종근로자 쟁점'은 불씨로...임금 소송 가능성 남긴 근로자
 
소송을 주도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민주일반연맹 일반노동조합 신대구부산톨게이트지회는 선고 직후 경상남도 밀양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본사 앞에서 법원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지회는 "2018년부터 불법파견 문제로 계속해서 싸우다가 판결을 받아보니 감회가 새롭다"며 "원청은 불법파견 피해자에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근로조건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직접 고용 후 근로자들의 처우를 어느 수준으로 맞춰야 하는지가 과제로 남았다.
 
파견법은 불법파견이 인정될 경우 근로자의 처우를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정하고 있다. 파견근로자와 동종ㆍ유사 근로자가 있으면 그 근로조건을 적용한다. 동종ㆍ유사근로자가 없다면 기존 근로조건보다 저하시킬 수 없다.
 
이 사건은 동종ㆍ유사근로자가 부재하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 동종ㆍ유사근로자가 없다면 원청에 직접고용돼도 뚜렷한 처우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근로자 측은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정규직 직원 중 최하위 직급인 5급 직원을 동종ㆍ유사 근로자로 보고 이들과 같은 근로조건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은 "용역업체 근로자는 나이, 중졸 이상 학력 외 다른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지 않고 면접심사도 이뤄지지 않았지만 5급 직원은 고졸 학력을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고 채용을 위해서 시험과 전형을 거쳐야 한다"며 "일부 부서 직원의 경우 필수적ㆍ전문적 지식과 기술이 요구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러나 근로자 측은 이 부분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을 빨리 이끌어내기 위한 선택이었다. 대법원이 이 쟁점에 관해 구체적으로 판단하는 경우 선고가 늦어질 수 있다. 근로자 측에 불리한 결론이 나온다면 근로조건 개선 요구에 힘이 빠지게 된다.
 
김두현 전국금속노동조합 법률원 변호사는 "파견근로자가 사용사업주의 근로자가 된다면 회사의 취업규칙 중 하나라도 적용될 수 있어야 하는데 동종ㆍ유사 근로자가 없다는 이유로 정규직 근로자와 동일한 근로조건이 적용되지 않는 것은 파견법의 맹점"이라며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위자료 청구라도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원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회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와 교섭을 통해 근로조건 향상을 요구할 계획이다.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지 않고 여지를 남겨둔 이유다. 근로조건에 개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별도 임금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출처: 2023년 04월 18일, 월간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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