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공정위 조사 방해한 화물연대 ‘무죄’…“안전운임제 요구 파업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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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에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파업을 조사할 권한이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화물운송기사의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면서 안전운임제 유지ㆍ확대를 위한 파업은 정당한 파업이라고 판단했다.
11일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제15단독 박찬범 판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화물연대를 상대로 낸 공정거래법 위반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법원, 화물운송기사 근로자성 '인정'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와 적용 대상 확대를 위해 2021년부터 2022년 네 차례 파업을 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운송기사의 과로와 저임금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화물운송기사, 화물차주, 운수사업자, 공익위원이 참여하는 안전운임위원회가 시멘트ㆍ컨테이너 운송 운임을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로, 2020년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도입됐다.
화물연대는 한시적으로 도입된 안전운임제를 2022년 이후에도 연장하고 적용 범위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파업에 돌입했다. 화물연대에 따르면 안전운임제 도입으로 컨테이너ㆍ시멘트를 운송하는 화물운송기사의 임금이 각각 73만 원, 223만 원 증가하고, 근로시간은 월평균 15.7시간, 42.6시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 공정위는 화물연대의 파업에 제동을 걸었다. 공정위는 화물운송기사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고 화물연대가 사업자단체라고 주장하면서 파업이 공정거래법상 불공정행위에 해당한다며 현장 조사를 시도했다.
화물연대는 공정위 현장 조사가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저지했고,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화물연대를 고발했다. 검찰은 화물연대 위원장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사건의 쟁점은 화물연대가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인 사용자단체인지, 화물운송기사가 노동조합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인지로 좁혀졌다. 또한 안전운임제 유지ㆍ확대가 근로조건에 해당해 화물연대의 파업이 적법한지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법원은 화물운송기사의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법원은 화물운송기사가 일부 사용자성을 갖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노동시장 전속성이 높아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박 판사는 "화물연대 조합원들의 사용자성을 일부 인정할 수 있지만 운송사업자에게 노무를 직접 제공하고 구체적인 지시를 받아왔다"며 "특정 운송사업자에 대해 전속성과 소득의존성이 낮은 화물운송기사들이 일부 있지만 노동시장 종속성이 높아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했다.
'안전운임제 파업'도 적법 판단…"공정위 조사 위법"
이어 법원은 화물연대 파업이 공정위 조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화물연대 파업이 정당하다는 판단이다. 법원은 안전운임제 유지ㆍ확대가 근로조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박 판사는 "안전운임제는 단순히 운임을 인상하기 위한 의미를 넘어 최저운임을 설정해달라는 것으로 그 자체로 근로조건과 직결돼 이를 위한 파업은 목적의 정당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화물연대 파업이 근로조건과 무관한 거래조건 향상을 위해 이루어지거나 폭력ㆍ파괴행위가 있었다면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사용자성을 일부 가져 공정위 조사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그런 정황이 없다"며 "화물연대의 적법한 파업은 공정위의 조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절차적 위법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화물연대에 현장 조사를 고지하면서 위법행위를 특정하지 않았다.
박 판사는 "공정위가 현장 조사를 요구하며 화물연대에 발송한 공문에는 관련 법령만 명시돼 있을 뿐 어떤 위법행위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특정돼 있지 않았다"며 "혐의 사실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고 현장 조사를 하는 것은 사실상 영장 없는 강제 수사를 허용하는 것이어서 인정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객관적인 증거 없이 추측에 의한 혐의로 현장 조사를 하는 것은 헌법과 노동조합법이 보장하는 단체행동권을 필요 이상으로 침해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노동시장 종속성' 근로자성 징표될까…"새 정부, 항소 포기해야" 목소리도
화물연대 측을 대리한 조현주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화물연대를 노조로 명확하게 인정하고 화물연대의 안전운임제 파업을 근로조건에 대한 정당한 단체행동권 행사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법원이 노동시장 종속성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 인정 근거로 제시한 점도 이번 판결의 특징 중 하나다. 대법원에서 노동시장 종속성을 근로자성 인정의 근거로 제시한 판결이 현재까지는 없다. 조 변호사는 "법원이 전속성과 소득의존성뿐 아니라 노동시장 종속성을 근로자성 판단 지표로 제시한 점도 의미가 있다"며 "아직 대법원이 제시한 적 없는 기준을 하급심이 선제적으로 제시해 앞으로 어떤 판단이 이루어질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화물연대는 이번 판결을 환영했다. 화물연대는 "화물연대의 총파업은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단체행동으로 공정위의 무리한 조사가 정당한 노조 활동을 막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소모시켰다"며 "법원의 상식적인 판결을 환영하며 공정위는 화물연대에 대한 일체의 조사를 중단하고 기존에 내려진 제재를 철회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화물연대의 안전운임제 투쟁에 대해 법원이 근로조건에 대한 적법한 파업이라고 판단한 만큼 화물 노동자의 온전한 노동3권 보장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검찰의 항소 여부도 주목된다. 공정위의 화물연대 조사가 윤석열 정부 노사 법치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인 만큼 새 정부가 법무부 수사지휘권을 통해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는 여당 내 목소리도 나온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은 "이번 판결은 윤 정부가 정치적 목적만을 위해 노조를 노동법이 아닌 공정거래법으로 억지 고발하고 기소한 전형적인 정치 탄압이었음이 사법부 판단으로 확인된 것"이라며 "이재명 정부 법무부가 검찰총장 수사지휘권을 통해 이 사건 항소 포기를 지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검찰의 항소 기한은 오는 12일까지다. 조 변호사는 "아직은 검찰이 항소를 하지 않았다"며 "항소 기한이 남아있어 검찰의 항소 여부는 기다려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출처 : 이재헌 기자, 법원, 공정위 조사 방해한 화물연대 ‘무죄’…“안전운임제 요구 파업 정당”, 월간노동법률, 2025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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