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ㆍ면세점도 뚫렸다…‘원청 사용자성’ 또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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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ㆍ면세점이 입점업체 소속 판매ㆍ서비스직 직원들에 대한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앞서 중노위는 백화점ㆍ면세점이 입점업체 직원들의 근로조건을 직접 지배ㆍ결정하지 않아 교섭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법원은 이를 뒤집고 백화점ㆍ면세점의 교섭 의무를 인정했다.
이번 판결로 CJ대한통운, 한화오션, 현대제철에 이어 '실질적 지배력'을 이유로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한 판결이 또 등장했다.
30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14부(재판장 이상덕)는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백화점면세점노조)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노조 "백화점ㆍ면세점은 교섭에 나서라"
백화점면세점노조는 백화점, 면세점, 복합쇼핑몰 등에 입점한 업체에서 일하는 판매ㆍ서비스직 직원들로 조직된 노조다. 이들은 백화점, 면세점에서 일하지만, 입점업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한다.
노조는 백화점ㆍ면세점 12개사를 상대로 ▲백화점ㆍ면세점의 영업시간 변경에 따른 근무시간 및 휴일 결정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고객응대매뉴얼 작성 ▲휴게실, 화장실 등 점포 내 시설물 이용 보장 및 개선 등에 대한 교섭을 요구했다.
12개사는 호텔롯데, 롯데면세점제주, 부산롯데호텔, 신세계디에프, 신세계디에프글로벌, 호텔신라, 롯데쇼핑, 신세계, 신세계동대구복합환승센터, 광주신세계, 대전신세계, 현대백화점 등이다.
노조는 "근로시간, 근로환경 등 조합원의 노동조건을 입점업체 사용자가 전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백화점ㆍ면세점의 각종 지침을 따르고 이들의 관리ㆍ감독ㆍ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결국 입점업체 사용자하고만 교섭해서는 조합원의 노동조건을 개선시킬 수 없어 반드시 백화점ㆍ면세점과 교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백화점ㆍ면세점은 교섭 의무가 없다며 교섭을 거부했다. 노조는 교섭 거부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구제신청을 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구제신청을 기각했고, 중앙노동위원회도 초심 판정을 유지했다.
중노위는 노조 조합원들의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주체가 근로계약 당사자인 입점업체이기 때문에 백화점ㆍ면세점엔 교섭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노조는 지난해 중노위 판정을 취소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중노위 뒤집은 법원 "실질적 지배력 인정된다"
법원은 중노위 판단을 뒤집고 백화점ㆍ면세점이 노조와 교섭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입점업체 소속 판매ㆍ서비스직 직원들에 대한 백화점ㆍ면세점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한 것이다.
법원은 "백화점ㆍ면세점이 교섭 의제와 연관된 노조 조합원들의 일부 근로조건에 관한 실질적 지배력을 직접 가지거나, 일부 근로조건에 관해서는 최소한 원사업주인 입점업체와 중첩적으로 가진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백화점ㆍ면세점은 교섭 의제에 관해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로서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에서 눈여겨 볼 점은 백화점ㆍ면세점과 입점업체가 체결한 계약이 '상품 매입거래계약'이라는 점이다. 이 계약에 따라 백화점ㆍ면세점은 입점업체로부터 상품을 공급받고, 입점업체는 백화점ㆍ면세점 내 입점업체별 매장에서 상품을 판매했다. 상품을 판매하는 건 입점업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판매ㆍ서비스직 직원들의 몫이었다.
결국 이번 사건에선 단순 도급계약이 아닌 상품 매입거래계약을 체결하는 구조에서도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백화점ㆍ면세점 역시 이 점을 지적하며 "입점업체와 체결한 상품 매입거래계약이 실질적으로는 임대차계약의 성격을 가진 일종의 혼합계약에 해당한다"며 "상품 매입거래계약의 특성상 판매사원들이 백화점ㆍ면세점의 업무상 지휘ㆍ명령을 받지 않고 단지 그들의 근무장소만 백화점ㆍ면세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백화점ㆍ면세점에게 판매ㆍ서비스직 직원들의 노무제공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법원은 "상품 매입거래계약에 임대차계약의 성격이 혼합돼 있음을 충분히 고려하더라도 백화점ㆍ면세점이 영위하는 사업은 기본적으로 참가인 백화점ㆍ면세점 내에서의 '상품판매'에 해당함은 명백하고, 이는 판매사원들이 개별적인 상품판매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판매사원들이 상품판매 업무에 관해 제공하는 노무는 백화점ㆍ면세점의 사업 수행에 상시적ㆍ필수적인 것은 물론 구조적으로 백화점ㆍ면세점의 사업체계에 직접 편입돼 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영업시간ㆍ고객응대보호ㆍ시설물 이용' 의제 모두 인정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노조가 요구한 세 가지 교섭 의제 전부를 인정했다. 세 가지 의제 모두에 대해 백화점ㆍ면세점이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판단이다.
법원은 첫 번째 의제인 '영업시간'에 대해선 "백화점ㆍ면세점의 영업일, 영업시간 지정ㆍ변경이 판매사원들의 근무일과 근무시간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 자체를 부인할 수 없다"며 "입점업체가 아니라 근로계약관계 외부에 있는 백화점ㆍ면세점이 전적으로 결정하고 있는 사항이므로, 결국 이 부분에 관해서는 입점업체가 아닌 백화점ㆍ면세점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고객응대매뉴얼 작성' 의제에 대해서도 "두 번째 의제는 상품판매 업무를 수행하는 판매사원들이 고객 응대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위험으로부터 판매사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라며 "근무환경, 복지후생, 안전과 보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근로자의 대우와 직접 관계된 것이고, 나아가 단체적 노사관계의 측면에서 백화점ㆍ면세점이 집단적으로 적용되는 매뉴얼을 마련해 이를 개선할 수 있으므로, 단체교섭사항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세 번째 의제는 화장실, 휴게실 등 백화점ㆍ면세점 내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보장하고 개선해달라는 요구다. 법원은 "백화점ㆍ면세점 내의 시설 관리에 관한 사항은 입점업체가 아닌 백화점ㆍ면세점이 지배ㆍ결정하는 영역에 있음이 분명하다"며 "공항면세점의 경우 시설에 대한 관리권이 공항공사에 있다고 보이긴 하지만, 면세점 매장으로 활용하는 범위 내에서는 독립적인 휴게 공간 마련, 복지후생을 위한 기물 구비 및 품질 향상 등과 같이 시설 관리와 개선을 독자적으로 실행할 여지가 있다"고 했다.
한편, 법원은 12개사 중 신세계디에프글로벌의 경우 청산 절차를 밟고 있어 재심판정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없다며 소송을 각하했다.
이번 사건에서 노조 측을 대리한 김주연 서비스연맹 법률원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노조가 요구한 세 가지 의제를 다 인정하고 실질적 지배력설의 적용에 관해 종전의 전형적인 원하청, 수직적 결합관계에서 벗어나 더 넓은 범위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백화점ㆍ면세점과 같은 독특한 파견관계에 놓인 서비스업종의 현실을 잘 살펴본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소송을 주도한 백화점면세점노조는 "역사적 판결"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노조는 "이번 판결은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 이후 '원청 책임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젖히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이제 원청은 회피와 책임 전가를 멈추고 교섭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출처 : 이동희 기자, 백화점ㆍ면세점도 뚫렸다…‘원청 사용자성’ 또 인정, 월간노동법률, 2025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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