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표 회장 기소, 수사기관의 강력한 메시지?”...긴장감 맴도는 경영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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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적용 1호 사건인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 사고에 대해 검찰이 삼표그룹의 정도원 회장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사고가 발생한 것은 삼표산업이지만 검찰의 화살촉은 삼표그룹 정도원 회장으로 향했다. 검찰은 정도원 회장이 사업을 실질적으로 대표하고 총괄하는 경영책임자라고 판단했다. 대표이사나 안전보건담당임원(CSO)이 아닌 그룹사 회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것은 첫 사례다.
경영계는 중대재해처벌법 의무 주체를 그룹사 회장으로 본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며 반발했지만, 법조계에선 검찰 기소에 문제가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사기관이 그룹사 회장도 경영책임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보인 만큼 경영계는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정도원 회장이 경영책임자...실질적 권한 행사했다
의정부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홍용화)는 지난달 31일 정도원 회장과 삼표산업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삼표산업 대표이사와 임직원 6명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현장실무자 4명은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각각 약식기소됐다.
앞서 지난해 1월 29일 경기도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토사 붕괴로 골재채취 작업 중이던 근로자 3명이 매몰돼 숨졌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이틀 만에 벌어진 사고다.
검찰은 정도원 회장이 삼표산업의 안전보건 업무에 관한 실질적ㆍ최종적 권한을 행사한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라고 판단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이나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정도원 회장을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로 판단한 이유는 이렇다. 정도원 회장은 30년간 채석 산업에 종사한 전문가로 사고현장의 야적장 설치와 채석작업 방식을 최종 결정했다. 사고현장에서 채석작업이 계속될 경우 사면의 불안정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생산 목표 달성을 위해 채석 작업을 강행했다. 그 과정에서 삼표산업의 대표이사와 임직원에게 안전보건 업무 등에 관해 구체적 지시를 내리는 등 실질적ㆍ최종적 의사결정권을 행사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삼표산업이 삼표그룹의 핵심 사업이라는 점도 판단 근거가 됐다. 삼표그룹은 채석부터 레미콘 생산.판매까지 계열화돼 있는 기업집단이고, 삼표산업은 그룹의 근간이 되는 핵심 사업을 담당한다. 정도원 회장이 삼표산업에 경영권을 직접 행사할 필요성이 매우 컸고 실제로 각종 정기보고와 지시를 통해 주요사항을 결정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삼표산업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정도원 회장의 지시로 CSO를 선임했다. 그러나 검찰은 정도원 회장이 CSO에 안전보건 업무에 관한 실질적ㆍ최종적 권한까지는 부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결국 정도원 회장은 사고 당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유해ㆍ위험 요인 등 확인ㆍ개선 절차 마련 ▲중대산업재해를 대비한 매뉴얼 마련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정도원 회장이 삼표산업의 안전보건 분야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실질적ㆍ최종적 경영권을 행사했음에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안전보건 확보의무 미이행과 사망사고와의 인과관계가 확인돼 대표이사나 CSO가 아닌 정도원 회장을 기소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삼표산업 대표이사와 임직원들은 ▲굴착면 기울기 준수 ▲작업계획서 작성 등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상 조치를 이행하지 않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약식 기소됐다.
회장 기소에 충격...긴장 감도는 경영계
노동계는 기소가 사고 발생으로부터 1년 2개월 후에 이루어진 점을 지적하면서 엄정 처벌을 촉구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3일 발표한 성명에서 "삼표산업의 실질적 경영책임자가 정도원 회장으로 밝혀진 이상 법원은 엄중 처벌해야 할 것"이라며 "이는 전문경영인, 바지사장을 내세워 법적 책임에서 빠져나갔던 재벌 대기업의 행태를 어떻게 엄단할 것인가에 대해 무엇보다 중요한 첫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기소 소식이 발표되자 즉각 우려를 표했다. 경총은 "이번 사례는 그동안 검찰이 대표이사만을 경영책임자로 특정해 기소한 것과 달리 그룹의 회장을 직접 중대재해처벌법 의무주체로 판단해 책임을 묻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를 표명한다"며 "회장이 그룹사의 경영에 직ㆍ간접적으로 관여하고 핵심사항에 대해 의사결정 권한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룹사 개별기업의 안전보건업무를 직접 총괄하고 관리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번 기소는 경영책임자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경영계의 입장과는 정반대의 결정이다. 그간 경영계는 경영책임자의 범위가 모호하다고 주장해 왔는데, 해석에 따라서는 대표이사를 넘어 그룹사 회장이나 기업 오너까지도 경영책임자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책임자의 범위가 넓어지면 기업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검찰 기소 자체엔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의견이다. 우선 검찰은 "안전보건 업무에 관한 실질적ㆍ최종적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이라면 직함에 관계없이 경영책임자에 해당한다"며 "안전보건 업무에 관한 주요사항을 직접 결정하는 등 실질적 권한을 행사한 사람에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것이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다 충실하게 보호하려는 중대재해처벌법 입법취지에 부합하는 해석"이라고 설명했다.
진현일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도 "검찰은 원칙과 기준대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대표이사로 등재된 사람을 무조건 경영책임자라고 본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최종 결정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대원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도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 정의가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돼 있기 때문에 모회사 사장이나 아무런 직책이 없는 오너가 경영책임자로서 기소될 수 있다"고 했다.
경영계에는 긴장감이 맴돈다. 회장도 경영책임자로 기소 대상이 된 사례가 확인된 이상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된 것이다. 특히 이번 기소는 수사기관이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자'가 의무를 져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홍성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기업 입장에서는 조금은 긴장되는 기소"라며 "많은 기업에서는 정권이 바뀌고 중대재해처벌법을 보는 기조가 달라진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수사기관에서 여전히 강하게 법 적용을 추진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실이 들어난 셈"이라고 했다.
정대원 변호사는 "이런 리스크 때문에 최근에는 기업 계열사들이 책임경영을 하는 방식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추세"라며 "계열사들이 오너의 지휘 아래 공동으로 움직이면 중대재해처벌법뿐만 아니라 배임 등에 있어서도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영계는 법 개정을 촉구했다. 경총은 "검찰의 기소는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영책임자 개념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수사기관이 중대재해처벌법 의무 주체를 확대ㆍ해석해 적용한 기소"라며 "향후 경영책임자 대상을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증대되지 않도록 정부가 시급히 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2023년 04월 04일, 월간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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