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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원하청 교섭은 해도 단협 안 돼?”...공개된 대우조선 중노위 판정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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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61.♡.185.172)
댓글 0건 조회 59회 작성일 23-02-0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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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이 하청노조에 대해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문이 공개됐다. 중노위는 하청노조에 대한 대우조선해양의 단체교섭 의무를 제한적으로만 인정했다. 원청도 하청노조와의 단체교섭에 임해야 하지만 성실하게 참여하는 수준일 뿐 단체교섭 체결은 하청사용자와 하청노조 간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청노조는 원청을 상대로 단체행동도 할 수 없다. 이 때 원청에 단체교섭 의무가 있는지 여부는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 지표에 따라 판단한다.
 
현행법상 원청을 하청노조와의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로 인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중노위는 하청 근로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법해석을 통한 절충안을 제시했다. 이 같은 견해가 제시된 것은 처음이다.
 
9일 노동법률은 중노위 판정문을 입수했다. 중노위 판정문은 판정일로부터 통상 한 달 이후에 공개돼 그 전에는 자세한 판단 이유를 알 수 없다. 이번 판정문은 한 달이 조금 넘은 지난 3일자로 작성됐다.
 
"단체교섭은 해도 단협ㆍ파업은 안 돼"...새 관점 제시한 중노위
 
중노위는 지난해 12월 30일 대우조선해양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이하 하청노조)의 재심 신청을 받아들이고 초심 판정을 취소했다.
 
초심인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대우조선해양이 하청노조의 노동조합법상 사용자가 아니어서 교섭 거부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면 중노위는 대우조선해양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미치는 사용자라고 봤다.
 
판정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대우조선해양은 하청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단체교섭에 나서야 할 의무가 있다. 소위 '실질적 지배력설'에 따른 판단이다. 다만 현행 법체계상 실질적 지배력설을 전면적으로 인정하기에는 법적 안정성 등 문제가 따른다.
 
결국 중노위는 단체교섭에 대한 원청의 의무를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원청은 하청노조와 단체교섭에 성실하게 임할 의무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하청사용자와 공동으로 의무를 지는 것이다. 독자적으로는 사용자 지위를 보유하지 않는다. 따라서 단체교섭 체결이나 쟁의행위는 원청이 아닌 하청업체 사업주를 중심으로 이뤄지게 된다.
 
원청은 단체교섭에 임할 의무만 부담할 뿐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 판정은 원청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했던 다른 중노위 판정들과는 다르다. 유기적 권리라고 여겨지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분리했다.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관점이다.
 
근로자 보호 vs 법적안정..."교섭의무 기준 마련이 차선책"
 
우선 중노위는 실질적 지배력설의 장단점을 모두 짚었다. 실질적 지배력설은 명시적이거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없더라도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ㆍ구체적 지배력과 결정권이 있다면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견해다.
 
중노위는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를 형성하고 있지 않은 제3자가 근로자의 노동력 제공 조건을 사실상 결정하는 영향력을 행사함에도 근로자들이 직접 교섭할 수 없다면 실질적인 근로조건 향상은 기대할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실질적 지배력의 의미는 추상적이고 판단 주체에 따라 다의적이나 자의적으로 사용될 여지가 있어 법적 안정성을 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노위는 이 같은 한계를 지적하면서 "단체교섭 당사자 확정과 관련한 판단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기준 제시가 불가피하다"며 "가장 적절한 방법은 입법을 통해 규율하는 것이지만 아직 관련 규정이 제정되지 않아 차선책으로 해석론을 통해 그 기준을 모색하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구체적인 기준'으로는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 인정 기준이 제시됐다. 대법원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를 ▲소득이 특정 사업자에게 주로 의존하는지 ▲보수 및 계약 내용을 특정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걸정하는지 ▲사업의 필수적 노무를 제공해 특정 사업자의 사업을 통해 시장에 접근하는지 ▲특정 사업자와 지속적ㆍ전속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지휘ㆍ감독관계가 존재하는지 ▲임금, 급료 등의 수입이 노무제공의 대가인지 여부 등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중노위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 인정 기준을 차용한 이유는 '노동조합법 해석'과 '파견법 입법 취지'를 고려한 것이다.
 
노동조합법은 사용자와 근로자를 근로계약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노무제공 관계로까지 확대 인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노무제공자도 사회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어서다.
 
파견법은 사용사업주가 직접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파견근로자에 대해 일정한 책임과 의무를 지도록 규정한다. 고용과 사용을 분리하는 근로자 파견관계에서 파견근로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취지다.
 
중노위는 "명문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노동조합법에 대한 법해석적 관점과 파견법의 입법취지를 유추적용해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실질적 지배력의 의미를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노동조합법상 근로자 판단에 사용되는 완화된 판단요소에 기초해 집단적 자치의 보호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 원청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함으로써 원청과 사내하청 근로자 간에도 집단적 자치 관계를 확대 적용할 수 있도록 유추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원청은 '성실 참여'만?...단체교섭 공고 의무도 없어
 
중노위는 원청이 '어떻게' 교섭 의무를 부담해야 할지 구체적인 그림을 그렸다.
 
원청은 하청사용자와 함께 교섭에 임해야 한다. 중노위는 "현재의 입법체계와의 정합성을 유지하면서 실질적인 집단적 자치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교섭 방식은 '어느 정도의 사용종속관계'가 인정되는 원청이 사내하청 협력사와 함께 하청노조와의 단체교섭에 임하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단체교섭의 결과는 단체협약이다. 단체협약은 양 당사자에 대해 규범으로 작용하게 된다. 하청근로자와 직접 계약관계가 없는 원청에게 단체협약을 이행하도록 규범력을 부여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원청과 하청사용자가 함께 교섭에 나서야 하는데 두 사용자에게 동일한 지위를 인정할 수도 없다. 국내에서는 핵심적인 고용조건을 규율하는 둘 이상의 사업체를 모두 사용자로 인정하는 '공동사용자론'이 인정되지 않고 있어서다.
 
중노위는 "원청에는 공동사용자의 지위가 아닌 단지 사내하청 협력사와 함께 단체교섭에 정실히 임해야 하는 의무만이 부여되고 단체협약 체결 당사자의 지위는 근로계약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사내하청 협력사들만이 보유한다"고 했다.
 
이어 "원청은 독자적인 단체교섭 당사자 지위를 보유하고 있다고 볼 수 없어 단체교섭을 거부하거나 교섭 결렬에 따른 쟁의행위가 발생하게 된다면 그에 관한 법적 판단 또한 사내하청 협력사를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 경우 어떤 교섭 의제에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하나하나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중노위의 설명이다. 단체교섭 거부의 부당노동행위 제도는 원청을 교섭 석상에 참여시키는 수단으로 작동하게 된다.
 
원청에는 단체협약 요구 사실 공고 의무도 인정되지 않는다. 하청노조의 교섭단위는 사내하청 협력사의 사업이다. 교섭창구 단일화도 '하청사업'이라는 개별 교섭단위에서 해야 한다. 중노위는 단체협약 체결 주체가 원청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원청에는 하청노조 교섭요구에 대한 공고 의무가 인정되지 않아 부당노동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중노위는 현행 법체계상 이 같은 해석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중노위는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개념의 확장 문제가 아직 입법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는 최소한에 머무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 범위를 넘어 노동조합법상 다른 체계에까지 이러한 해석의 틀을 적극 확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원청에는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제재를 받는 한도에서만 교섭의무를 부담케 하는 것일 뿐"이라며 "그 외 나머지 사항, 단체협약 체결이나 교섭 결렬 시 쟁의권 확보와 단체행동 등 후속 문제들에 대해서는 원사업주인 사내하청 협력사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불가피하다"고 부연했다.
 
"하청근로자, 대우조선해양에 수입 의존"...교섭의무 인정

중노위는 노동조합법상 근로자 판단 기준에 따라 대우조선해양이 하청노조에 대해 단체교섭 의무를 부여하는 사용자라고 판단했다.
 
중노위 현장조사 결과 대다수 사내하청 협력사는 대우조선해양 외에는 다른 도급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고 협력사의 소재지도 원청에게 임차한 사무실이었다. 도급 계약이 끊어지면 폐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청근로자들의 수입도 대우조선해양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에 중노위는 대우조선해양의 사용자 지위가 인정되는 이상 단체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면서 하청노조의 구제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은 것은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청노조 측은 판정 결과를 환영하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이김춘택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지난해 판정이 나온 직후 노동법률과의 통화에서 "사측에 교섭 의무를 인정한 것은 환영할만 하지만 단체협약 체결이나 단체행동을 제한한 것은 구제 신청 취지를 넘어선 사족이자 직권 남용"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중노위 판정에 불복하는 경우 당사자는 판정문을 송달받은 날부터 15일 이내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원하청 교섭에 대해서는 CJ대한통운과 현대제철이 소송을 제기했다. CJ대한통운 지난달 1심에서 패소하고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다. 현대제철 사건은 서울행정법원에서 1심이 진행 중이다.
 
출처: 2023년 02월 09일, 월간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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