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호봉제회계직-학교비정규직 근로조건 차이 없어...함께 교섭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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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사무 실무를 담당하는 호봉제회계직 근로자는 다른 교육공무직과 별도로 교섭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원심은 근로조건에 현격한 차이가 있고 별도로 교섭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교섭단위 분리를 인정했지만 대법원은 근로조건에 현격한 차이가 없다고 봤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기존 판단을 유지한 것으로, 대법원은 앞서 같은 노동조합의 다른 지부에 대해서도 교섭단위 분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에서는 원심이 앞선 대법원 판결과는 다른 판단을 내놓으면서 다시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지만 대법은 기존 판단을 바꾸지 않았다.
호봉제회계직 교섭단위 분리 신청에 엇갈린 법원
22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제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광주광역시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교섭단위 분리 결정 재심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결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지난 15일 "호봉제회계직 근로자와 다른 교육공무직원 사이에 근로조건의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고 예외적으로 교섭단위를 분리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바로 다음 날 세종특별시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동일한 내용의 소송에서도 같은 판단이 나왔다.
호봉제회계직 근로자는 각 지역 교육청 산하 학교에서 행정실 수납, 급여 지급, 교무실 행정 사무, 시설보수관리 등 사무 실무를 담당하는 무기계약직 전일제 직원이다.
광주광역시 교육청 산하의 교육공무직을 조직 대상으로 하는 노동조합은 4개다. 이번 소송 피고보조참가인인 전국공립학교호봉제회계직 노동조합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전국여성노동조합,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다. 이 중 전국공립학교호봉제회계직 노동조합은 호봉제회계직 근로자로만 조직돼 있다.
2019년 전국공립학교호봉제회계직 노동조합은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했다. 호봉제회계직 근로자와 다른 교육공무직은 임금과 근로조건 등에 현격한 차이가 있어 별도로 교섭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남지노위와 중노위는 이 주장을 받아들여 교섭단위를 분리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호봉제 근로자와 비호봉제 근로자 간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를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광주광역시와 다수노조인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반발하면서 사건은 법원으로 올라갔다. 법원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교섭단위 분리를 인정하지 않았고 2심은 다시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다시 2심 판단을 깨고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호봉제회계직 근로자와 교육공무직의 근로조건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호봉제회계직, 교육공무직과 근로조건 차이 인정 안 된 이유는?
교섭단위 분리 여부를 판단할 때는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와 고용 형태, 교섭 관행을 살핀다. 여기에 더해 각 노조가 별도로 교섭을 해야 할 필요성도 인정돼야 한다.
2심과 대법원 판단이 갈린 가장 큰 이유는 임금체계의 차이를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로 인정했는지다.
2심은 임금체계의 차이를 근로조건의 현격한 차이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호봉제회계직 근로자와 비슷한 업무를 하는 교육공무직원 간 임금 수준이 비슷하다는 점에 집중했다. 임금 수준이 비슷하다면 임금체계의 차이는 근로조건의 차이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호봉제회계직 근로자와 다른 교육공무직원 사이에 기본급 액수 등의 임금체계와 각종 수당 등 세부항목에 일부 차이가 있으나 이는 양자의 연혁적 근거와 법적 근거가 서로 달랐던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동종ㆍ유사 업무를 담당하는 비슷한 경력의 근로자들 사이에서 서로 다른 경로와 방법으로 월 평균 임금 수준을 거의 동일하게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임금 수준에 실질적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반면 2심은 임금체계의 차이를 근로조건의 현격한 차이로 인정했다. 2심은 "교섭단위별 임금체계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임금의 지불 단위, 임금항목의 구성, 임금항목의 결정 기준을 비교ㆍ검토해야 한다"며 "임금체계로 인해 도출되는 구체적인 임금의 액수를 비교ㆍ검토하는 방법으로 임금체계 사이의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업무 내용의 차이도 2심은 인정한 반면 대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2심은 "호봉제회계직 근로자들의 업무형태는 학교의 행정실무와 시설관리업무 등을 담당하는 것인 반면 비호봉제 근로자들은 50종을 초과하는 다양한 직종으로 구성돼 있고 각 직종마다 업무환경이나 업무의 내용이 상이하다"며 "업무시간과 채용방식이 다르고 정원도 다르게 관리되고 있어 상호 간 인사교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법원은 "호봉제회계직 근로자의 업무는 다른 교육공무직원이 담당하는 업무와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며 "근로조건의 핵심에 해당하는 업무의 내용이 거의 동일한 상황에서 호봉제회계직 근로자를 비롯한 교육공무직 직원은 동일한 관리규정을 적용받고 있어 결과적으로 근무시간, 근무형태, 퇴직금, 휴일ㆍ휴직, 승진 여부, 정년ㆍ정원관리 등 나머지 근로조건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2심은 호봉제회계직 근로자와 교육공무직원 간 고용형태의 차이는 없다고 봤다. 전국공립학교호봉제회계직 노동조합이 별도로 교섭했던 관행이 없었다는 점도 인정했다. 다만 교섭 관행은 고려 요소일 뿐 교섭단위 분리를 판단하는 결정적인 기준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반면 대법원은 교섭창구 단일화를 통해 호봉제회계직과 동일ㆍ유사한 업무를 하는 교육공무직원 간 근로조건을 통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과거 전국공립학교호봉제회계직 노동조합 대구지부 교섭단위 분리 신청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동일하다. 호봉제회계직 근로자와 교육공무직원 간 근로조건 차이는 이미 대구지부 대법원 판결에서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대전고등법원이 앞선 대법원 판결과 다른 판결을 내놓으면서 대법원 판단을 또다시 받게 됐다.
전국공립학교호봉제회계직 노동조합 측을 대리한 강문대 법무법인 서교 대표변호사는 "고등법원에서는 교섭단위 분리를 인정하지 않은 앞선 대법원 판결을 알면서도 소수노조의 상황을 고려해 교섭단위를 분리하는 게 맞다는 판결을 했지만 대법원은 과거에 확정된 판결을 토대로 파기환송을 시켰다"고 설명했다.
강 변호사는 대법원 판단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대법원 입장에서는 일관된 판단을 한 것이지만 노조가 처한 사정이나 상황을 비춰보면 이번 판결에 아쉬움이 남는다"며 "고등법원 판결은 소수노조가 처한 여건을 충실히 고려하고 노동기본권 보호에 충실한 판례였다"고 덧붙였다.
이어 교육청과 입장을 같이 한 다수노조에게도 아쉬움을 표했다. 이번 사건에서는 다수노조인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교섭 상대인 광주광역시와 같은 입장에 서서 교섭단위 분리에 반대했다. 소송을 낸 당사자는 광주광역시지만 전남지노위 판단에 불복해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할 때는 다수노조도 함께했다.
강 변호사는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도 어려운 노동자를 돕고 노동기본권에 대한 주장을 많이 하고 있지만 이 사건에서는 교육청과 입장을 같이 했다"며 "노동조합은 교섭권이 없으면 의미가 없는데 아무리 노동조합이 단결할 필요성이 있다 하더라도 교섭단위 분리를 거부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출처: 2022년 12월 22일, 월간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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