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경력 페인트공의 허리디스크, 법원 “업무상 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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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년간 조선소에서 선박 도장 작업을 하다가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은 60대 페인트공이 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법원은 반복된 페인트칠이 허리에 부담을 줘 허리디스크가 발병한 것으로, 노화에 따른 퇴행성 질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구부리고 숙이고’ 질병 10개 진단
공단 “의학적 인지 안 돼” 요양 불승인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4단독(조국인 판사)은 페인트공 A(65)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공단이 항소하지 않아 지난 9일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사건은 2019년 6월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1998년부터 2019년 6월까지 20년 넘게 조선소 하청업체 7곳을 바꿔 가며 선박 도장작업을 수행했다. 매일 작업할 때마다 페인트 2.5~5킬로그램의 페인트 6~7통을 썼다. 1통당 작업을 하는 데 1시간에서 1시간30분 정도 걸렸다. 하루에 8~9시간을 페인트칠한 셈이다.
A씨는 페인트 롤러를 연결대에 부착해 밀고 당기는 작업을 반복했다. 바닥 작업시에는 하루 2시간 이상 허리를 숙이거나 앉아서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좁은 배관을 도장할 때는 허리를 비틀거나 고개를 숙여서 작업해야 했다.
이러한 작업이 반복되다 보니 결국 탈이 났다. 2011년 3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신경뿌리병증을 동반한 요추 및 기타 추간판 장애’로 18회 치료받았고, 요추 염좌로 한 차례 입원했다. 그러다 퇴직 후 6개월 만인 2019년 12월 경추·요추 추간판탈출증(허리디스크)과 어깨 회전근개 부분파열, 양측 손목터널증후군 등 10가지 질병을 진단받았다. 주치의는 “증상이 심해 호전이 없으면 수술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냈다.
A씨는 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공단은 ‘요추 추간판탈출증’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질병은 요양을 승인했다. 허리디스크에 대해서는 “의학적으로 상병 상태가 인지되지 않아 업무관련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재심사 청구마저 기각되자 A씨는 지난해 2월 소송을 냈다. A씨는 “중량물 취급으로 허리 부위에 신체적 부담이 장기간 누적돼 허리디스크가 발생했거나 자연경과 이상으로 악화했다”고 주장했다.
감정의 “같은 연령대 비슷한 퇴행”
법원 “일률적 판단 안 돼, 업무로 발생”
법원 감정의 판단은 엇갈렸다. 직업환경의학과 감정의는 “허리디스크가 명확하게 인지되지 않으며, 신경 압박에 의한 손상이 있는지 객관적 증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증상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반면 신경외과 감정의는 퇴행성 디스크를 동반한 추간판탈출증 소견이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A씨가 같은 연령대와 비슷한 퇴행변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법원은 업무상 재해가 맞다며 공단 판정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작업 과정에서 허리를 숙이거나 비튼 자세, 협소한 공간에서의 작업으로 인한 부자연스러운 자세, 페인트통 등 중량물의 반복적인 취급 등이 원고의 허리 부위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였을 것임은 분명하다”고 판시했다. 공단도 도장 작업이 허리에 부담을 주는 작업임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허리디스크 상태도 의학적으로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추간판 퇴행병변의 정도는 환경 및 역학적 요인 등에 따라 모두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A씨가 동일한 연령대와 비슷한 퇴행변화 소견을 보인다는 사정만으로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상병의 진단 경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허리디스크는 원고의 업무로 인해 발생했거나 적어도 자연경과 이상으로 악화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허리디스크 발생 또는 악화가 오로지 노화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출처 : 2022년 12월 16일, 매일노동뉴스, 홍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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