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대법 임피제 판결, ‘정년연장형’엔 적용 안 돼”...유효성 확대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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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연장과 함께 도입된 임금피크제, 즉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다는 고등법원 판결이 나왔다.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 삭감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이라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특히 지난 5월 대법원이 한국전자기술원 임금피크제 판결(한국전자기술원 대법원 판결)에서 제시한 임금피크제 유효성 판단 기준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는 임금피크제 유효성을 판단할 때 정년유지형과 정년연장형을 다르게 봐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근 선고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하급심 판례들을 살펴봐도 유사한 경향이 보인다. 또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근로자에게 불이익하지 않다는 하급심 판례도 쌓이고 있어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보다 유효성이 넓게 인정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농어촌공사 임금피크제 무효"...소송 건 전현직자
21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대전고등법원 청주제2민사부(재판장 원익선)는 한국농어촌공사 전현직자 A 씨 등 9명이 공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측 항소를 기각하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법 개정에 따른 정년연장이 특별히 유리한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면서도 임금 삭감은 불리한 변경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어 "한국전자기술원 대법원 판결을 근로자의 정년을 연장하면서 도입된 임금피크제에 그대로 원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공사는 노동조합과 합의로 개정 고령자고용법 시행일인 2016년 1월 1월에 맞춰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개정법에 맞춰 정년을 기존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해당 기간 임금지급률을 90%, 70%, 60%로 감축했다.
A 씨 등은 임금피크제가 적법하지 않다면서 소송을 냈다. 임금피크제는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으로 민법상 강행규정과 헌법에 반해 무효라고 주장했다.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다고 하더라도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근로계약이 우선 적용돼야 한다고 했다. 지난 5월 대법원 판결의 임금피크제 유효성 판단 기준에 따라 보더라도 적법하지 않다는 주장도 펼쳤다.
대법원은 지난 5월 한국전자기술원 판결에서 임금피크제 유효성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 타당성 ▲임금피크제 대상 근로자들의 불이익의 정도 ▲임금삭감에 따른 대상 조치 도입 여부와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확보한 재원이 도입 목적에 맞게 사용됐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한국전자기술원의 임금피크제는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연장 조치가 없었던 일명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다. 대법원은 이 네 가지 기준에 따라 한국전자기술원의 임금피크제가 임금 삭감에 따른 조치가 미흡하고 근로자들이 받는 불이익이 크다면서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 정년연장형에는 적용 안 돼"...선 그은 법원
1심과 2심 모두 A 씨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은 한국전자기술원 대법원 판결 이전에, 2심은 그 이후에 선고됐다. 대법원이 새로 제시한 임금피크제 합리성 판단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공사의 임금피크제는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우선 재판부는 임금피크제가 정년연장에 따라 도입된 것이라면 근로자에게 불이익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정년연장은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가 수반돼야 하는 것이고 임금체계 개편은 근로자에게 항상 유리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이 모든 부분에서 근로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의 개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이상 부분적인 임금 감액이 수반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법률에 따른 정년연장이 특별히 유리한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면서도 임금 삭감은 불리한 변경이라고 보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되지 않고 정년연장과 그에 수반되는 임금체계 개편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 씨 등이 임금피크제로 인해 불이익을 받았다고 보지도 않았다. A 씨 등은 임금이 삭감됐더라도 정년이 연장되면서 해당 기간에 추가로 임금 수입을 얻게 됐다. 또 보직 임용 제외나 근로시간 단축 등 업무 강도를 경감하는 조치가 시행된 점도 고려됐다.
이어 재판부는 한국전자기술원 대법원 판결의 임금피크제 유효성 판단 기준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재판부는 "한국전자기술원 대법원 판결은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에 관한 것으로 정년을 연장하면서 도입된 이 사건 임금피크제에 그대로 원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대법원 판결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더라도 공사의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임금피크제보다 유리한 개별 근로계약이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시에 임금피크제 도입 시 직원들의 개별 동의는 받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임금피크제는 취업규칙 형태로 도입된다.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할 때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근로자 과반수 노동조합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 때 불리하게 변경된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내용의 개별 근로계약이 있다면 유리한 근로계약이 우선 적용될 수 있다.
유리한 근로계약이 있음에도 불리한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려면 집단적 동의 절차가 아닌 근로자 개별 동의 절차가 필요했다는 것이 A 씨 측 주장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각 근로계약에서 공사의 취업규칙, 연봉제 규정 등보다 유리한 구체적인 근로조건을 따로 정하고 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면서 "A 씨 등의 개별적 동의가 없었더라도 임금피크제는 적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년연장형ㆍ정년유지형 분리 판례 쌓이나...불이익 인정 여부도 주목
이번 판결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구별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전자기술원 대법원 판결은 선고 당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임금피크제 유효성이 흔들리면서 줄소송이 예고됐고 기업들은 소송에 대비해 각 사의 임금피크제 점검에 나섰다. 노동계에서는 소송인단을 꾸려 소송을 내기도 했다.
특히 주목을 받은 쟁점은 한국전자기술원 대법원 판결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다.
무효가 된 한국전자기술원 임금피크제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다. 대법원은 당시 한국전자기술원 판결에 대해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정 연령 이상 근로자의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 즉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의 효력에 관한 판단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유효성 판단 기준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인 기업 중 대다수가 2016년 법정 정년연장에 따라 정년연장형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한국전자기술원 대법원 판결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면 많은 기업이 소송 리스크를 떠안게 된다.
노동계는 임금피크제 유형을 불문하고 한국전자기술원 대법원 판결에 따라 유효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경영계는 이 판결을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전자기술원 대법원 판결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더라도 그 기준에 따라 유효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해당 대법원 법리가 정년연장형에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KT 임금피크제 사건에서 법원은 대법원의 유효성 판단 기준을 하나의 참고기준으로서 인용했다. KT 임금피크제 판결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이 문제 된 사건으로 대법원 판결 직후인 지난 6월 16일 나온 판결이다.
이번 판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대법원 유효성 판단 기준을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사건에 참고할 수 있더라도 그대로 원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정년연장형과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를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공사 측을 대리한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한국전자기술원 대법원 판결 이후로 임금피크제는 전부 무효라는 노동계 주장과는 달리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한 판결"이라며 "더 나아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라도 반드시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고 도입 목적이 적절하고 대상 조치 등이 있다면 정당화 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가 불이익하지 않다고 보는 하급심 판례가 쌓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번 판결을 비롯해 한국전자기술원 대법원 판결 이후 나온 한국공항공사 판결, 한국교통안전공단 판결, 한국수력원자력 판결 모두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이 아니라고 봤다. 한국교통안전공단 판결의 경우 임금피크제가 취업규칙이 아닌 단체협약으로 도입됐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판결 모두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 감액 조치는 불이익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법무법인 율촌에서 임금피크TF 부팀장을 맡은 최진수 변호사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의 경우 대법원이 제시한 4가지 조건에 따라 합리적 이유가 있는 차별인지 따져 볼 의미가 있지만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는 맞지 않다"며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불이익이라고 볼 수도 이익이라고 볼 수도 없어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이 아니라는 판결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영계에서는 법원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대법원 유효성 판단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지 못하고 참고 기준으로 삼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고 이번 한국농어촌공사 판결도 그 증거"라며 "지금까지 나온 판결의 결론과 판단 이유 등을 보면 법원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함부로 무효로 보기 어렵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물론 대법원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대한 법리를 제시하기 전에 법원의 입장을 단정 짓기 어렵다. 하급심에서 전혀 다른 방향의 판결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판결을 살펴보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대해서는 유효성이 넓게 인정되고 있는 모양새다.
한 경영계 관계자는 "임금피크제는 고령자 고용 유지와 신규채용 등 고용문제를 고려해 세대 상생형으로 설계된 것이고 노사합의로 도입하고 있는 만큼 정년연장형은 물론이고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더라도 노사 합의나 세대 상생 목적 등을 고려해서 정당성을 폭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출처: 2022년 12월 21일, 월간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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