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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사업 일부 도급한 사업주, 업무 총괄ㆍ지시했는지 살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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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61.♡.185.172)
댓글 0건 조회 195회 작성일 22-10-2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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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 사업주는 사업의 전체적인 진행 과정을 총괄하고 조율할 능력이나 의무가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심은 수급인의 산업재해 예방 의무를 갖는 도급인인지를 판단할 때 작업이 같은 장소에서 이뤄졌는지에 주목했다. 반면 2심은 사업을 총괄하고 지휘ㆍ감독했는지를 살폈다. 대법원은 2심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보고 이를 최종 확정했다.
 
에어컨 설치하다 5명 사상...재하도급 작업, 책임은 누가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업무상 과실치사상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업주 A 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이 A 씨를 '사업의 일부를 분리해 도급을 주는 사업'의 사업주라고 판단하고 그 수급인이 사용한 근로자들에 대한 산업재해 예방조치 등 의무를 위반했다고 인정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A 씨는 경기 김포에 있는 기계제작업체 대표다. 그는 한 공장의 기계 제작과 설치 공사를 도급받았다. 그 중 에어컨 설치공사는 B 업체로 다시 도급했다.
 
사고가 발생한 건 2019년 11월이다. 공사 현장에서 에어컨 설치공사를 하던 작업자 5명이 약 6m에 달하는 천장 패널을 밟고 에어컨 설치작업을 하다가 패널이 붕괴돼 추락했다. 그 중에서는 B 사 대표 C 씨도 포함돼 있었다. 추락한 5명 중 3명은 상해를 입었고 C 씨와 또 다른 근로자 1명은 결국 사망했다.
 
검찰은 A 씨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사전에 천장 패널에 대한 안전진단 등 안전성 평가를 하고 추락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특히 검찰은 A 씨가 사망한 이들에 대해 도급인으로서 책임이 있다고 봤다. 당시 적용되던 개정 전 산업안전보건법(구 산업안전보건법)은 같은 장소에서 행해지는 사업에 대해 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도급인의 책임을 규정하고 있었다.
 
옛 산업안전보건법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도급인에게도 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산업재해 예방 조치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같은 장소에서 행해지는 사업으로서 사업의 일부를 분리해 도급 준 사업 ▲사업이 전문분야의 공사로 이뤄져 시행되는 경우 각 전문분야에 대한 공사의 전부를 도급 준 사업이다.
 
그러나 A 씨 측은 사업의 일부를 도급을 준 게 아니라 사업의 전부를 도급 줬던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A 씨의 사정은 이렇다. A 씨가 사업을 도급받을 당시 건축주는 에어컨 설치 업체 소개를 요구했다. A 씨는 도급 받는 입장에서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고 에어컨 설치 공사 자체를 따로 도급할 생각으로 공사 전체를 넘겨받았다. '사업의 일부'를 분리해서 도급을 준 게 아니라 에어컨 설치 공사라는 별개 사업을 도급 준 것이니 구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쟁점은 A 씨가 사업의 일부를 분리해 도급을 준 사업주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2심 유지한 대법, 도급인 판단 기준 어떻게 봤나

1심과 2심의 결론은 유죄다. A 씨가 사업의 일부를 분리해 도급을 준 사업주에 해당한다는 판단이다. 다만 1심과 2심이 적용한 도급인 판단 기준은 조금 다르다.
 
1심은 도급인의 사업과 수급인의 사업이 '같은 장소에서 행해지는 사업'이었는지 주목했다. A씨가 실질적으로 에어컨 설치 작업을 지휘ㆍ감독했는지 여부는 따지지 않고 작업이 같은 장소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해 판단했다. 
 
2심은 조금 다르다. 2심은 A 씨가 사업의 일부 도급 사업주인지 판단할 때 사업주가 같은 장소 내에서 사업의 전체적인 진행과정을 총괄하고 조율할 능력이나 의무가 있는지를 봤다.

2심이 인용한 판단은 2016년도에 나온 대법원 판결이다. 
당시 대법원은 수급인에 대한 도급인 의무를 정한 구 산업안전보건법 조항이 "사업의 전체적인 진행과정을 총괄하고 조율할 능력이나 의무가 있는 사업주에게 그가 관리하는 사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할 의무를 부여한 법령"이라고 해석했다.
 
2심은 이에 따라 A 씨가 사고 당일 C 씨가 에어컨 설치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현장실무소장에게 작업 사실을 통보하는 등 공정 관리를 한 점을 모두 고려해 판단했다. 대법원도 2심 판단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이 판단은 확정됐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이번 판결은 개정 전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한 도급인의 하청 근로자에 대한 의무를 확인한 것"이라며 "1심과 2심에서 도급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각각 다르게 등장한 건 사실관계나 도급인의 의무 범위를 판단하는 문제이지 어떤 기준이 옳다 그르다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징역 1년서 금고 1년...형량 줄은 2심, 판단 변화 있었나
 
1심은 검찰이 공소를 제기한 혐의를 모두 인정한 반면 2심에서는 형량이 줄었다. A 씨가 죽고 다친 피해자 모두에 대해 도급인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피해자들은 모두 B 사의 근로자가 아니었다. 사망한 C 씨는 B 사의 대표로 근로자가 아닌 수급인이다. 다친 이들 중 D 씨는 B 사의 근로자가 아니라 C 씨로부터 에어컨 설치를 재하도급 바든 재하수급인이었다. D 씨는 B 사에서 일당을 받고 에어컨 설치공사에 참여했지만 전문가로서 공사의 설계, 견적 등을 담당하면서 지휘ㆍ감독을 했다.
 
1심은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는 이상 사망자가 수급인인지, 수급인 근로자인지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A 씨가 이들에 대해서 도급인으로서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A 씨의 구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 대상은 사업주 자신이 사용하는 근로자와 그의 수급인이 사용하는 근로자에 한한다는 것이다.

2심은 "사고 당일 작업의 구체적 내용을 결정하면서 설치과정을 지휘ㆍ감독한 점, 공사에 필요한 자재 품목과 수량을 결정한 점 등을 보면 D 씨는 B 사로부터 에어컨 설치 업무를 재하도급받은 재하수급인"이라며 "A 씨는 D 씨에 대해 구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은 같은 이유로 C 씨와 D 씨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상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검찰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 내용을 그대로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업무상 주의의무로 기재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성립되지 않는 이상 A 씨가 이들을 구체적으로 지시ㆍ감독했거나 A 씨의 관리ㆍ감독 의무를 규정한 법령이 없으니 무죄로 봐야 한다는 게 2심 판단이다.
 
2심은 "하도급인인 A 씨가 법령에 의해 하수급인 C 씨와 재하수급인인 D 씨의 업무에 관한 구체적인 관리ㆍ감독의무를 부담하고 있거나 에어컨 설치공사의 시공이나 개별 작업에 관해 구체적으로 지시ㆍ감독했다는 등 사정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A 씨에게 C 씨와 D 씨의 사고 방지에 필요한 안전조치를 취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에어컨 시공은 C 씨와 D 씨가 자신의 업무로서 그 책임으로 하는 것이고 A 씨는 이들을 구체적으로 지시ㆍ감독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다"며 "A 씨가 도급인의 지위에 있다거나 공사 당시 안전에 유의해 작업하도록 당부한 사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A 씨에게 작업상 요구되는 안전조치를 강구할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주의 의무가 있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대법 판결, 현행 산안법 해석에 영향 줄까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된 법은 구 산업안전보건법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2019년 전부개정되면서 새 모습을 갖췄다. 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도급인의 의무도 새로 정비됐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도급인의 의무는 '도급인의 사업장 또는 도급인이 제공하거나 지정한 장소로 도급인이 지배ㆍ관리하는 장소'에 미친다. 사업의 일부를 도급 줬는지 여부보다는 도급인이 지배ㆍ관리하는지가 핵심이다.

도급인의 의무를 확대하기 위해 도급인이 지배ㆍ관리하는 장소로 의무 범위를 확장했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그 의미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이다.

정 교수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서의 도급인 의무는 엉성하게 바뀐 부분이 있어 이번 판결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해석에 영향을 주거나 시사점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출처: 2022년 10월 20일, 월간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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