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산업, 정기휴가 폐지 위법”...법원, 근로자집단 동의 ‘구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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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산업의 정기휴가 폐지가 적법하다는 1심 판단이 뒤집혔다. 정기휴가를 폐지하는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구하는 방식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원이 이번 판결을 통해 근로자들의 집단적 동의가 어떤 의미인지 구체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4일 노동계 등에 따르면 서울고법 제1민사부(재판장 전지원)는 전날 태광산업이 금속노련 산하 금속일반노동조합 태광산업지회장 A 씨 등을 상대로 낸 회사에 관한 소송에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지난 12일 "취업규칙 변경의 동의대상 근로자들 전원이 정기휴가 제도 폐지에 관한 회의 개최 등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을 통해 찬반 의견을 교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정기휴가 폐지한 태광산업, 1심서는 '적법'
태광산업은 앞서 연봉제 직원들에게 연차휴가와 별도 부여하던 정기유급휴가 4일을 폐지했다. 아무도 정기휴가를 사용하지 않자 취업규칙에 명시돼 있던 해당 조항이 사문화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태광산업은 직원들로부터 정기휴가 조항을 삭제하는 동의서를 받고 취업규칙을 개정했다.
그러나 태광산업 대표이사는 근로자 동의를 받지 않고 취업규칙을 개정한 혐의로 벌금 1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정기휴가 미사용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와 관련한 형사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태광산업이 노조를 상대로 낸 민사재판은 결론이 엇갈리는 듯했다. 1심은 태광산업이 취업규칙 변경 공고를 내고 적법한 동의 절차를 거쳤다고 봤다. 취업규칙 변경을 무효로 보고 정기휴가 미사용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노조 측 반소 청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심은 다시 판을 뒤집었다. 태광산업이 정기휴가를 폐지한다는 사실을 근로자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태광산업은 사내게시판을 통해 취업규칙 개정의 주요 내용으로 '정년연장 및 임금피크제 내용 반영', '징계 관련 규정 변경' 등을 기재했을 뿐 근로자들이 정기휴가 폐지에 관한 내용을 바로 알 수 있거나 쉽게 추측할 수 있는 문구는 기재돼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근로자들이 취업규칙 개정으로 정기휴가가 폐지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2심 판단이다.
근로자들의 동의를 구하기 위한 방식도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태광산업은 동의를 구해야 하는 근로자 449명을 66개의 팀 단위로 분리해 찬반 의견을 취합했다. 팀당 평균 6.8명 수준이다.
2심은 이 대목을 파고들었다. 재판부는 "6.8명은 449명의 약 1.5%에 불과하다"며 "이는 근로자 전체의 집단적 의사 확인을 위한 의미 있는 최소 단위로 기능하기 쉽지 않고 더욱이 6.8명은 같은 직급 근로자들이 아니라 상급자도 포함된 숫자였고 일부 동의서는 근로자 1인에 의해 작성돼 찬반 회의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지적했다.
찬반 의견을 취합하는 기간이 4일에 불과했던 점도 태광산업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재판부는 충분하게 의견을 나눌 정도의 기간이 아니라면서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을 통해 취업규칙 개정의 수용 여부를 결정할 실질적 기회를 부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2심, 1심 판결 취소하고 '근로자집단 동의' 구체화
법원은 이번 판결로 '근로자집단의 동의'가 갖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업무의 특성, 사업의 규모, 사업장의 산재 등의 사정으로 전체 근로자들이 회합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단위 부서별로 회합하는 방식도 허용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근로기준법 취지상 회의 방식에 의한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요구하는 이유는 '집단 의사의 주체로서 근로자'의 의사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용자의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전체 근로자들의 회합이 어려워 단위 부서별로 회합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 사용자는 부분적 회합을 통한 의견 취합을 하더라도 전체 근로자들의 회합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근로자들이 집단 의사를 확인ㆍ형성할 수 있도록 상당한 조치를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했다.
노조 측을 대리한 정명기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변호사는 "기구별 또는 부서별로 찬반 의사를 취합하는 방식의 동의라고 해서 무조건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기구나 부서가 근로자 전체의 집단적 확인을 위한 최소 단위로 기능해야 한다는 판결"이라며 "사업장별로 찬반 의사를 취합할 수 있는데도 극소수의 근로자들을 1개 단위로 묶어 취합하는 방식 즉, 사실상 근로자 개개인에게 등의서를 받아내는 방식의 꼼수를 근로자집단의 동의로 볼 수 없다고 확인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출처: 2022년 10월 14일, 월간노동법률, 김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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