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법 21조’ 불법파견 손해배상 소멸시효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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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공사(KBS)가 자회사인 KBS미디어텍 근로자들을 불법파견 형태로 사용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KBS미디어텍 근로자들이 제기한 24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도 받아들였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KBS와 KBS미디어텍은 공동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 법원이 불법파견 판단을 제시하면서 원청과 하청의 공동불법행위를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법원은 불법파견으로 발생한 임금 차액을 청구할 경우 최대 10년 치 임금을 청구할 수 있다고 봤다. 임금 청구 소송으로 본다면 3년 치 임금 차액만 청구할 수 있지만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로 보면 10년 치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에 관한 대법원 확정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번 판결이 특히 주목되는 이유는 파견근로자 차별을 금지한 파견법 21조를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불법파견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원청이 직접 고용 의무를 규정한 파견법 6조를 위반했다'는 주장이 주를 이뤘다. 최근에는 파견근로자의 차별적 처우를 금지한 파견법 21조 위반을 주장하는 추세다.
대법원에는 두 가지 유형의 사건 모두 계류돼 있는 상태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파견법 21조 위반을 주장해야 소멸시효 10년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원 "KBS, 불법파견...사운드 디자인 업무는 제외"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제13민사부(재판장 홍기찬)는 KBS미디어텍 근로자 A 씨 등 232명이 KBS와 KBS미디어텍을 상대로 낸 근로에 관한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KBS미디어텍 업무 중 뉴스진행, 뉴스영상편집, 스포츠중계 업무 등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사운드 디자인 업무에 대해서만 불법파견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불법파견 시정지시를 내렸던 노동청 판단이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KBS는 앞서 방송제작 지원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자회사 KBS미디어텍을 설립했다. 이후 KBS미디어텍과 방송프로그램 제작업무 위탁계약을 체결했다. KBS 연봉계약직 근로자들이 KBS미디어텍으로 소속을 옮겨 업무를 수행했다.
KBS미디어텍은 인력 충원이 필요할 경우 KBS의 승인을 얻어야 했다. KBS 직원이 KBS미디어텍 실기ㆍ면접 평가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KBS미디어텍은 위탁업무 수행 인원을 명시한 다음 KBS에 위탁수수료를 청구했다. 또 전산시스템을 통해 소속 직원의 근태를 직접 관리했고 업무매뉴얼을 자체적으로 제작해 활용하고 있다.
A 씨 등은 KBS의 지휘ㆍ명령을 받으면서 사실상 파견 형태로 일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KBS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 입장이다. 파견법은 파견근로자를 2년 넘게 사용하면 파견받은 사용자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원청이 하청 근로자에게 직접 업무상 지휘ㆍ명령을 하면 파견근로관계로 판단한다.
A 씨 등은 또 KBS에서 유사한 업무를 맡는 근로자들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받은 것은 파견법 21조 위반이라고 날을 세웠다. 파견법 21조는 파견근로자라는 이유로 차별적 처우를 하면 안 된다고 규정한다.
A 씨 등은 "파견법 21조를 위반하는 불법행위"라며 "KBS와 KBS미디어텍은 공동으로 파견근로를 개시한 시점부터 차별적 처우가 종료되는 시점까지 KBS 소속 근로자들과의 임금 차액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A 씨 측 주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였다. 사운드 디자인 업무를 맡는 근로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뉴스를 준비하고 방송을 진행하는 뉴스PD들과 관련해서는 "뉴스진행 업무는 KBS의 핵심 영역인 뉴스 제작을 위해 필수적인 업무"라며 "업무 특성상 KBS 정규직의 관리ㆍ감독이나 통제 하에서 KBS가 요구하는 작업방법이나 내용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게 됐고 업무수행 과정에서 재량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뉴스영상편집 업무도 다르지 않았다. KBS 취재기자의 요청에 따라 편집 작업을 수행했고 구체적인 업무 과정도 취재기자 등의 요청대로 이뤄졌다. 재판부는 "재량권을 갖고 임의로 편집할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스포츠중계 업무도 불법파견이 인정됐다. KBS PD의 지시에 따라 업무가 진행됐다는 것이 법원 판단이다.
다만, 사운드 디자인 업무는 파견관계로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사운드 디자인 업무는 촬영이 완료된 영상에 대해 사후적으로 효과음을 추가하거나 노이즈를 제거하고 음향을 합성하거나 보정하는 등의 작업을 수행하는 내용"이라며 "기본적으로 KBS로부터 제공받은 자료를 토대로 스스로의 판단 하에 사운드 작업을 진행했고 전문성과 기술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운드 디자인 업무를 맡는 근로자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에 대해 "KBS가 고용의무를 부담한다"고 판시했다.
불법파견 손배 소멸시효, '파견법 21조' 위반은 10년?
이번 판결에서는 불법파견에 따른 임금 차액 청구의 소멸시효를 10년으로 판단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KBS 정규직보다 임금을 적게 받은 것이 파견법 21조 위반이라는 A 씨 측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파견법 21조는 파견근로자 임금을 정규직과 차별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다. 법원은 이번 사건을 단순하게 임금 차액을 청구한 사안으로 본 것이 아니다. 임금 차액 청구에 초점을 맞췄다면 임금채권 소멸시효인 3년을 적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A 씨 측이 받아야 할 임금 차액을 불법파견이라는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로 인식했다.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멸시효는 10년이다. 이번 판결대로면 A 씨 측은 3년 치 이상의 임금 차액을 받아낼 수 있게 된다.
불법파견으로 발생한 임금 차액 청구에 대해 소멸시효 10년을 적용한 대법원 판례는 아직 없다. 다만, 소멸시효 10년을 인정한 하급심 판단이 축적돼 있는 상태다.
사건마다 청구 원인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대법원 판단이 엇갈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전에는 소멸시효 10년을 주장할 때 파견법 6조의2 위반을 근거로 들었다. 파견법 6조의2는 파견 받은 사용자가 특정 조건에 해당하면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2년 넘게 파견근로자를 사용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국도로공사 불법파견 사건은 파견법 6조의2 위반을 근거로 소멸시효 10년을 주장한 사례다. 하급심에서는 고용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임금 차액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서 소멸시효 3년을 적용했다. 이 사건도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다.
최근에는 파견법 21조 위반을 근거로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표시멘트 불법파견 사건이다. 서울고법에서 소멸시효 10년을 인정받았다. 근로계약상의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데 대한 손해배상 청구와 구분된다는 것이다.
삼표시멘트 사건도 대법원으로 공이 넘어간 상태다. 대법원은 2020년 11월부터 삼표시멘트 사건의 쟁점에 관한 심층 검토를 진행 중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파견법 21조 위반을 근거로 임금 차액을 청구한 불법파견 사건이 소멸시효 10년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A 씨 측을 대리한 류재율 법무법인 중심 변호사는 "성차별에 따른 불법행위 손해배상 청구도 소멸시효를 10년으로 보는데 (파견법상) 임금 차별만 3년으로 판단하면 설명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법원도 파견법 21조 위반을 주장한 경우에는 청구 원인이 다른 만큼 불법행위 소멸시효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 2022년 09월 29일 목요일, 월간노동법률 김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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