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 지시 아닌 일하다 사고 나도...법원 “업무상 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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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주 지시도 없이 다른 업체 소유 기계를 작동시키다 사고가 났더라도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30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 손혜정 판사는 근로자 A 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이 판결은 공단이 항소하지 않으면서 지난 12일 확정됐다.
손 판사는 "A 씨의 사고는 사회통념상 업무를 준비하는 행위 또는 업무에 수반되는 합리적ㆍ필요적 행위를 수행하던 중 발생한 사고에 해당한다"며 "사업주의 지배ㆍ관리 아래 업무상 사유로 발생한 것으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A 씨는 경기 시흥에 있는 B 업체에서 일하던 근로자로 하치장에서 철강 가공작업용 롤러기계를 작동시키다 왼쪽 손이 말려들어가는 사고를 당했다.
A 씨가 사고를 당한 기계는 C 업체의 소유였다. B 업체는 C 업체에서 가공된 철강을 납품받아 바로 상차한 다음 판매처에 납품하기 위해 C 업체의 작업 공간 옆을 하치장으로 사용해 왔다. A 씨의 업무는 가공된 철강의 상ㆍ하차와 입ㆍ출고 업무였다. 사고는 A 씨가 롤러기계 사용법을 배워보려다 발생했다.
A 씨는 자신의 행위가 산재보험법 시행령에서 정하는 '업무를 준비하는 행위나 그 밖에 업무에 따르는 필요적 부수행위'에 해당한다면서 업무상 재해라고 주장했다. 사업주가 롤러기계를 구입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어 사용법을 숙지하려다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공단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근로계약 내용에 포함된 업무가 아닌 사적 행위는 업무상 재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법원은 A 씨 주장을 받아들였다. A 씨의 행위가 원래 업무는 아니더라도 사회통념상 업무를 준비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고 봤다.
손 판사는 "A 씨가 롤러기계를 작동하는 것이 사고 당시 맡았던 담당 업무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C 업체의 가공작업과 A 씨의 업무가 시간ㆍ장소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사고 발생 장소가 A 씨의 근무장소와 명확히 구분되는 곳이 아니고 롤러기계에서 가공된 철강을 바로 상ㆍ하차하는 업무를 담당했던 점이 판단 근거로 제시됐다. 또 B 업체 사업주가 롤러기계를 구입해 직접 철강을 가공하는 사업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도 법원 판단에 힘을 실었다.
손 판사는 "사업주의 구체적인 계획 아래 장차 맡게 될지도 모르는 철강 가공업무를 더 잘 수행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에 일어난 사고를 업무수행을 벗어난 자의적ㆍ사적인 행위 또는 비업무적 활동 때문에 발생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산재보험법의 취지와 내용을 종합해 보면 근로계약에 따라 근로자가 해야 할 담당 업무뿐만 아니라 담당업무의 개시ㆍ수행 또는 계속에 필요한 행위도 업무상 재해에서 말하는 업무에 해당한다"며 "이러한 업무에는 사용자의 묵시적ㆍ희망적 명령에 의한 것으로서 기업 경영상 필요한 행위도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출처: 2022년 08월 30일, 월간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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