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고용해야”...전산장비 유지ㆍ보수직 첫 불법파견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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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전산장비 유지ㆍ보수 업무를 하는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을 현대차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협력업체 소속 전산장비 유지ㆍ보수직을 원청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법원이 현대차 전산시스템을 판단 근거로 제시한 대목도 눈에 띈다. 현대차가 전산시스템을 통해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작업량과 작업순서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는 포스코 전산관리시스템(MES)이 업무상 지휘ㆍ감독 수단이라는 대법원 판단과도 맥을 같이 한다.
무엇보다 전산장비 유지ㆍ보수직의 불법파견이 인정된 첫 판결인 만큼 앞으로 유사 분쟁에 미칠 파장도 주목되는 상황이다. 당장 법원을 상대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나선 용역업체 소속 전산 유지ㆍ보수직들에게 힘이 실릴 수도 있다. 다만, 법원은 이번 판결이 다른 유사 사례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판단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법원, 전산 유지ㆍ보수직 첫 '불법파견' 판결
16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42민사부(재판장 정현석)는 현대차 남양연구소 전산 유지ㆍ보수 업무를 맡은 협력업체 직원 A 씨 등 11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등의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A 씨 등의 실질적 근로관계는 협력업체에 고용된 후 현대차 남양연구소에 파견돼 현대차의 지휘ㆍ명령을 받으면서 전산장비 유지ㆍ보수 업무에 종사한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파견법은 파견근로자를 2년 넘게 사용한 경우 파견받은 사용자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개정 전 파견법에 따라 A 씨 등 4명이 현대차 직원의 지위에 있다고 봤다. 나머지 7명에 대해서는 현대차가 직접 고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A 씨 등은 현대차 업무용 그룹웨어인 오토웨이를 통해 전산장비 장애 신고가 접수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한 후 관련 내용을 입력했다. 이들은 현대차의 지휘ㆍ감독을 받으면서 사실상 파견 형태로 일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현대차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현대차는 지휘ㆍ감독을 하지 않았다고 맞섰다. 파견관계가 아니라 도급관계이기 때문에 A 씨 등을 직접 고용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법원은 현대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현대차가 남양연구소를 원활하게 운영하려면 자동차 연구ㆍ개발 업무에 필요한 핵심 설비인 전산장비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필수불가결"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산장비는 남양연구소에서 연구ㆍ개발되는 기술이나 제품 보안과도 직결된다"며 "전산장비 관련 여러 업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업무표준 외에 정규직 근로자들에 의한 구체적인 지시나 감독이 개입될 여지가 상당히 컸다"고 봤다.
대법 판결 이어 또..."전산시스템으로 지휘ㆍ감독"
전산시스템을 통해 지휘ㆍ명령이 이뤄진 점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 판단과 결이 같다. 대법원 앞서 포스코 판결을 통해 원청이 MES로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을 지휘ㆍ감독했다는 첫 판단을 내놓은 바 있다.
재판부는 "현대차는 업무용 그룹웨어인 오토웨이, 전산시스템 또는 총무팀 정규직 근로자들의 지시를 통해 A 씨 등을 담당자로 지정해 유지ㆍ보수가 필요한 내용과 우선순위 정보를 제공했다"며 "이를 통해 A 씨 등의 작업량과 작업순서를 결정했고 총무팀 정규직 근로자들은 필요에 따라 이를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전산장비 유지ㆍ보수를 신속하게 처리하려면 작업속도 등을 어느 정도 통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사정도 법원 판단에 힘을 실었다. 이러한 상황들을 모두 고려하면 위탁계약으로 정한 수준을 넘어 통제ㆍ관리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A 씨 등이 수행한 업무가 총무팀 정규직들 업무와 구별되지 않은 것도 현대차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번 판결은 다른 전산장비 유지ㆍ보수직에 참고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을 상대로 정규직 전환을 요구 중인 전산 유지ㆍ보수직들이 대표적이다.
A 씨 측을 대리한 유태영 법률사무소 새날 변호사는 "전산 유지ㆍ보수 용역업체 소속 하청 근로자들이 불법파견을 주장해서 승소했던 사건이 없었다"며 "법원 전산 유지ㆍ보수직의 경우에도 비슷한 논란이 이 있었는데 (첫 판결이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파장이 큰 판결"이라고 말했다.
판결 영향 제한적일 수도..."사업장별 근로계약 실질 달라"
파장이 제한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법원은 이번 판결이 다른 전산장비 유지ㆍ보수직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같은 전산장비 유지ㆍ보수 업무라고 하더라도 근로계약의 실질은 사업장별로 다를 수 있다"며 "A 씨 등과 현대차 사이에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된다고 해서 현대차와 유사하게 전산장비 유지ㆍ보수 업무를 외부업체에 위탁하는 다른 기업이나 공공기관에도 근로자파견관계가 곧바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번 판결의 직접적 영향권에 있는 현대차 내 다른 전산장비 유지ㆍ보수직 규모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현대차 관계자는 "공시로 확인되는 부분 이외에는 특정 부문의 구체적인 인원 수를 알려주기는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한편, 유 변호사는 "전산장비 유지ㆍ보수라고 하면 막연하게 하청업체가 전문성을 갖고 도급으로 사업을 운영했다고 생각하기 쉽고 현대차도 이러한 점을 변론에서 강조했었다"며 "현대차가 업무용 인트라넷과 전산시스템을 통해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업무 전 과정을 통제한 것이 명확했고 제조업 이외의 분야에서 어떤 경우에 근로자 파견관계가 인정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출처: 2022년 08월 16일, 월간노동법률, 김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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