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중대재해법 해석 흔들리나...‘도급인 사업장’ 법원 판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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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급업체의 부지 안에 있는 수급업체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이를 도급업체 사업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로 볼 수 있을까.
법원은 그렇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수급업체가 도급업체 부지 안에 있기는 하지만 사업장은 분리돼 있다는 것이다.
법원 판단대로면 중대재해처벌법상 도급인이 부담해야 할 의무가 어디까지인지 혼란을 겪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도급인이 수급인의 작업과 관련한 장소 등을 소유하고 있으면 수급인 종사자의 중대재해를 예방할 안전ㆍ보건 확보 의무를 부담한다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노동부가 도급인의 책임 범위를 과도하게 해석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다만, 이번 법원 판단이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 사업장을 판단한 것이고 과태료 사건에 대한 결정인 만큼 중대재해처벌법 해석을 흔들 정도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도급인 부지 안 수급인 사업장서 '중대재해'
1일 <노동법률> 취재를 종합하면 대구지법 김천지원은 최근 도급업체인 A 사가 노동청 과태료 처분에 불복해 낸 이의제기와 관련해 업체 측 손을 들어줬다.
전말은 이렇다. A 사는 수급업체인 B 사의 모회사다. B 사는 A 사가 만드는 제품의 원료를 생산해 납품하고 있다. A 사로부터 원료 생산을 도급받은 것이다. B 사는 A 사의 부지를 임차해 사용하고 있다. 두 회사의 사업장이 한 부지에 있게 된 이유다.
사고는 B 사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B 사 근로자 1명이 작업 중 컨베이어벨트에 추락해 숨졌다. 노동청은 두 회사를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실시했다.
감독 결과 A 사는 1530만 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산재 발생 사실을 노동청에 늦게 보고한 데 대해서는 1500만 원, 작업 배치 전 건강진단을 실시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는 30만 원이 부과됐다.
A 사는 이의제기에 나섰다. 산재 보고가 늦어졌다는 사실은 중대재해 감독 과정에서 적발된 위반행위가 아닌 만큼 관련 규정에 따라 700만 원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청은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도급업체도 중대재해 사업장?...심문기일만 네 차례 진행
문제는 30만 원이었다. 액수 때문이 아니다. 30만 원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을 대상으로 부과되는 금액이었다. 사고는 B 사에서 일어났지만 A 사도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노동청 판단이었다. A 사 부지 안에 사업장이 있어서다.
법원이 본 쟁점은 B 사 사업장을 A 사 사업장으로도 볼 수 있는지였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0조 2항은 '도급인 사업장 안에 모든 장소'를 도급인의 사업장으로 본다고 명시하고 있다.
도급인 사업장 밖이라고 해서 무조건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도급인이 지정ㆍ제공하고 지배ㆍ관리하는 장소는 도급인 사업장으로 분류된다.
법원은 사업장 실태를 들여다봤다. 과태료 사건인데도 이례적으로 심문기일을 네 차례나 진행했다. 마지막 심문기일은 A 사 사업장 부지에서 있었다.
부지 같아도 공간 분리..."A 사 중대재해 사업장 아냐"
결론은 B 사 사업장을 A 사 사업장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두 회사는 법인도 다르고 각자 고유의 사업을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업장도 공간적으로 분리돼 있고 각각 별도의 출입문을 통해 드나든다. 내부도 이들 회사 임직원들이 서로의 사업장을 임의로 왕래할 수 없는 구조다.
A 사가 B 사 지분을 사들여 자회사로 삼았다는 사실도 법원 결정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법원은 "A 사가 B 사의 사업장이나 제조ㆍ생산 활동을 지배ㆍ관리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B 사는 A 사로부터 제조설비 등을 인수해 소유하고 있고 일부 원료창고는 A 사로부터 유상 임차해 사용하는 등 사고현장을 포함한 사업장 내 모든 설비를 직접 관리해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사업장에 공급되는 도시가스와 전기요금 등 공과금이 별도로 부과돼 각자 납부해 왔던 사실도 근거로 들었다.
법원은 A 사를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으로 볼 수 없다면서 30만 원이 아닌 1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노동부 '중대재해법 해석' 흔들리나
이번 결정은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 사업장 해석에 관한 판단이지만 중대재해처벌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규정한 도급인의 책임 범위와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 사업장을 명시한 대목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연결고리는 도급인이 수급인 사업장을 '지배ㆍ관리'하는지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도급인이 지정ㆍ제공하고 지배ㆍ관리하는 장소를 도급인 사업장으로 본다.
뒤이어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중복되는 대목이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5조는 '실질적으로 지배ㆍ운영ㆍ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도급인'의 경우 수급인 종사자가 중대재해를 당하지 않도록 안전ㆍ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법원 결정에 따르면 노동부가 만든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노동부는 '실질적으로 지배ㆍ운영ㆍ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도급인'을 이렇게 해석한다.
"도급인의 사업장 내 또는 사업장 밖이라도 도급인이 작업장소를 제공 또는 지정하고 지배ㆍ관리하는 장소에서 작업하는 경우가 아닌 경우에도 해당 작업과 관련한 시설, 설비, 장소 등에 대해 소유권, 임차권, 그 밖에 사실상의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경우에는 법 제5조에 따른 책임을 부담한다."
다시 말해 도급인이 수급인 종사자가 사용하는 장소에 대한 소유권 갖고 있어 위험을 제어할 능력이 있다면 '책임이 있는 도급인'으로 해석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법원 결정은 도급인이 수급인 사업장이 있는 장소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배ㆍ관리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수급인 사업장이 도급인의 부지 안에 있더라도 현장 실태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법원 결정의 취지이기도 하다.
중대재해 수사 시 도급인 책임 공방 '불가피'
결국 이와 유사한 사업장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수사가 진행되면 도급인 책임 범위를 놓고 공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가 나올 당시 노동부가 '소유권이 있으면 책임이 있다'고 해석하면서 사유재산권에 반한다는 논란이 제기됐다"며 "도급인이 소유권을 갖고 있어도 수급인에게 작업 장소를 임차하면 수급인이 임차권을 배타적으로 행사하는데 그 공간을 도급인이 지배한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한 반도체 제조공장에서도 이번 법원 결정과 유사한 판단이 나온 바 있다. 당시 법원 판결은 도급인과 하나의 작업장 안에 있더라도 수급인의 작업이 독립적으로 이뤄졌다면 별개의 사업장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봤다. 따라서 수급인이 산업안전보건법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노동부 해설 자체가 사업장 현실과 안전ㆍ보건 원리에 반하기 때문에 이번 법원 결정은 중대재해처벌법 해석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수급인이 도급인 공장 안에 들어와 작업한다 해도 해당 작업이 도급인과 완전히 독립돼 있으면 도급인이 지휘ㆍ감독을 할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법원이 정확하게 본 것"이라고 평가했다.
법원 결정이 당장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 한 법학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은 도급을 바라보는 채도가 다르고 법원 판단도 '결정' 정도이기 때문에 노동부 해석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출처 : 2022년 09월 01일 목요일, 월간노동법률 김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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