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고용상 성차별’ 한국SGS에 ‘면죄부’ 준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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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고용상 성차별’ 시정명령을 받았던 다국적기업 한국SGS그룹이 법원에서 면죄부를 받았다. 재판부가 유리천장을 기업의 인사재량으로 보고, 성차별 구조를 용인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원 “업무 변경·평가 저조는 정당한 인사 재량”
서울행정법원 14부는 한국SGS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차별시정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9일 밝혔다. 재판부는 “승진 추천에서 제외된 것은 인사평가 결과에 따른 것으로, 육아휴직 사용이 직접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조직 재편 과정의 보직 이동은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SGS는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150여년의 역사를 가진 인증, 테스팅, 검사 전문 글로벌 기업이다. 한국SGS그룹에서 파트장 업무를 담당하던 A씨는 2006년 입사해 파트장으로 근무하다 2013년 첫째 육아휴직, 2019년 둘째 출산휴가·육아휴직을 사용했다. 그런데 회사는 A씨가 2020년 3월 복귀하자 시험원으로 강등하고, 이전과 전혀 다른 파트 업무를 맡겼다. 이후 승진대상에서도 세 차례 연속 누락되자 A씨는 2023년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을 신청했다.
‘형식적 중립’ 문제 삼은 중노위
법원 “승진율 차이 명백한 수준 아냐”
사쪽은 A씨의 업무능력 부족을 주장했다. 중노위가 문제 삼았던 부분은 ‘형식상 중립’이 실제로는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구조였다는 점이다.
이 판정은 고용상 성차별 시정제도 시행 이후 첫 시정명령으로 주목받았다. 한국SGS의 2020~2022년 육아휴직 미사용자의 승진율이 82.1%, 사용자는 75%였고, 특히 과장급만 보면 미사용자 88.5%, 사용자 68.2%로 20%포인트 이상 격차가 있었다. 하지만 법원은 “차이가 EEOC(미국 고용평등기회위원회)의 5분의 4 규칙 기준에 미달하지 않는다”며 차별로 보지 않았다. 이는 채용이나 승진 등에서 특정 집단의 선발률이 다른 집단의 80%(5분의 4) 미만이면 간접차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하는 통계적 지표로 활용된다. 법원에 따르면 한국SGS는 91.3%(75÷82.1)로 5분의 4를 웃돈다. 과장직급으로 한정하면 5분의 4에 미달하지만 이는 해당 육아휴직자가 44명에 불과해 통계적 편차가 클 수밖에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통계분석은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수단일 뿐”이라며 “설령 통계분석 결과 과장 직급 육아휴직 사용에 따른 승진율 차이가 존재해도 차별로 볼 정도의 명백한 수준에 이르지 않고, 단순히 의심을 제기하는 수준이라면 차별적 처우라고 쉽게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승진은 근로자에 대한 전인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사용자에게 상당한 인사재량이 인정되는 부분“이라며 “단순히 정량적 점수를 충족했다고 해서 반드시 승진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통계적 차이만으로는 차별처우의 인과관계가 곧바로 증명되지 않는다”며 중노위 판정을 뒤짚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의 2020~2022년 평균 인사평가 점수는 2.666점이었으나 승진자의 평균 점수는 3.677점이었다. 법원은 이 수치를 근거로 “업무역량이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승진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육아휴직 복귀 이후 업무 성과가 두드러지지 않았고, 리더십이나 팀 내 성과관리 면에서 상위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명시했다. 또 “업무 변경은 부서의 구조조정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으며, 업무능력의 저하나 승진 탈락은 육아휴직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역량 부족 때문”이라고 봤다.
그러나 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만으로도 A씨가 불리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요인이 뚜렷하다. A씨는 복귀와 동시에 직급이 낮아지고, 담당 업무가 완전히 변경됐다. 중노위는 이를 ‘명백한 불리한 처우’로 보고 그 결과 낮은 평가가 불가피해졌다고 판단했다. 평가 점수의 하락은 개인 능력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만든 조건의 결과라는 것이다. 김세희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법원이 강등과 업무변경이 인사고과에 불리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낮은 점수를 근거로 다시 승진 누락을 정당화한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사용자는 언제든 ‘조직개편’ 명목으로 불리한 발령을 낼 수 있다”며 “이 논리를 법원이 그대로 수용한다면 육아휴직자는 복귀 후 제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된다”고 꼬집었다.
‘결과의 불평등’ 외면한 법원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19조3항은 육아휴직 복귀 후 동일·유사 직무 복귀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법원은 “업무 재배치가 있었다 해도 임금과 근로조건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형식적으로 해석해 사업주의 손을 들어줬다. ‘결과의 불평등’ 대신 ‘절차의 형식’만 따진 셈이다. 노동계는 “업무 변경으로 인한 평가 저하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판단은, 결국 육아휴직 제도의 실효성을 훼손한다“고 우려한다. 복귀 뒤 불이익이 ‘합리적 인사조치’로 포장되는 순간, 육아휴직은 권리가 아니라 ‘경력 리스크’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출처 : 김미영 기자, 첫 ‘고용상 성차별’ 한국SGS에 ‘면죄부’ 준 법원, 매일노동뉴스, 2025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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