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無ㆍ연속 산재’에도 SPL 대표에 집행유예 선고한 법원,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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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 평택 제빵공장에서 일한 근로자가 소스 혼합기에 끼어 목숨을 잃은 사고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SPL 대표이사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사고 당시 대표이사의 재직기간이 4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 참착됐다. 건설업이 아닌 업종에서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의무위반치사 무죄가 선고된 것도 이례적이다.
6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박효송 판사는 지난달 21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SPL 대표이사 A 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등으로 힘께 재판에 넘겨진 SPL 평택공장 공장장 B 씨와 안전보건팀장 D 씨, 안전관리자 E 씨에게는 각각 금고 10개월ㆍ6개월ㆍ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내려졌다. SPL 법인에게는 벌금 1억 원이 선고됐다.
법원 "SPL 대표, 중처법ㆍ산안법 위반했다"
SPL은 SPC그룹의 냉동 반죽 빵 제조와 판매를 담당하는 계열사다. 지난 2022년 10월 평택 제빵공장 냉장 샌드위치 라인에서 근무하던 근로자 C 씨가 가동 중인 혼합기에 탈착식 덮개를 개방한 채 손을 넣어 배합 작업을 하다가 기계로 빨려 들어가 기도폐쇄성 질식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검찰은 A 씨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재해 방지 대책 수립과 이행에 관한 조치 마련 의무 ▲재해 발생 시 재발 방지 대책의 수립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의무 ▲유해ㆍ위험 요인 확인ㆍ개선 절차 반기 1회 이상 점검 의무 ▲안전보건관계법령 의무 이행 반기 1회 점검과 미흡 시 인력ㆍ예산 추가 집행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산업재해치사가 발생했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평택공장의 공장장 B 씨와 안전보건팀장 D 씨, 안전관리자 E 씨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A 씨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을 인정했다. 박 판사는 "공장에서 끼임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했음에도 A 씨는 혼합기 위험성 평가를 하지 않고 유해위험방지대책도 수립하지 않았다"며 "안전관리담당자도 지정하지 않고 작업안전표준서, 덮개 설치 방안도 마련하지 않아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고 했다.
법원은 회사가 사고 발생 기계에 대해서만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했다고 꼬집었다. 박 판사는 "사고 이후 A 씨는 사망사고가 발생한 해당 기계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만 마련했을 뿐 종합적인 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며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의무 위반과 사망 간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상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의무 위반을 이유로 유죄를 선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이 의무를 법원이 주관적으로 해석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에는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문구만 있지 종합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내용은 없다"며 "법원이 경영책임자가 전체 라인을 대상으로 종합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것은 지나치게 주관적인 해석"이라고 말했다.
다만, 법원은 A 씨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상 나머지 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박 판사는 "안전보건관리체계 평가ㆍ관리ㆍ점검 의무는 A 씨가 대표로 취임한 지 6개월 이내에서 이루어져 의무 위반이 성립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A 씨와 함께 재판에 넘겨진 B 씨 등 3명에게도 유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작업안전표준서가 작성되지 않았고 혼합기 근무자들이 작업안전수칙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근무했다"며 "안전관리책임자들이 사고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사고 방지를 위한 업무상 주의의무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안전조치의무 위반은 유죄, 치사는 무죄
법원은 A 씨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의무 위반도 인정했다. 그런데 사망사고가 발생한 냉동 샌드위치 라인이 아닌 페스추리 라인을 대상으로 유죄가 나왔다.
박 판사는 "A 씨에게는 페스추리 라인 동력전달부에 덮개를 설치할 의무와 적합한 누전차단기 설치, 배합기 상부에 추락위험 방지를 위한 난간 설치 의무가 있었다"며 "A 씨가 법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점이 인정된다"고 했다.
정 교수는 "법원이 유죄로 선고한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의무 위반은 이번 사망사고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라인에 대한 내용"이라며 "사후 합동감식 과정에서 드러난 법 위반 사항을 처벌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사고가 발생한 라인에 대해서는 안전조치의무 위반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로 인해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의무위반치사죄는 무죄가 선고됐다.
박 판사는 "A 씨는 혼합기에 산업안전보건법상 설치돼야 할 덮개가 미설치된 상태로 공장에서 배합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의무 위반 상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전조치의무위반치사죄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했다.
정 교수는 "안전조치의무위반치사죄는 결과적 가중범에 해당해 고의가 없으면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법원이 A 씨가 문제 상황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판단해 미필적 고의도 없었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은 SPL 법인의 안전조치의무위반치사죄도 무죄라고 봤다. 박 판사는 "대표인 A 씨의 안전조치의무위반치사죄가 인정되지 않아 이를 전제로 한 법인의 안전조치의무위반치사죄도 인정될 수 없다"며 "A 씨 이전 대표에게는 해당 죄의 성립이 인정될 여지가 있으나 이를 공소장 변경 없이 판단하는 것은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 불이익을 가져와 변경 없이 판단할 수는 없다"고 했다.
사망 사고가 일어난 라인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의무위반치사죄를 무죄라고 판단했다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도 무죄로 판단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 교수는 "사고가 발생한 라인에 대해 안전조치의무 위반이 없다고 판단했다면 중대재해처벌법상 산업재해치사도 무죄라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며 "사회적으로 이슈가 많이 됐던 사건이고 처벌을 원하는 여론이 높아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는 판결이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합의 無에도 '집행유예'…실형 기준 또 도마 위로
SPL에서 이번 사건을 포함해 유사한 끼임 사고가 최근 3년간 12건 발생했지만 법원은 실형을 선고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회사와 유가족 사이에 합의도 없었다. 법원은 이번 사망사고가 A 씨가 대표로 취임한 뒤 4개월 만에 일어났기 때문에 비난 가능성이 적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박 판사는 "사고 이후 유가족이 지금까지 A 씨와 회사를 용서하지 않고 있지만 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선처를 구하고 있고 해당 라인에 대한 사고 재발 방지 노력을 했다"며 "사고 발생에 피해자 C 씨의 과실도 존재하고 A 씨가 대표로 취임한 뒤 4개월 만에 사고가 발생해 비난 가능성이 적은 점을 고려해 양형을 결정했다"고 했다.
A 씨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를 놓고 법원의 실형 기준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규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지금까지 판례가 실형을 선고해 온 기준에 비춰봤을 때 공장에서 산재도 계속 일어났고 합의도 없는 사건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은 납득하기 어려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가 처벌을 통한 예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법원이 일관된 판단기준으로 실형을 선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식품노조)도 법원의 집행유예 판단을 비판했다. 화섬식품노조는 "법원은 SPL에 재발 방지 노력이 있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지만 이런 식의 양형 기준을 적용한다면 어떤 경영책임자가 예방조치 의무를 다하겠나"라며 "이번 판결은 재발 방지 대책만 세우면 실형을 피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주는 문제적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이번 사건은 A 씨의 취임기간이 4개월로 짧았다는 점이 집행유예가 선고된 주요한 이유로 보인다"며 "다른 형사사건에서는 피해자나 유가족과의 합의가 실형 판단에 있어 중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유독 중대재해사건에서는 법원이 일관성 없게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가족과 합의를 해도 실형이 선고되거나 이번 사건처럼 유가족이 처벌을 원하고 있음에도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등 같은 달에 선고된 판결도 중구난방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출처 : 이재헌 기자, ‘합의 無ㆍ연속 산재’에도 SPL 대표에 집행유예 선고한 법원, 이유는?, 월간노동법률, 2025년 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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