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입차주 아닌 화물기사도 근로자”...대법 판결 확장한 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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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주와 직접 용역계약을 맺고 화물을 운송했던 화물기사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화주의 근로자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지입차주가 아닌 화물기사들이 근로자로 인정되면서 대법원 판단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평가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제38-1민사부(재판장 정경근)는 화물기사 A 씨 등 6명이 자동차 전장품 제조업체 계양전기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항소심에서 피고 측 항소를 기각하고 원고승소 판결한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계양전기는 A 씨 등의 업무 내용을 정하고 이들의 업무수행 과정에서 상당한 지휘ㆍ감독을 했다"며 이같이 판단했다.
1년 단위 계약 맺은 화물기사들, 1심서 근로자성 인정
A 씨 등은 계양전기와 1년 단위의 운송계약을 체결하고 자동차 좌석용 모터ㆍ각종 엔진 등을 거래처에 운송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다 계양전기가 A 씨 등에게 계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A 씨 등은 사실상 계양전기의 지휘ㆍ감독 아래 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간제법에 따라 2년을 초과해 일한 만큼 계양전기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계양전기는 A 씨 등이 용역계약을 맺고 업무를 수행한 독립적인 사업자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법원은 A 씨 측 손을 들어줬다. 1심은 "A 씨 등은 한 달에 26일을 운송 업무를 담당하면서 그 대가로 매달 고정급을 지급받았다"며 "업무수행에 소요된 유류비, 도로통행료 등을 계양전기로부터 실비로 보전받았기 때문에 A 씨 등이 지급받은 고정급은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A 씨 등이 운송 업무의 증감에 따른 이윤 창출이나 손실 등 위험을 스스로 부담했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계양전기가 업무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했던 사실도 판단 근거로 제시됐다.
1심은 "계양전기는 일별 배차표를 통해 출발지ㆍ도착지ㆍ상차작업 시간ㆍ도착시간ㆍ유의사항 등 A 씨 등이 수행해야 할 업무 내용을 구체적으로 지정했다"며 "(A 씨 등에게) 일일ㆍ월간 차량운행일지를 제출받고 출고ㆍ회수된 팔레트(빈 박스) 수량, 불량품 발생 여부 등을 보고하게 했을 뿐 아니라 단체대화방을 통해 수시로 지시사항, 거래처별 유의사항을 전달해 업무수행 과정에 상당한 지휘ㆍ감독을 했다"고 지적했다.
취업규칙에 있을 법한 내용이 용역계약에 명시된 점도 근거로 들었다. 1심은 "계약에 따라 A 씨 등이 준수해야 하는 '지입차 운영지침서'에는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를 경고사유로 정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지시와 배송을 거부한 자를 계약 해지사유로 정하는 등 취업규칙에 갈음할 만한 사항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꼬집었다.
2심도 동일, 판단 근거는?...'업무지시ㆍ고정급ㆍ전속성'
2심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특히 운송 업무 관련 지시들이 구체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A 씨 등의 배송업무는 계양전기 직원이 내부적으로 정한 매뉴얼에 따라 작성한 배차표에 의해 배정됐다"며 "A 씨 등이 배송업무 배정과 관련해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았고 계양전기는 배차표를 통해 배송업무를 배정하고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실제 A 씨 등에게 공지되는 일별 배차표에는 도착지와 상차작업 시간, 도착시간, 유의사항 등 구체적인 업무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재판부는 "A 씨 등은 계약에서 정한 업무 외에도 계양전기 직원 지시에 따라 출고ㆍ불량 제품 수량 검수, 랍레 부착, 밴딩 등의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다"며 "A 씨 등에 대한 업무 요청은 도급관계를 넘어선 사용자의 업무지시 내지 감독에 해당한다"고 봤다.
계양전기가 단체대화방 등을 통해 회사 내부 지침을 공지한 사실도 A 씨 측에 힘을 실었다. 계양전기는 사내 체육대회 당시 회사에서 지급한 티셔츠 착용을 당부하거나 '회장님 방문이 예정돼 있으니 쓰레기가 나와 있지 않도록 신경써달라'는 등의 지시가 이뤄졌다.
A 씨 등은 배차표에 따라 화물을 운송했을 뿐 출ㆍ퇴근 장소나 근무장소를 정하지 않았다는 계양전기 측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계양전기는 A 씨 등에게 일별 배차표에 따라 상차시간, 도착지ㆍ도착시간을 구체적으로 지시했다"며 "A 씨 등의 출퇴근 시간이나 근무장소가 사전에 정해져 있지 않다 해도 A 씨 등은 계양전기가 일방적으로 지정한 근무시간ㆍ장소에 구속됐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계양전기가 A 씨 등에게 지급한 용역비가 고정급 성격을 갖는다는 판단도 내놨다.
재판부는 "A 씨 등의 보수가 계약서상 우송료, 용역비 등으로 표현돼 있기는 하나 월 단위로 정액의 보수를 받기로 돼 있고 이는 실제 배송하는 물품의 양이나 배송 횟수ㆍ거리 등의 배송 실적에 따라 액수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A 씨 등이 수행하는 업무의 양과 질이 매달 고정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A 씨 등이 지급받은 고정적인 보수는 용역 제공의 대가라기보다 계양전기에 종속돼 계속적으로 제공하는 근로의 대가로 지급받는 임금의 성격을 갖는다"고 봤다.
계양전기에 전속된 상태로 근로를 제공했다는 A 씨 측 주장도 받아들여졌다.
재판부는 "A 씨 등은 매달 26일간 계양전기 천안공장에 출근해 배송업무를 수행했고 지시가 있으면 공휴일에도 계양전기 배송업무에 투입됐다"며 "A 씨 등이 다른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이들이 계양전기 외의 다른 사업장의 업무를 수행했다고 볼 자료도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보다 나아간 고법...관건은 '지휘ㆍ감독'
대법원은 앞서 화물운송업체 차량을 빌려 운송 업무를 수행하는 이른바 지입차주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번 판결은 지입차주가 아닌 화물기사도 근로자로 인정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A 씨 측을 대리한 서정훈 서도법무법인 대표변호사는 "이 사건은 법원이 지입차주가 아닌 운송기사도 회사로부터 실질적인 지휘ㆍ감독을 받은 사실이 인정되면 근로자성이 인정된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서 변호사는 "많은 회사들이 고정비 부담을 줄이고 운송기사에 대한 노동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운송업무를 외부에 위탁해 처리하고 있다"며 "이 판결은 회사와 용역계약을 체결해 운송업무를 수행하는 운송기사라도 회사가 실질적으로 지휘ㆍ감독했다는 점이 인정되면 근로자로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출처 : 2022년 06월 16일, 월간노동법률 김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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