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는 연령 차별, 현행법 위반”...대법이 본 세 가지 쟁점
페이지 정보

본문
노조와의 합의를 거쳐 정년을 유지하면서 일정 연령 이상인 근로자의 임금을 감액하는 임금피크제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이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판단 기준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은 26일 한국전자기술연구원 근로자 A 씨가 연구원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피고 측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고 밝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이날 연구원이 시행한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임금을 차별할 수 없도록 한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했다고 판시했다.
연구원은 노조와 합의를 거쳐 정년 61세를 유지하는 대신 55세 이상 근로자를 대상으로 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경영 혁신과 경영 효율을 높이겠다는 이유였다.
A 씨의 경우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월 급여가 성과 평가 결과에 따라 적게는 93만 원, 많게는 283만 원에 달했다. 연구원 자료를 보면 51~54세 정규직들의 수주 목표 대비 실적 달성률이 55세 이상 정규직보다 더 낮았다.
그러나 임금피크제로 오히려 실적 달성률이 더 높은 55세 이상 직원들의 임금만 감액된 것이다. 업무 내용이 변경되거나 목표 수준이 낮게 설정돼 업무량이 감소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없었다.
세 가지 쟁점, 대법원 판단은?
상고심 쟁점은 세 가지였다.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차별하는 행위를 금지한 고령자고용법 조항(제4조의4 1항)이 강행규정인지, 해당 조항의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연구원의 임금피크제가 해당 조항을 위반했는지가 쟁점이 됐다.
대법원은 고령자고용법 조항이 강행규정에 해당한다고 봤다. 연령 차별을 당한 사람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낼 수 있고 이에 따라 구제 조치나 시정명령이 내려질 수 있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 고용의 영역에서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해 헌법상 평등권을 구현하려는 고령자고용법 취지를 고려하면 강행규정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상 연령 차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판단 기준도 제시했다.
대법원은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구 고령자고용법에서 말하는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란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달리 처우하는 경우에도 그 방법ㆍ정도 등이 적정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고 했다.
이어 사업주가 근로자 정년을 유지하면서 정년 전 일정 기간 임금을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가 법을 위반한 것지 여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의 불이익 정도 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임금 삭감에 따른 조치(업무량 감축 등)가 이뤄졌는지, 해당 조치가 적정한지,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제도 도입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법리를 토대로 보면 연구원의 임금피크제는 위법하다는 것이 대법원의 결론이다.
대법원은 "연구원의 임금피크제는 인건비 부담 완화 등 경영성과 제고를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라며 "이러한 목적을 55세 이상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임금 삭감 조치를 정당화할 만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A 씨가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임금이 일시에 대폭 하락하는 불이익을 입었고 업무 감축 등의 적절한 조치가 마련되지 않은 점도 판단 근거로 제시됐다.
대법원은 "임금피크제를 전후로 A 씨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춰 보면 연령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공공기관 '촉각'..."임금피크제 판단 기준 경직" 비판도
이번 판결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장에서는 제도 개편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공공기관의 경우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인 만큼 이번 판결이 미칠 파장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공공기관들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있어서 영향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임금피크제의 법 위반 여부는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판단이 엇갈릴 수 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과 관련해 "다른 기업에서 시행 중인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나 하급심에서 진행 중인 사건과 관련해 개별 기업들이 시행하는 임금피크제 효력의 인정 여부는 판단 기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대법원이 제시한 판단 기준이 임금피크제 취지와 부합하는지에 관한 의문도 제기된다.
대법원은 앞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을 때만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수 있다고 봤다. 당시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근로자의 불이익 정도 ▲취업규칙 변경 필요성의 내용과 정도 ▲대상 조치 등을 포함한 다른 근로조건의 개선 상황 등이 제시됐다. 임금피크제 무효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과 유사한 구조다.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이 제시한 임금피크제 판단 기준을 보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상의 사회통념상 합리성과 비슷하다"며 "대상 조치가 있었는지, 불이익 정도는 어떤지와 같은 기준이 임금피크제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임금피크제가 왜 도입됐는지 대법원이 그 의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며 "고령자 고용을 유지하면서 임금을 감액하는 제도인데 판단 기준 자체가 경직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출처 : 2022년 05월 26일 목요일, 월간노동법률 김대영 기자
- 이전글“식사·휴식도 근무시간” 교정공무원 잇단 승소 22.05.26
- 다음글“적정인력 초과 이유로 한 인사발령은 부당” 22.05.2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