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간 4명 숨졌는데’ HD현대중에 대법원 ‘집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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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4건의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HD현대중공업의 안전보건 관리 책임자인 사업부 대표 3명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기 이전의 사고라 경영책임자는 처벌을 피했다. 그럼에도 HD현대중공업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최소 4명이 사망한 상황에서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에 부족한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추락·끼임·질식’ 5대 중대재해, 하청노동자 사망
17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지난 14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HD현대중공업 조선사업부 전 대표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특수선사업부 전 대표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HD현대중공업 법인에는 벌금 5천만원이 확정됐다.
이번 판결은 △LNG 트러스 조립 중 추락사(2020년 2월22일) △수중함 발사관 도어 정렬작업 중 협착사(2020년 4월16일) △SUS파이프 용접작업 중 아르곤가스 질식사(2020년 5월21일) 등 3건의 사망사고에 관한 판단이다. 2건은 하청노동자 사망사고였다. 첫 번째 사고는 하청업체 소속 60대 노동자가 24미터 높이의 트러스 구조물에서 합판 고정 작업을 위해 이동하던 중 합판을 밟아 넘어지며 개구부로 추락해 숨졌다. 사고 당시 추락방호망은 없었다.
두 번째 사고는 HD현대중공업 소속 노동자가 수중함 발사관을 정렬하는 작업을 마친 뒤 외부문 밖으로 나오다가 문에 끼여 사고 9일여 만에 뇌 압박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발사관 정렬 작업은 발사관 내부 공간이 좁아 협착될 위험이 컸다. 하지만 해당 작업의 위험성평가는 실시되지 않았고 작업계획서도 작성되지 않았다. 2020년 5월 일어난 사고의 경우 하청업체 소속 30대 노동자가 용접작업을 하기 위해 아르곤가스가 주입됐던 파이프로 들어갔다가 가스를 흡입해 질식했다. 감시인과 출입금지 표지판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에서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이 정한 안전조치의무 위반의 고의성을 두고 공방이 일었다. HD현대중공업쪽은 안전보건 관리책임자들이 도급인 지위이기 때문에 하청노동자의 작업에 관한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항변했다. 또 사고별로 안전조치의무 위반에 대한 고의성과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 여부와 결과 발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도 없다고 주장했다. 기계 운전 시작 전 조치 의무를 정한 안전보건규칙 89조가 ‘명확성 원칙’에 위반했는지도 재판에서 중요 쟁점으로 다퉈졌다.
추락방호망·작업계획서·위험성평가 모두 없었다
1심은 2023년 7월 HD현대중공업의 도급인 지위를 인정하면서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추락방호망 미설치와 작업계획서 미작성, 위험성평가 미실시, 출입금지 조치 미이행 등 HD현대중공업이 안전조치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봤다. 세 건의 사고 모두 기본적인 안전수칙만 이행했다면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고 판단한 셈이다. 다만 재판부는 “구체적인 생산과 안전 업무는 각 사업부 대표 체제로 수행돼 각 사업부 내 작업현장에 대한 구체적인 안전조치 사항을 현실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사업부별 안전사고 예방 대책수립과 이행을 위한 예산을 배정했다”며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HD현대중공업과 검찰은 각각 사실오인과 법리오해,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지만 2심 결론도 같았다. 2심 재판부는 올해 2월 검찰과 피고인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아르곤가스 질식 사고를 언급하며 “일정 규모 이상의 배관 용접시 사람이 배관 안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를 밀폐공간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HD현대중공업쪽은 2심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6개월 만에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와 업무상과실치사죄의 성립, 법령의 명확성과 엄격해석 원칙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유사 중대재해 반복에도 기소는 ‘제로’
HD현대중공업은 중대재해가 잦은 사업장에 꼽힌다. 본지와 노동건강연대·민주노총으로 구성된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이 올해 4월 선정한 ‘2025 최악의 살인기업’에서 ‘시민이 뽑은 살인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HD현대중공업에서는 최소 4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단 한 건도 기소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2022년 4월2일 하청노동자 1명이 산소절단 작업 중 발생한 불꽃이 툴박스로 튀어 가스가 폭발하면서 툴박스 문에 얼굴을 맞아 숨졌다. 지난해 2월12일에는 하청노동자가 무게 9천300톤의 블록을 운반하던 중 넘어지는 블록에 깔려 사망했고, 같은해 10월26일에는 30대 노동자가 메탄올 탱크 밀폐공간에서 아르곤가스에 질식해 목숨을 잃었다. 이번에 대법원에서 판결한 사건과 매우 유사한 사건이다. 올해 5월15일에는 현대중공업 울산공장 앞 바닷가에서 방파제 설치 작업을 하던 40대 하청노동자가 바다에 빠져 사망했다.
반복된 중대재해에 HD현대중공업은 18일부터 중대재해 원천 차단을 목표로 새로운 안전보건 경영체계인 ‘더 세이프 케어’(The Safe Care)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추락·끼임·감전·질식·화재 등 9가지 핵심 위험 요소를 ‘절대불가사고’로 지정해 전사적 역량을 동원해 집중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본적인 안전수칙만 지켜도 조선업계에서 반복되는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본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교수(안전관리학)는 “세 건의 사고 모두 사전에 고위험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작업으로 추락 방호망 설치, 개인휴대용 산소측정기 지급, 고위험 작업에 대한 위험성평가 및 관리를 통해 예방 가능했던 재해”라며 “원인과 책임이 명확한 사고에 대해 최종 확정 판결까지 5년이나 걸렸다. 특히 3건의 중대재해를 병합했는데 대기업 법인에 고작 벌금 5천만원이 부과됐다는 점이 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는지를 말해준다”고 지적했다.
출처 : 홍준표 기자, ‘9개월간 4명 숨졌는데’ HD현대중에 대법원 ‘집유’, 매일노동뉴스, 2025년 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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