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 민폐 끼치네” 60대 목공의 마지막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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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실수로 동료의 비난을 받아 휴일에도 출근해 작업하다가 심정지를 일으킨 목공 노동자가 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법원은 일주일에 하루만 쉬면서 정신적 긴장이 높은 상태에서 근무해 심근경색이 발병했다고 봤다.
선임자 “할배, 일 좀 잘하소” 비난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박정대 부장판사)는 지난달 21일 형틀목공 노동자 A씨(사망 당시 64세)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2019년 4월부터 부산 영도구의 한 주택재개발 정비사업 현장에서 형틀목공으로 일했다. 그런데 토목사고가 발생해 공정이 미뤄진 탓에 본래 일정보다 3개월 늦게 작업에 투입된 게 화근이 됐다. 빠듯한 일정으로 선임 목공이 하던 방식에 맞춰 작업했고, 아파트 지하층과 주차장 작업까지 맡게 됐다.
그러던 중 사건이 발생했다. 그해 6월29일 A씨가 수행한 지하 1층의 ‘먹매김’ 작업에 오차가 발생한 사실이 드러났다. 먹매김은 건물이 똑바로 올라갈 수 있게 콘크리트에 먹줄을 긋는 작업을 말한다. A씨가 측량기구를 잘못 놓아 오류가 생긴 것으로 확인됐다.
그때부터 A씨는 선임자에게서 “할배, 일 좀 잘하소” “할배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네” 같은 모욕적인 발언을 들었다. A씨는 곧바로 수정하려고 했지만, 그날 비가 내려 하지 못했다. 다음날 A씨는 휴일임에도 작업을 수정하기 위해 출근했으나, 현장소장이 경위서를 내라며 질책했다.
이후 A씨는 퇴근하지 못했다. 갑자기 사무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것이다. 즉시 병원으로 이송돼 ‘급성 심근경색증’을 진단받고 병원을 여러 차례 옮기며 치료받았지만, 그해 11월 심정지로 인한 뇌손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A씨 아내는 업무상 재해라며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공단에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르면 심근경색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지급을 거부했다. 재심도 같은 결론이 나자 A씨 아내는 2020년 10월 소송을 냈다.
법원 “휴일 적은 상태서 정신적 긴장”
작업 구역 확대에 근무시간 증가
법원은 업무상 재해가 맞다며 유족의 청구를 인용했다. 정신적 긴장감이 큰 상태에서 과로한 점이 인정됐다. A씨는 주 6일간 매일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5시까지 일했다. 심근경색 발병 직전 12주간 1주 평균 업무시간은 56시간으로 조사됐다. 고용노동부 고시에서 정한 업무상 질병 기준(주당 52시간)을 초과한 것이다.
재판부는 “먹매김 작업은 오류에 따라 전체 공사 일정에 중대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며 “실수로 상사와 동료로부터 질책을 받자 서둘러 만회하고자 휴일근무를 무릅쓰고 출근했다”고 판단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신적 긴장이 상당한 업무를 수행했을 것이라는 취지다.
아울러 A씨가 심근경색을 일으킬 때까지 작업 구역이 확대되고 근무시간이 증가하면서 업무상 실수를 일으킨 점이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됐다고 봤다. 재판부는 “실수에 대한 동료의 모욕적인 언사와 상사의 책임 추궁 등이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로 이어졌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망인은 심근경색 발병 3~4개월 전부터 금연했고, 협심증을 단 12일 사이에 심근경색을 유발하는 수준으로 악화시킬 만한 개인적인 위험 요인은 찾아보기 어렵다”며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기저질환을 급격히 악화시켰다고 추정된다”고 판시했다. A씨는 평소 협심증을 앓았지만, 조영술을 받은 뒤 12일 만에 심근경색이 발병했다.
유족을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휴일이 적어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정신적 긴장이 상당한 업무를 수행하는 등 업무부담을 증가시키는 다른 요인까지 보태져 업무 관련성이 강화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출처 : 2022년 05월 06일 금요일, 매일노동뉴스 홍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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